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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혁재의 건강창작소.2] 생명의 나무와 '인연에서 나투어남'

 

이혁재 원장 | press@newsprime.co.kr | 2018.10.31 15:06:07

[프라임경제] '건강창작소'는 자유로운 개인들이 아리따운 진정성을 아름답게 창조해 가는 생생한 텃밭입니다. 줄여서 '나름다움의 텃밭', '나름다운 텃밭'이라고 부르고자 합니다. 오늘은 인연이란 텃밭에서 '생명의 나무'가 지금까지 어떻게 나름대로 자라왔고 앞으로 어떻게 나름답게 자라갈지 거칠게나마 살피고자 합니다. 

◆만남과 헤어짐과 모임과 흩어짐의 역사

138억년쯤 된다고 하는 우주의 나이를 몸소 느끼고 생각하기는 너무 어렵습니다. 그 긴긴 동안 여러 물질들의 헤어릴 수 없는 만남과 헤어짐과 모임과 흩어짐은 말할 것도 없겠지요. 45억년쯤 된다고 하는 지구에서의 만남과 헤어짐과 모임과 흩어짐도 마찬가지라고 하겠습니다.

생명은 또 어떤가요? 가장 오래된 박테리아 화석은 35억년 전의 것이 있다고 하니, 그보다 일찍부터 지구에 터를 잡고 있었겠지요. 식물과 균류와 동물과 원핵생물을 포함하는 생명체들의 공통조상(common ancestor)은 30억년 전부터 살았으니 이 또한 헤아림이 어렵습니다.

처음 진핵생물은 27억년에서 15억년 전 언젠가 즈음부터 진화했다고 합니다. 진핵세포의 핵은 어디에서 생긴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박테리아 속으로 들어가서 살아난 고세균류의 미생물이 박테리아의 핵이 되었을 것으로 보여 진다고 합니다.

스스로 박테리아 속에 들어간 것인지, 박테리아가 잡아먹은 것인지 잘은 모르지만, 이들은 서로를 죽이지 않고 함께 살 수 있게 된 합의가 성공하면서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갑니다. 이로부터 세포들끼리 서로 헤아릴 수 없는 만남과 헤어짐과 모임과 흩어짐의 역사는 시작됩니다.

◆비로소 자라기 시작한 '생명의 나무'

박테리아와 세균의 새로운 '함께-살이'가 이뤄진 뒤에 다세포 생명체가 되기까지 애를 쓴 10억~20억년 동안, 홀로 살던 세포들은 또 헤아릴 수 없는 만남과 헤어짐과 모임과 흩어짐을 하더니, 마침내 여럿이 함께 움직이는 생명체로 6억4000만년 전쯤에 나타납니다.

5억2500만년 전쯤 되서는 척추동물이 진화하게 됩니다. 지금은 어류 양서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로 갈라져 함께 지구에 살고 있습니다. '생명의 나무'를 더 다양하게 구성하면서, 헤아릴 수 없는 만남과 헤어짐과 모임과 흩어짐을 지금도 창조하고 있습니다.

1억년 전쯤인가 어떤 곤충의 종들은 사회적 행위들(social behaviors), 실천들(practices), 그리고 기기들(instruments)과 제도들(institutions)을 개발합니다. 이들의 질서는 사회적 동물이 사람뿐은 아니라고 웅변하는 듯합니다. 곤충들에게도 다른 형식의 교양문화가 나름대로 탄생한 거지요.

7000만~8000만년 전쯤에는 지금도 살아있는 영장류(primate)들이 가까운 공통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오게 됩니다. 이들 가운데서도 대형 유인원류(greate apes)라고 할 수 있는 사람과(Hominidae)는 사람 뿐 아니라 침팬지 보노보 고릴라 오랭우탄이 있게 됩니다.

◆'생명의 나무' 가장자리까지 자라온 사람들

사람속(Homo)은 현생인류와 그 직계 조상을 포함하는 분류범주입니다. 사람속은 250만년 전쯤에 나타났는데,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를 빼고는 모두 사라졌습니다. 이제 사람은 하나 뿐인 종으로 남아 있습니다.

사람은 두발로 걷고, 고도로 두뇌가 개발되었고, 도구를 만들 수 있으며, 언어를 씁니다. 남극을 빼고서 지구의 모든 대륙에서 살고 있습니다. 사회적 동물답게 함께 생활하면서 복잡한 사회 구조를 만들어 냈습니다.

인지능력이 뛰어났던 호모 사피엔스는 허구실체(fictional entity)를 창조하는 데 성공을 합니다. 언어로써 생각으로 만들어낸 실체를 모두 함께 공유하게 됩니다. 신화의 세계, 정치의 세계, 종교의 세계, 과학의 세계, 문학의 세계는 모두 인지혁명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인지혁명과 더불어 농업혁명, 제국과 종교의 건설, 과학혁명을 창조해 내면서 인류의 역사는 자연본성과 도시문명을 새롭게 설계하게 됩니다. 사람다움의 역사는 그렇게 여러 혁명과 함께 나타나게 되었으며, 사람은 사라지지 않고 '생명의 나무' 가장자리까지 자라왔습니다.

◆'생명의 나무' 끄트머리에서 나투어난 개인들(individuals)

우주와 지구라는 텃밭에서 '생명의 나무'는 지금껏 잘 자라고 있습니다. 우리 공통의 조상인 진핵세포가 다른 종을 서로 잡아먹거나 죽이지 않고서도 함께 사는 기적을 경험한 뒤로는, 오랜 시간을 거쳐 스스로 자연본성을 창조하고 도시문명을 창조하는 역사를 살게 됩니다. 생명의 진화는 그렇게 창조의 역사를 써오고 있습니다.

진핵세포라는 공통조상으로부터 30억년 동안 사람뿐 아니라 길고 긴 삶을 함께 살아온 모든 생명체들은 공통된 기능이 있습니다. 바로 살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게 되어 갑자기 숨을 거두지 않도록 체내 환경을 어떻게든 조절하는 기능입니다. 한마디로 이를 호메오스타시스(homeostasis)라고 합니다.

항상성이라고도 옮기는 호메오스타시스의 역사는 사람이 맺어 온 인연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심장이 뛰고 숨을 쉬는 한, 우리는 먹고 싸고 움직이고 쉬고 깨고 자는 동안 많은 인연을 때론 만나고, 때론 헤어집니다. 때론 모이고, 때론 흩어지면서 다른 인연을 창조합니다.

통증을 줄이고 쾌락을 즐기면서도 인연을 만들어 갑니다. 여러 추동들(drives)과 동기들(motivations)을 일으키거나 내려놓으면서 인연을 만듭니다. 가치 있는 이모션(emotion)을 키우고, 그 이모션을 바라보는 느낌들(feelings)을 창조하면서 끝내는 자연본성과 도시문명과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마침내 개인들로서 나투어납니다.

◆인연(hetu-pratyaya)이란 텃밭에서 핀 '나름다운 나투어남(natality)'

진핵세포가 다세포생물이 되고 척추동물이 되고 영장류가 되고 사람이 되더니 서로 다른 개인들이 됩니다. 자연본성이 바뀌고 도시문명이 만들어 지면서, 생명의 역사는 여러 '인(因, hetu)'과 '연(緣, pratyaya)'이 서로 얽히게 됩니다. 그 인연이 바로 나투어남의 결과이자 새로운 나투어남의 조건이 됩니다.

'인'은 '헤투(hetu)'라는 산스크리트어를 옮긴 것인데, 브리태니커 사전에서는 어떤 직접적인 원인(a direct cause)이라고 하고, 연(緣)은 '프라트야야(pratyaya)'라는 산스크리트어를 옮긴 것인데, 브리태니커 사전에서는 어떤 간접적인 원인(an indirect cause)이라고 옮기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씨앗이 자라나는 식물의 '인'이라면, 햇빛, 물, 지구는 '연'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게 인과 연은 길고 긴 끈으로 이어져 지금의 나를 만들고, 이어서 내가 지은 말과 글과 행동은 어떤 인연이 돼서 누군가의 나름다운 나투어남의 텃밭이 되기도 합니다.

나, 너, 그, 그것, 우리들, 너희들, 그들, 그것들이 서로에게 인과 연이 되기도 하고 나투어나기도 합니다. 어린이, 노인, 여자, 남자, 장애가 있는 자, 멀리서 온 자 누구나 예외 없이 '생명의 나무' 끄트머리에서 평등하게 나름다운 생명의 역사들을 이어가고자 합니다.

자유로운 개인들은 스스로 지은 인연의 흔적을 찾아내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들은 누군가의 슬픔과 노여움과 기쁨과 즐거움에서 자신의 잘잘못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모르는 사람들의 죽음에서도 마치 '나비효과'처럼 나에게 잇닿은 인과 연을 차마 모른 체 하기 어렵습니다.

광인일기(狂人日記)를 통해 루쉰은 '사천 년간 사람을 먹은 이력을 가진 나'의 모자람과 게으름을 알아차리고는, 이제부터라도 '사람을 먹어 본 적 없는 아이'를 구하고자 마음을 굳게 다집니다. "아이를 구해야 할 텐데…" 하는 울림은 여럿의 마음에 씨를 뿌립니다.

바로 '나름다운 나투어남'에 아주 가까운 자유로운 개인의 '마음씨'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집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마음씨가 그 아이들을 구할 수 있을지. 구해야 할 텐데… 구할 수 있을까?


이 글에 도움을 준 사람들과 자료들

1) 찰스 다윈Charles Darwin, 2)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3) 피터 글럭맨Peter Gluckman, 4) 안토니오 다마지오Antonio Damasio, 5) 유발 하라리Yuval Harari, 6) 루쉰魯迅, 6)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신천 함소아한의원 대표원장 / MBC 본사 의무실 한방주치의 / EBS 역사드라마 <점프> 한의학 자문 / 연세대 물리학과 졸업 / 경희대 한의학과 석사졸업·박사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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