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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혁재의 건강창작소.3] 나름다운 나투어남과 아모르 문디

 

이혁재 원장 | press@newsprime.co.kr | 2018.11.09 14:40:28

[프라임경제]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나름다움'이,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나투어남'이, 그 핵심 낱말들이었습니다. 오늘 세 번째 이야기에서는 '나름다운 나투어남'과 '아모르 문디(amor mundi)'에 관해 짧게 적고자 합니다.

◆나탈리티(natality), 탄생성, 그리고 나름다운 나투어남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스스로의 정치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나탈리티(natality)'라는 낱말을 씁니다. 그에게 '나탈리티'는 끝이나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태어남이고, 새로운 시작이고, 새로운 자유로움이자, 새로운 개인들의 약속을 뜻합니다. 우리 한글낱말 가운데 '나탈리티'의 이런 뜻과 뉘앙스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나투다'라는 낱말이 있습니다. '나투다'라는 낱말은 옛말이라 잘 쓰이지 않다가 불교경전의 한글옮김을 위해 학문적으로 쓰였는데, '깨달음이나 믿음을 주기 위해 사람들에게 나타나다/나타내다'라는 뜻입니다.

'나탈리티'는 보통 '탄생성'이라고 옮기는 경우가 많지만, 온한글을 되살리자는 생각에서 '나투어남'이라고 옮겨 봤습니다. 이것은, 잘 쓰지 않던 '나탈리티'란 영어낱말을 아렌트가 찾아내서 새로운 뜻을 만든 것과도 그 맥락이 비슷합니다. 또한 '나투어남'과 '나탈리티'가 소리도 비슷하다는 것이 우연치고는 흥미롭습니다.

무엇보다 '나름다운 나투어남'은 처음 태어나 죽는 그날까지 늘 새롭게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사람의 몸과 마음의 창조적 활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의 역사는 '나름다운 나투어남'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새롭게 나타나서 쌓여가는 것이 아닐까요?

◆사람다움을 위한 여섯 가지 몸과 마음의 활동들

그렇다면 '나름다운 나투어남'을 바탕으로 하는 몸과 마음의 대표적인 '인간 활동(human acivity)'은 무엇 무엇이 있을까요? 나눌 수 있는 방법은 여럿이겠지만, 한나 아렌트는 이에 관해서 6가지의 서로 다른 인간 활동을 제안합니다. 그리고 이들이 어떻게 관계 맺느냐에 따라 '아모르 문디(amor mundi, 세계에 대한 사랑)'가 가능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그 6가지는, 1) 노동labor, 2) 작업work, 3) 행동action, 4) 생각thought, 5) 의지will, 6) 판단judgement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6가지로부터 우리는 각각 1) 노동하는 사람(laborer), 2) 작업하는 사람(worker), 3) 행동하는 사람(actor), 4) 생각하는 사람(thinker), 5) 의지 있는 사람(willer), 6) 판단하는 사람(judge)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들 활동이 부드럽게 어우러진 사람이 아마도 '아모르 문디'를 실천하고 있는 사람일 겁니다.

◆아모르 문디(amor mundi): 세계에 대한 사랑

노동하는 사람은 자연환경과 사귀면서 생존과 번식을 위해 필요한 대사활동을 합니다. 작업하는 사람은 문명의 세계와 사귀면서 주어진 자연을 바꿔 인공적인 사물들을 제작합니다. 행동하는 사람은 정치적인 공적인 영역에서 여러 사람들과 사귀면서 소통하고 참여합니다. 사람의 건강이라는 것은, 이러한 3가지 환경에 맞는 활동을 할 때, 나름답게 나투어납니다.

또한 생각은 과거와 미래 사이에 현재로써 나름답게 나투어납니다. '의지'는 아직 없는 것으로서의 미래를 현재로 불러들이는 새로운 설계로써 나름답게 나투어납니다. '판단'은 이미 있는 것으로서의 과거를 현재로 불러들이는 새로운 약속으로써 나름답게 나투어납니다. 이렇게 현재의 생각, 미래의 의지, 과거의 판단, 이 셋은 따로 또 함께 하면서 사람마다 '나름다운 나투어남'을 새롭게 창조합니다.

자연에서의 노동, 문명에서의 작업, 공적이고 정치적인 행동, 이 셋은 또한 과거의 판단, 현재의 생각, 미래의 의지와 어울립니다. 그 어울림에서 사람다움의 조건과 마음 삶의 역사가 끊임없이 나름답게 나투어납니다. 그 '나름다운 나투어남'인 여섯 활동의 사귐과 바뀜이 '아모르 문디(amor mundi)'를 만들어 가는 건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으면, 세계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아래와 같은 질문을 늘 되새김질해야 하지 않을까요?

- 누군가의 생생한 삶을 위한 '노동(labor)'을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진 않는가?

- 누군가의 생산의 효용을 위한 '작업(work)'을 나는 헛수고한다고 여기진 않는가?

- 누군가의 여럿의 사귐을 위한 '행동(action)'을 나는 괜히 나댄다고 여기진 않는가?

- 누군가의 새롭게 태어남을 위한 '생각(thought)'을 나는 지워 없애고 있지는 않는가?

- 누군가의 스스로 서기를 위한 '의지(will)'를 나는 눌러 버리고 있지는 않는가?

- 누군가의 진정한 소중함을 위한 '판단(judgement)'을 나는 얕잡아 보고 있지는 않는가?

자연과 문명과 여럿됨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구성된 바로 그 세계들을 사랑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아모르 문디!

신천 함소아한의원 대표원장 / MBC 본사 의무실 한방주치의 / EBS 역사드라마 <점프> 한의학 자문 / 연세대 물리학과 졸업 / 경희대 한의학과 석사졸업·박사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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