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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혁재의 건강창작소.4]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혁재 원장 | press@newsprime.co.kr | 2018.11.23 13:19:18

[프라임경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 걸까요? 누구나 떠올려 봤음직한 물음일 겁니다. 그래서인지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Lev Nikolayevich Tolstoy)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제목의 소설을 썼습니다. 제목도 그렇지만, 그 이야기 역시 지금까지 깊은 감동을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빵이 중요하지 않은 곳은 없습니다. 게다가 러시아는 추운 나라입니다. 그러니 그곳에서는 외투와 구두도 빵만큼이나 꼭 필요하겠죠. 소설은 이것들을 계기로 여러 일들이 잇달아 벌어집니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삽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나름 소중한 의미와 가치를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려고 합니다. 당시 러시아는 짜르와 대지주귀족들이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농민들의 삶은 고달팠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이 문맹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농민들을 톨스토이는 사랑하고 사랑했습니다.

그들에게 '우리들의 생명과 삶에는 빵, 구두, 외투 같은 것과 더불어 아주 소중한 의미와 가치가 더 있다'는 점을 톨스토이는 말해주고 싶어 했습니다. 오늘 나는 톨스토이의 물음에 기대볼까 합니다. 그리고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물음에 대해서, 몇가지 사람 사는 방식들을 내 나름대로 말하고자 합니다.

◆'먹고사니즘'과 사랑의 마음

내가 소개할 사람 사는 방식들이라는 것은 이렇습니다. 첫째 방식은 소설 속의 빵, 물, 우유, 고기 등이 가리키는 바와 이어집니다. 이것들은 생활필수품들입니다. 곧, 먹고 마시고 쓰고 나면 없어지는 소모품들입니다.

이런 소모품들은 지구자연 속 동물(인 사람)의 생존에 필수입니다. 이러한 본성자연적인 생존 또는 동물로서의 생존은, 요즘말로 '먹고사니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 사는 방식들 가운데 첫 번째 것은 이것입니다.

그런데 '먹고사니즘'은 나에게만 소중하지 않습니다. 내가 살고자 하는 것처럼 남들 또한 살고자 합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가 추위와 배고픔으로 죽을 것만 같을 때 그냥 내버려 두지 못합니다.

소설 속에서도 남편인 시몬과 아내인 마트료나는 낯선 남자인 (사실은 천사인) 미하일을 살립니다. 시몬은 미하일이 얼어 죽지 않게 돕습니다. 그리고 마트료나는 굶어죽지 않게 돕습니다. 먹고사니즘이 되지 않아 죽을 것만 같은 누군가를 만나면, 우리는 사랑의 마음이 일어납니다. 사람이 죽지 않도록 보살피고 돌보는 어머니 같은 사랑의 마음 말입니다.

◆장인의 삶과 내면의 양심

둘째는 소설 속의 침대, 집, 구두, 탁자, 창문, 지붕, 낫, 도끼 등이 가리키는 바와 이어집니다. 이것들 역시 생활필수품입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앞에서 말한 먹고사니즘의 소모품들과 다릅니다. '먹고사니즘'은 빵, 채소, 고기 같은 소모품들을 통한 지구자연과의 신진대사입니다.

그러나 톱, 도끼, 탁자, 지붕, 자동차와 같은 인공적인 내구재들은 지구자연 안에 먹고사니즘과는 전혀 다른 문명세계를 만듭니다. 이것이 사람 사는 방식의 두 번째 것인 '장인으로써의 삶'입니다.

시몬은 구두수선을 합니다. 천사인 미하일도 시몬의 조수가 돼서 구두수선을 배웁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미하일은 구두를 잘 만드는 소문난 장인이 됩니다. 경전을 베끼는 수도사나 성당을 건축하는 장인들도 미하일과 마찬가지일 겁니다. 장인들은 고독한 수행과 내면의 양심으로 달관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입니다.

도구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의 호모 파베르(homo faber)는 바로 이런 장인들을 통해 확인될 수 있습니다. 선불교의 노동선이나, 악기 연주나, 활과 검을 쓰는 무예나, 글을 쓰는 서예 등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렇듯 달관의 경지에 이르는 내면의 양심을 기르는 것 또한 사람 사는 방식일 것입니다.

◆나름다운 삶과 개인의 자유

셋째는 고아가 된 쌍둥이 소녀를 키운 부인이 가리키는 바와 이어집니다. 친엄마가 죽고 난 뒤에도 옆집 부인은 고아가 된 쌍둥이 자매를 함께 키웁니다. 함께 키우던 친아들은 먼저 죽고 맙니다. 쌍둥이 자매 가운데 하나는 죽은 엄마에게 발이 깔려 장애인이 되기까지 합니다. 옆집 부인은 직접 낳은 자식이거나 아니거나 장애가 있거나 없거나 사람을 가리지 않고 사랑을 베풉니다.

이때의 사랑은 죽은 사람을 살리고 싶은 첫 번째 사랑이 더욱 자라난 더 크고 깊은 사랑입니다. 사람으로 살 수 있는 첫걸음은 차별을 하지도 받지도 않고 한 사람 한 사람이 나름대로 사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옆집 부인의 사랑은 이를 몸소 보여줍니다. 나는 이것을 사람 사는 방식의 세 번째 것인 '나름다운 삶'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미하일은 하느님에게 벌을 받고 천사에서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잘못은 바로 쌍둥이가 걱정이 돼서, 죽을 운명인 엄마를 지맘대로 살려둔 것입니다. 하지만 미하일이 쌍둥이를 구둣가게에서 만났을 때, 두 아이는 미하일의 걱정과 달리 잘 크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여럿됨(plurality)'이라는 환경에서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사랑하는 '인류애(amor mundi)'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 자식과 남의 자식을 차별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장애가 있다고 차별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이때의 마음은 나름 자유로운 삶의 바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랑과 양심과 자유

이렇게 사람은 '사랑'과 '양심'과 '자유'로 살게 됩니다. '먹고사니즘'이 해결되지 않을 때, 우리는 그 죽음의 수렁에서 사람을 살리고 싶어 합니다. 그것이 사랑의 텃밭입니다.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사람은 한계를 넘어선 마음을 문명으로 건설하고 싶어 합니다. 그것이 양심의 텃밭입니다. 사람은 예외 없이 존엄하다는 것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나름다움을 응원합니다. 그것이 자유의 텃밭입니다.

나는 그 텃밭들을 한 마디로 '나름다운 텃밭'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은 사랑의 텃밭과 양심의 텃밭과 자유의 텃발이 모인 '나름다운 텃밭'에서 살아갑니다. 이들 텃밭이 가꿔지지 않으면 사랑과 양심과 자유는 생겨날 수 없습니다. 우리들은 그리고 아이들은 이것들로 살아가는 데 말입니다.

도움받은 사람들: 레프 톨스토이(Lev Nikolayevich Tolstoy), 앙리 베르그송(Henri-Louis Bergson),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마크 존슨(Mark Johnson) 및 더 많은 여러 사람들.

신천 함소아한의원 대표원장 / MBC 본사 의무실 한방주치의 / EBS 역사드라마 <점프> 한의학 자문 / 연세대 물리학과 졸업 / 경희대 한의학과 석사졸업·박사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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