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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범석의 라멘기행] 톳토리현의 규코츠라멘과 스라멘

"라멘은 국민식, 라멘을 알면 일본이 보인다"

장범석 푸드 칼럼니스트 | bsjang56@hanmail.net | 2018.12.06 16:03:20

[프라임경제] 중국 면 요리를 모델로 개발된 라멘은 돼지나 닭 뼈를 우려낸 스프가 일반적이다. 일부 지역은 어패류를 첨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톳토리에서는 이러한 공식을 따르지 않는다. 다른 지역과 달리 소뼈(규코츠·牛骨)를 사용한다.

왼쪽부터 규코츠라멘, 스(素)라멘. ⓒ 각각 톳토리현 관광연맹, 무사시야 홈페이지

이 스프의 매력은 소 지방 특유의 고소한 향과 담백함에 있다. 곰탕이나 쇠고기라면에 익숙해져 있는 한국인에게도 친숙한 맛이다. 요즘 소뼈 스프는 돼지와 닭에 이은 동물계열 제3의 스프로 일본에서도 마니아가 늘고 있는 추세다. 면은 중간 굵기 곡선 면을 사용하고 고명으로 챠슈·멘마·숙주·파가 올라간다. 삶은 계란 반쪽을 더 얹어주는 곳도 있다.

톳토리에 규코츠가 등장하는 것은 1950년대 후반이다. 처음에는 소뼈에 돼지 뼈를 섞어 국물을 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소뼈만 사용하게 된다. 소 사육이 활발했던 지역 특성상 정육 후 버려지는 뼈를 손쉽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원조는 요나고(米子)시에서 지금도 성업 중인 마스미(満州味)라는 라멘 전문점.

이 라멘의 존재가 본격적으로 외부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톳토리에서 쇠고기 스프는 일상의 식문화여서 어느 누구도 특별하다는 생각을 갖지 않았다. 게다가 지역이 외지고 인구가 적어 주목 대상도 아니었다. 그러던 중 2009년 지역유지들이 '톳토리 규코츠라멘 응면단'을 결성한다. 다른 지역이 그렇듯 마치오코시(지역부흥)의 일환이었다. 응원의 '원'을 '면(麺)'으로 바꿔 표기한 아이디어가 빛난다.

이때부터 TV 등 미디어가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당시 매스컴이 붙여준 별칭이 '50년간 숙성된 라멘'이었다. 2014년에는 응면단 주최로 '톳토리 규코츠라멘 월드서밋(summit)'을 개최해 성황을 이룬다. 이로써 규코츠는 톳토리를 대표하는 라멘으로 전국 유수의 고토치 라멘 반열에 오른다. 현재 중서부 지역 60여개 식당이 규코츠를 내고 있다.

규고츠 라멘이 뜨자 그동안 묻혀있던 또 하나의 라멘이 부상한다. 우동 같은 라멘, 스(素)라멘이 그것이다. 스라멘은 우동 국물에 중화면이 들어간다. 고명은 텐카스(튀김 부스러기)·파·어묵 등 우동과 동일하다. 스라멘은 1912년 창업한 우동 전문점 무사시야(武蔵屋)가 1955년경 개발했다. 톳토리에 라멘이 처음으로 보급되기 시작할 무렵, 학생들에게 저렴하면서 양을 푸짐하게 제공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라멘은 우동에 비해 스프 만들기가 까다롭고 챠슈 등 비교적 고가의 고명이 올라간다. 따라서 가격도 비싼 편이다. 하지만 스라멘은 면이 다를 뿐 나머지 구성요소는 우동과 같다. 같은 금액을 받아도 문제가 없는 것이다. '스(素)'는 꾸밈이 없고 소박(素朴)하다는 의미다. 점심시간 톳토리 시청의 구내식당에 가면 지역명물 스라멘을 250엔에 맛볼 수 있다.

◆톳토리(鳥取)현

인구 56만의 톳토리현은 전국 47개 토도후켄(都道府県) 중 인구가 가장 적다. 츄코쿠(中国)지방 북동부에 일본해(동해)를 끼고 동서 120㎞, 남북 20~50㎞의 좁고 긴 지형을 이루고 있다. 면적은 3507㎢. 서쪽으로 시마네(島根)현, 남쪽으로 오카야마(岡山)현, 동쪽으로 효고(兵庫)현과 경계를 맞대고 있다. 시마네현을 한데 묶어 산인(山陰)지역으로 부른다.

톳토리라는 명칭은 새(鳥)를 잡아(取) 조정에 세금으로 바치던 곳이라는 데서 유래한다. 예로부터 톳토리 평야의 호수와 습지에는 많은 조류가 서식했고, 그곳에 원주민이 수렵생활을 하고 있었다. 4세기경 고대국가가 성립하자 중앙체제에 편입되며 톳토리로 불리게 된다. 중·근세 들어 톳토리는 일본의 정치와 경제를 주도한 태평양 쪽 세력에서 소외돼 변방으로 남는다. 1996년 일본에 1호점을 낸 스타벅스 커피가 2015년이 돼서야 톳토리현에 첫 매장을 낸 것 하나만 보아도 이 지역의 낙후성을 알 수 있다.

이렇듯 한적해 보이는 톳토리현이지만 날씨가 추워지면 전국에서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북적인다. 겨울 미각의 왕으로 불리는 즈와이가니(대게)가 제철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어획되는 수컷 대게는 '톳토리 마츠바가니(松葉がに)'라는 브랜드로 고가에 팔려 나간다. 지난 11월 7일 톳토리항에서 첫 경매가 열렸는데, 최상품 한 마리가 200만엔에 낙찰됐다. 첫물 게는 각별한 의미가 있어 원하는 사람이 많다고는 해도 일반인이 상상하기 어려운 금액이다. 며칠 후 세상에서 가장 비싼 게로 기네스기록에 올랐다. 그렇다고 톳토리의 대게가 모두 이렇게 비싼 것은 아니다. '이츠키보시(五輝星)'로 불리는 최상품은 어획량의 0.1%에 그쳐 보통 3~5만 엔대에 가격이 형성된다. 하지만 400g 내외 잔챙이(?)는 1500~2000엔, 어획 중 흠집이 생겨 해체한 것은 더 싸게 나온다. 이츠키보시는 게딱지 폭 13.5㎝ 이상, 중량 1,2㎏ 이상, 색깔이 선명하고 온전한 형태를 갖춰야 가치가 인정된다.

한편, 규코츠 라멘의 발상지 요나고(米子)는 현 서쪽에 위치한 상업도시다. 톳토리시에 이은 현 제2의 도시로 에도시대부터 '산인의 오사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었다. 산인지역 중앙에 위치하는 지리적 이점이 있어 양 현을 통괄하는 기업이나 기관이 많이 들어와 있다. 현청소재지가 아니지만 톳토리 의과대학과 부속병원, 산인방송국 등 지역의 주요한 인프라가 이곳에 많다. 도시 외곽에는 항공자위대와 공동으로 사용하는 요나고 공항이 있고, 한국의 에어서울이 주3회 정기편을 운항한다.

◆명소 소개

△톳토리 사큐(砂丘)
1995년 국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톳토리의 심벌. 산인(山陰)국립공원 내 남북2.4㎞, 동서16㎞의 광활한 면적에 펼쳐진 모래 언덕. 산간지역에서 화강암이 풍화된 모래가 일본해로 흐르는 센다이(千代)강에 의해 축적된 사구. 최대 표고차 90m, 움푹 팬 절구통 모습 등 다양한 풍경이 전개. 말 잔등(우마노 세) 지형 근처에 오아시스가 있고, 입구에는 관광용 낙타와 말도 있음. TV 드라마나 CM에 나오는 사막 장면의 상당부분이 이곳에서 촬영. (교통편) JR톳토리역에서 톳토리사큐행 니혼(日本)교통 또는 히노마루(日の丸)버스로 22분 종점 하차.

△산부츠지(三仏寺, 삼불사)
톳토리현 중앙부 토하쿠군(東伯郡) 미사사쵸(三朝町)에 있는 천태종 절, 산 이름은 미토쿠산(三徳山). 706년 수행자 도장으로 개장. 수직 절벽에 세워진 안채 나게이리도(投入堂)는 국보, 미토쿠산은 국가 명승 및 사적으로 지정. 본당에서 나게이리도로 가는 길(표고차 200m, 길이 900m)이 험해 등산화와 복장이 갖춰지지 않으면 입산이 거부되고 2인 이상 짝을 이뤄야 함. 겨울철에는 등산로 폐쇄. 본당 입산료 ¥400, 나게이리도 포함 ¥800. (교통편) JR산인(山陰)본선 쿠라요시(倉吉)역에서 우에요시하라(上吉原)행 버스로 40분 미토쿠산 절 앞 하차.

△톳토리성
에도시대 이케다(池田)가문 12대가 통치의 거점으로 삼은 성. 일본 성으로는 보기 드문 산성. 천수대와 돌로 쌓은 성벽이 국가사적. 표고 263m 큐쇼잔(久松山) 정상의 천수각과 산죠노마루(山上の丸)를 비롯해 산록 곳곳에 부속 건물. 전국시대부터 에도말기까지 모든 성곽형태가 보존 돼있어 '성곽 박물관'이라는 별명이 붙음. 2006년부터 30년 예정으로 복원공사 중. (교통편) JR 톳토리역에서 '¥100 순환버스' 「미도리(녹색)코스」로 7분 현립박물관 앞 하차.

장범석 푸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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