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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혁재의 건강창작소.5] 프레디 머큐리, 어느 루저의 진정성

 

이혁재 칼럼니스트 | press@newsprime.co.kr | 2018.12.07 10:20:10

[프라임경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의 관객 수가 어느새 600만명을 넘었습니다. 지금까지는 2012년 12월에 개봉한 뮤지컬 영화인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이 592만명으로 가장 많은 관객을 모았습니다. 이 기록을 ‘보헤미안 랩소디’가 갈아 치운 겁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오늘 다섯 번째 이야기는 '무비 스페셜'로 준비했습니다.

'보헤미안 랩소디'가 다른 여러 나라에서와 달리 한국에서 훨씬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아마도 가장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진정성(authenticity)이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을 던진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물음을 던져보고 나름대로 대답하는 글이 될 듯합니다. 오늘 이야기의 제목도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 어느 루저(loser)의 진정성'입니다.

◆보헤미안 랩소디, 레미제라블의 어깨에 올라타다

영화 제목이기도 한 '보헤미안 랩소디'는 프레디 머큐리가 손수 작사 작곡한 노래의 제목입니다. 이 노래는 그룹 퀸(Queen)의 대표곡이지요. 여기서 '보헤미안'은 15세기 무렵 체코의 보헤미아(Bohemia) 지방에 떠돌던 집시(Gypsy)들을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늦은 19세기부터는 ‘관습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분방한 떠돌이 예술가’라는 뜻으로 바뀌게 되지요. 그리고 '랩소디'는 환상적이고 자유로운 기악곡을 가리킵니다. 한마디로 '보헤미안 랩소디'는 '자유분방한 떠돌이가 부르는 환상적인 노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레미제라블'을 넘어서고 나서도 그 기세가 아직 꺾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들 가운데에는 그룹 퀸의 명곡들과 그 시절에 대한 추억도 한 몫을 합니다. 그리고 마치 라이브 공연을 듣는 듯한 생생한 체험도 큰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더구나 '떼창(sing along)'을 하는 새로운 영화관람 문화도 아주 큰 몫을 하고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프레디 머큐리라는 어느 루저의 진정성이 관객의 심장을 깊숙이 오래도록 두드립니다.

아시다시피 영화 '레미제라블'은 여러 사람들의 인생에서 사람다움의 가치와 그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 판틴의 사랑, 자베르의 질서, 미리엘의 양심이 그렇습니다. 탈옥수 장발장은 이들 한 사람 한 사람과 만나면서 사랑과 질서와 양심을 배우고, 이를 더욱 키워 이성과 자유의 가치까지 성숙시킵니다.

1830년대 혁명과 반혁명으로 혼란한 시대적 배경은 관객들로 하여금 인류문명의 역사적인 의미를 되새기도록 돕기까지 합니다. 이 모든 사람이 애를 써서 코제트라는 한 어린 아이가 죽음으로부터 겨우 벗어나게 됩니다. 스크린 안의 모든 어른들이 힘을 모아서 진정성을 만들어 내자, 이를 지켜보는 592만명의 관객들의 가슴에도 비슷한 진정성이 거울에 비치듯 자리를 잡게 됩니다.

이와 달리 '보헤미안 랩소디'에서는 리드보컬인 프레디 머큐리 한 사람의 파란만장한 인생이 큰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보컬이라는 빛에 가려진 프레디의 인생은 한마디로 '루저 종합세트'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던 루저 프레디가 거듭 태어나더니 관객들마다 깊이 숨겨둔 루저의 기억들까지 불러내 어루만져 줍니다. 진정성이 스크린 안에서 밖으로 손을 뻗쳐 전해주는 듯 합니다. '레미제라블'이 건네준 진정성의 감동을 좀더 생생하게 '보헤미안 랩소디'가 이어받습니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그렇게 '레미제라블'의 어깨에 올라탄 게 아닌가 싶습니다.

◆프레디 머큐리, 8가지 '루저 종합세트'

프레디 머큐리는 루저로서의 자신을 감추고 언제나 챔피언이기만을 바랬던 적이 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프레디 머큐리는 루저도 그냥 루저가 아닙니다. 어떻게 숨겨볼 도리가 없는 '루저 종합세트'가 바로 프레디 머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추고 숨길 방법이 없다보니, 프레디는 하는 수 없이 자신의 '루저 종합세트' 속을 하나씩 하나씩 드러내고 인정합니다. 심지어는 마지막까지 감추고 숨기고 싶은 것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프레디는 죽기 전날 여러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알리게 됩니다.

이런 과정에서 루저 프레디는 자기가 보잘 것 없음을 끊임없이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는 그동안의 잘못도 하나하나 인정해 갑니다. 잘못으로 상처받은 사람들도 그의 진정한 사과를 알아차리고 하나하나 용서해 갑니다. 그런 진정한 사과와 용서가 쌓이면서 루저 프레디는 조금씩 달라지게 됩니다.

보잘 것 없는 그의 삶은 똑같을지 몰라도, 자신의 사과와 남들의 용서를 거치면서 프레디는 진정성이 담긴 깊은 삶이 무엇인지 조금씩 느껴갑니다. 관객들도 프레디의 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하나씩 둘씩 가슴에 닿는 듯한 생생하고도 깊은 여운을 느끼게 됩니다.

사실 프레디는 다양한 방면에서 루저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 글에서만도 그 목록이 9가지나 됩니다. 앞서 말한 '루저 종합세트'라는 비유가 결코 빈 말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읽기에 편하도록 '루저 종합세트' 목록에서 마지막 하나를 빼고는 1)에서 8)까지 번호가 매겨져 있습니다. 그냥 건너 읽지 말고, 여러분들도 한번 살펴봐 주길 바랍니다. 

1) 프레디는 이교도입니다. 프레디의 집안은 조로아스터교(Zoroastrianism)를 믿었습니다. 프레디의 집안은 8세기에 무슬림에 쫓겨 페르시아에서 인도의 구자라트로 피신한 조로아스터교도의 후손입니다. 니체가 지은 책인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 Zarathustra)’의 짜라투스트라가 바로 조로아스터와 같은 낱말입니다. 프레디는 책에서나 볼 수 있다고 생각했던 조로아스터교인이었던 겁니다. 가르침의 마루라고 할 수 있는 종교에서부터 프레디는 요즘말로 ‘인싸’가 아니었습니다. 

2) 프레디는 어려서부터 얼굴에 컴플렉스가 있었습니다. 치아가 많고 뻐드렁니라서 입이 튀어나왔습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뻐드렁니라는 뜻이면서 욕같기도 한 '버키(bucky)'라는 별명을 달고 삽니다. 그게 얼마나 싫었으면, 말을 하거나 웃다가도 치아가 드러나면, 프레디는 정색을 하면서 입술을 오므려 치아를 숨깁니다. 콧수염을 기른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합니다. 영화에 나오지는 않지만 프레디는 어린 시절 그를 '버키'로 기억하는 동창들과는 어른이 돼서 만나도 모른 체 했다고 합니다.

3) 프레디는 또한 이민자이기도 합니다. 프레디는 공무원인 아버지가 근무하던 동아프리카 인도양 해안에 있는 잔지바르라는 섬에서 태어납니다. 그런데 1964년에 잔지바르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게 되면서 거기에 살던 페르시아인들과 인도인들이 학살을 당하게 됩니다. 이를 피해 프레디의 가족은 영국으로 급히 이주하게 됩니다. 페르시아인과 인도인을 조상으로 두고 있는 프레디는 영국에서는 이민자로도 이방인의 외모로도 차별을 받게 됩니다.

4) 프레디는 잘 알다시피 성소수자입니다. 동성애자 또는 양성애자인 자신의 성적 취향을 알고 난 뒤, 이를 숨기고 싶었지만 숨기지 못합니다. 대학 시절부터 친구들은 프레디의 성적 취향에 대해 이미 눈치 채거나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더라도 프래디는 언론이나 외부에 자신의 성적 취향이 밝혀지는 것을 극도로 꺼렸습니다. 그러다가 1987년 매니저 폴 프렌터(Paul Prenter)가 언론에 알리고 맙니다. 이때 프레디는 극도의 분노와 우울을 겪기도 합니다.

5) 프레디는 또한 약물중독자입니다.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무대 공연이 끝난 뒤 공허할 때나,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없어 외로울 때마다 프레디는 파티를 벌입니다. 술, 담배 뿐 아니라 마약에 의존해서 공허함과 외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어합니다. 이런 프레디의 방탕한 생활은 멤버들과의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심약한 프레디는 좀처럼 약물 의존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6) 프레디는 '매춘부'입니다. 1984년 뮌헨 인터뷰에서 프레디 머큐리는 스스로를 '음악적 매춘부'라고 말합니다. 언론이나 대중들이 음악은 묻지 않고 멤버들과의 갈등, 개인의 성적 취향, 방탕한 생활을 물어올 때 괴로워합니다. 자신은 그저 '음악을 도구로 하는 매춘부'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킬러 퀸(Killer Queen)'이라는 노래에서는 신분이 높은 사람도 얼마든지 '매춘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 노래는 우리 모두가 진정한 소통을 하지 못하고 ‘매춘부’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묻고 있는 우화 같은 노래입니다. 

7) 프레디는 사회 부적응자입니다. 그는 가정생활도 적응하지 못하고, 팀에서도 늘 트러블메이커였습니다. 그러다보니 동거하던 메리 오스틴(Mary Austin)은 프레디를 사랑하지만 헤어지게 됩니다. 팀 안에서는 특히 브라이언 메이(Brian May)와 다투기를 밥 먹듯 했습니다. 하지만 반전도 있습니다. 이들은 프레디가 죽을 때까지 평생 친구와 팀 동료로서 함께 합니다. 프레디의 사랑이 얼마나 진정성이 있었는지는 메리 오스틴이나 브라이언 메이와의 관계에서 미루어 짐작할만한 구석이 있습니다. 

8) 프레디는 '오염된' 자입니다. 그는 당시만 해도 혐오와 기피의 대상인 '더러운' 에이즈 환자입니다. 언론과 대중으로부터 받는 수치심을 견디기 힘들었는지, 프레디는 마지막까지 이 사실만은 숨기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1991년 11월23일에 그는 이 또한 공식 인정하는 성명을 발표합니다. 그 전부터도 멤버와 지인들은 당연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프레디는 자기도 모르는 모든 사람에게까지 자신의 에이즈 감염을 알립니다. 그리고 발표 다음날 그는 죽습니다. 그 하루 동안 프레디는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프레디 머큐리, 어느 보헤미안의 진정성

무엇보다도 프레디 머큐리는 자신이 ‘살인자’라는 것을 점점 가슴 깊숙이 받아들이는 듯합니다. '보헤미안 랩소디'라는 노래에서 프레디는 떠돌이 '살인자'를 얘기합니다. 믿을 사람이라곤 엄마 밖에 없는 떠돌이 보헤미안이자 '살인자'를 말입니다.

그런데 이 '살인자'는 자기의 살인을 엄마에게 고백합니다. 그리고 프레디는 여러 개인들에게 노래를 부르며 이 살인을 다시 전합니다. 얼마나 진짜처럼 전하는지 '살인자'가 따로 있다는 것인지 프레디 자신이 범인이라는 것이지 헷갈릴 정도입니다. 어쩌면 프레디는 살인마저도 감추고 싶지 않은 '진정한 소통'을 이 노래에 기대서 바라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보헤미안 랩소디'의 살인자는 실재(real)인지 환상(fantasy)인지 헷갈려하는 어떤 불쌍한 소년(a poor boy)이기도 합니다. 이 불쌍한 소년이 바로 자유를 찾고 싶어 하는 떠돌이 보헤미안이고, 또한 프레디 머큐리일 수도 있습니다. 나아가 이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 모두일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엄마에게 이 소년이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이제 소년은 자기 죽음의 차례를 기다린다고요. 이 소년은 실재인지 환상인지 헷갈려 하면서도, 자기가 '살인자'였다는 진실은 까먹지 않고 뚜렷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프레디는 사람을 죽이고서도 쉽게 까먹는 시대가 되지 않기를 목놓아 노래한 것은 아닐까요? 더 이상 사람을 죽이고서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잔혹한 사람들이 더는 없기를 바라는 외침은 아니었을까요? 

프레디는 그렇게 이교도, 버키, 이민자, 성소수자, 약물중독자, 매춘부, 오염된 자, 부적응자이면서 또한 '살인자'입니다. 그의 감추고 싶고 숨기고 싶었던 아픈 상처들은 이렇게 쉼 없이 드러납니다. 어떤 상처는 남들이 먼저 들추기도 했지만, 결국은 프레디 스스로 커밍아웃을 합니다. 커밍아웃을 하면서 프레디는 죽기 바로 전날까지도 진심으로 보잘 것 없는 자기를 돌아봅니다. 그렇게 감추고 싶은 일들이 하나하나 알려지면서 프레디는 새롭게 거듭 태어납니다.

영화에서 프레디는 자신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을 눈치 챈 퀸 멤버들에게 깊은 용서를 구합니다. 그런 뒤에 다시 뭉친 퀸은, '생생한 도움'이라고 할 수 있는 '라이브 에이드(Live Aid) 공연'을 그들의 공연이나 다름없게 만들어 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이 때의 퀸의 공연을 잊지 못합니다. 1985년 7월13일 프레디와 퀸과 웸블리 스타디움의 관객들과 다른 공연장들의 관객들과 100여개 국가 19억 시청자들은 더 이상 사람을 죽이지 말자고 함께 외칩니다.

그리고 2018년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고 있는 또 다른 관객들도 죽음을 앞둔 한 루저의 진정성 담긴 마음을 똑같이 느끼게 됩니다. 스크린 밖으로 튀어나온 어느 루저의 생생한 손길에 담긴 진정성이 2018년 한국의 루저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더 이상 이런 식으로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이제 그만 끝장내자는 진정한 외침과 함께 말입니다.

◆진정성의 연못과 나름다운 나투어남

한 걸음만 떼면 죽음인 상황에서 막상 한 걸음을  떼고 나니, 프레디 머큐리는 사랑과 양심을 발견하는 듯합니다. 그는 죽어가는 자기 자신을 피할 수는 없지만 어떻게 사는 게 진정한 삶인지 그 의미를 알았나봅니다.

그러다보니 그는 보잘 것 없는 삶의 이야기를 더 이상 숨기지 않습니다. 숨기지 않고 드러낸 뒤, 프레디는 떳떳하고 당당한 루저가 됩니다. 루저라는 사실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루저인 자기자신을 스스로 모른 체 하는 것이 부끄러운 것임을 많은 이들에게 몸소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프레디 머큐리는 한마디로 ‘나는 루저다’라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립니다. 듣는 루저들이 '이제 그만해도 돼' 하는 마음으로 말려도 멈추지 않습니다. 그는 자기가 루저라는 사실을 잊지 않을 때만, 진정성도 전해질 수 있다고 굳게 믿었던 듯합니다. 그렇게 프레디는 '루저가 되기 싫은 챔피온'에서, '루저라서 괜찮은 챔피언'으로 바뀝니다.

보잘 것 없는 자기 자신을 내버려두지 않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살아 있는 마지막 날까지 모두에게 알립니다. 그렇게 이 '듣보잡' 루저는 마지막 가는 길까지 진정성을 놓지 않습니다. 

루저의 진정성은 그렇게 역설을 만들어냅니다. 루저이든 루저가 아니든, 가면을 쓰고 치장하고 살 수밖에 없었던 600만명이 넘는 한국인은 이런 진정성 있는 루저의 역설 앞에서 잠시 가면을 벗고 맨얼굴을 눈물로 씻어냅니다.

프레디를 위한 눈물인지 나를 위한 눈물인지 알 수 없는 눈물이 주르르 600만명의 눈에서 흘러내립니다. 이런 눈물이 쌓이다보면 언젠가는 영화관 밖에서도 너와 내가 각자의 가면을 벗고 맨얼굴로 서로 만나게 될 날이 올 것도 같습니다.

언젠가는 그 많은 눈물들이 모여 우리 뒤에 오는 아기들이 맘껏 헤엄칠 수 있는 '진정성의 연못'이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 나아가 한 사람 한 사람이 루저도 챔피언도 아닌 모두가 나름 자유로운 개인들이 되기를 눈물 많은 이들도 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듯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헤엄치다가, 때때로 나름다운 나투어남이 물 밖으로 튀어 오르더라도 다치지 않게 품어주는 그런 진정성의 연못을 만들고자 많은 이들이 아직도 애쓰며 살고 있나 봅니다.


도움받은 자료: 나무위키와 위키백과의 '프레디 머큐리', '보헤미안 랩소디' 그리고 여러 인터뷰와 라이브 에이드 공연

신천 함소아한의원 대표원장 / MBC 본사 의무실 한방주치의 / EBS 역사드라마 <점프> 한의학 자문 / 연세대 물리학과 졸업 / 경희대 한의학과 석사졸업·박사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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