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혁재의 건강창작소.7] 진정한 예외란 무엇인가: '예외중독자' 테나르디에와 김주영 관찰기

2019-01-09 11:15:25

◆'레 미제라블'과 '스카이 캐슬'…법률과 관습이 만든 여러 지옥을 지키려는 사람들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Les Mis?rables)'은 지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지난 이야기에 말했다시피, '레 미제라블(les mis?rables)'은 △가난한 사람들 △비참한 사람들 △가엾은 사람들 △짓밟힌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모두 인류가 만들어 놓은 지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단테(Dante)가 '신곡(La divina commedia)'에서 종교적인 세계의 지옥을 노래했다면, 빅토르 위고(Victor Marie Hugo)는 차별을 받는 현실 세계의 지옥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소설 '레미제라블'의 서문은 바로 '지옥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글이기도 합니다. 이 서문을 다시 한 번 올려 봅니다.

"금세기의 세 가지 문제들 곧, 프롤레타리아화로 인한 남성들의 타락(la d?gradation de l’homme par le prol?tariat), 굶주림으로 인한 여성들의 쇠약(la d?ch?ance de la femme par la faim), (물리적이고 영적인) 어둠으로 인한 아이들의 난장이화(l’atrophie de l’enfant par la nuit)가 해결되지 않는 한, 현재와 같은 법률과 관습은, 시민문명의 얼굴을 한 채, 지구상에 인공적으로 지옥들(enfers)을 만들고, 거룩한 하나님의 목적을 인간의 숙명이라면서 저버리게 만들 뿐이다. 이러한 사회적인 질식사가 가능한 한, 다른 말로 해서, 지구상에 무지와 비참함이 있는 한, 어떻게 보면 이런 책들도 결코 쓸모 없지는 않을 것이다."

위고는 1862년에 소설을 출판하기 바로 전까지 이 서문을 다듬고 또 다듬었습니다. 그 가운데서 나는 '법률과 관습이 인공적인 지옥들을 만들고 있다'는 위고의 통찰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 사는 세상을 생지옥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거나 거스르는 법률과 관습이라는 통찰 말입니다.

이는 전근대적인 신분의 차별이 사람의 자유와 존엄을 짓밟는 것을 바꾸지 않으면 지옥을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지옥이 바뀌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모두 질식사하게 되겠지요. 무지와 비참함은 인공적인 지옥이라는 프레임을 지키고 사회적인 죽음을 앞당기는 독소가 됩니다.

19세기 프랑스와 비슷하게 21세기 한국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지옥을 고발하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이 드라마는 바로 '스카이SKY 캐슬'입니다. '스카이 캐슬'은 탐욕, 분노, 어리석음의 3가지 독소의 불타는 집 곧, '3독화택(三毒火宅)'이라는 프레임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나의 경쟁자가 나보다 빠르다면 나는 더 쉽게 '포식자'에게 잡혀 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의 경쟁자가 나보다 더 빨리 '먹잇감'을 가로챈다면 나는 더 쉽게 굶어 죽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죽음에 대한 걱정과 공포와 불안과 두려움의 불씨를 키우게 됩니다. 그리고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은 이 불씨를 키워 불지옥을 만들고 사회적인 죽음을 앞당깁니다.

법률과 관습이 바뀌지 않으면 지옥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지옥들을 지키려는 이들까지 품을 수 있는 법률과 관습이 없는 한 지옥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소설 '레 미제라블'에서는 지하 세계를 지키려고 하수도의 문지기가 된 테나르디에가 있습니다. 드라마 '스카이 캐슬'에서는 자식을 인질로 삼아 부모의 목줄을 죄는 저승사자 김주영이 있습니다. 이들은 무지와 비참함 또는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부추겨 모든 사람의 마음에 지옥을 만들어 냅니다.

테나르디에와 김주영은 지옥이라는 프레임을 가녀린 사람의 마음에 이식한 뒤 그들의 삶과 죽음을 가지고 놉니다. 법률과 관습이 바뀌지 않는 한 테나르디에와 김주영은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그 결과 많은 이들이 그들의 '먹잇감'이 될 것입니다.

◆예외적인 사람이 되느냐 예외적인 사회를 만드느냐, 그것이 문제이다

전근대적인 법률과 관습에는 신분 차별이 있습니다. 신분 차별은 노예, 여성, 어린이, 장애인 등의 자유와 평등과 존엄을 짓밟습니다. 신분 차별이 잘못이니 없애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전근대에서는 아직 상식이 아닙니다. 그러니 어떻게든 신분이 높아져야 합니다.

예외적으로 높은 지위를 얻지 못할수록 죽음은 더 가깝기 때문입니다. '먹고사니즘'의 문제가 코앞에 닥쳐 있는 여러 사람은 차별에 저항할 틈이 없습니다. 소설 '레 미제라블'은 법률과 관습이 어떻게 사람들을 지옥으로 몰아가고 있는지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지옥 자체가 끝없이 '예외가 되지 않으면 너는 죽는다'라고 사람들을 부추깁니다. 그런 부추김을 하는 이들이 테나르디에이고 김주영 코디입니다.

테나르디에는 파리 하수도의 문지기이고 김주영 코디는 스카이캐슬의 저승사자입니다. 이들은 모두 인류를 증오합니다. 모든 인류가 무지와 비참함으로 인공적인 지옥에 빠져 살기를 바랍니다.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에 빠져 불지옥을 더욱 키워가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의 생존 본능을 건드려 허영과 공포를 사람의 마음 깊숙이 심어 놓습니다. 그리고 사랑과 양심과 자유를 쳐다볼 수 없게 만듭니다. 남의 권력은 무시하고 나의 힘은 과시하라고 합니다. 남의 명예는 깔아뭉개고 나의 체면은 드높이라고 합니다. 남의 정보는 훔치고, 나의 비밀은 숨기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남들이 노예처럼 내 말에 복종하기를 바랍니다.

이들은 신분의 사다리 꼭대기에 오르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을 노예처럼 부리는 예외적인 지위가 될 때 나는 여러 지옥들을 주무를 수 있습니다. 예외적인 지위를 가진 사람은 마법적인 주술을 쓰고, 높은 신분을 과시하며 지옥을 지배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내가 바라면 마법처럼 이뤄지게 되는 능력과 나의 승리를 남에게 자랑하려는 과시는 가장 소중한 삶의 가치가 됩니다.

이런 가치를 가장 소중히 여길 때 사람들은 '예외중독(exception addiction)'에 빠진다고 나는 추측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예외중독자'들은 예외가 될 수 없을 때는 살아가는 의미를 찾지 못합니다. 주술과 과시를 할 수 없는 세상은 허무하고 우울하고 재미도 없고 살아갈 가치와 의미도 없는 것 같은 금단현상이 생깁니다.

파리의 하수도에서든 서울의 스카이캐슬에서든 테나르디에와 김주영 또한 '예외중독자'들입니다. 내가 누군가의 주인이 될지언정 누군가의 노예로는 살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노예처럼 수단으로 대하는 것은 정당합니다. 나는 예외적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뺀 모든 인류는 내가 정해놓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수단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외중독자'들은 내가 누군가의 수단으로 사는 것이 싫은 것처럼, 누군가를 나의 수단으로 삼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모릅니다. 왜냐하면 지옥을 만든 경멸스러운 인류는 얼마든지 나에게 노예 대접을 받아도 싸기 때문입니다.

'예외중독자'들은 개체로서의 모든 개인들이 나름의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위험하다고 여깁니다. 어떻게든 나만 예외적인 사람이 되라고 부추깁니다. 그래야 예외가 된 자기를 뺀 인류를 증오하고 경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만은 예외라는 생각을 안 바꾸고 이대로 살 것인가, 아니면 모두가 예외가 되도록 이 사회를 바꿀 것인가?' 이런 햄릿스러운 고민을 그들은 거부합니다. 어차피 인류의 삶은 지옥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남자와 여자와 어린이가 모두 나름다운 개인으로 나투어남이 있다면, 지옥은 사라질 수 있습니다. 진짜 소중한 예외는 나만은 예외라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소중한 예외는 '지옥이 아닌 사회를 만들자'는 그전까지 없었던 인류의 약속일 것입니다.

◆사랑과 양심과 자유가 목적이 되고 질서와 이성이 수단이 되는 '커뮤니티센스 = 코먼센스'

소설 '레 미제라블'에서 테나르디에는 '예외중독자'다운 사건들을 빵빵 터뜨립니다. 1)워털루 전투에서 그는 시체털이범이 되어 마리우스의 아버지인 조르주 퐁메르시의 물건을 도둑질합니다. 2)워털루 여관에서 그는 엄마인 팡틴을 속이고 딸인 코제트를 하녀처럼 부려 먹습니다. 3)파리에서 그는 불량배 집단인 파트롱미네트의 우두머리가 돼서 부자인 위르뱅 파브르(=장 발장)를 납치하고 고문한 '고르보 강도 사건'을 일으킵니다. 4)그는 자기 아들 둘을 마뇽이라는 지인에게 돈을 받고 팔아먹습니다. 5)그는 장 발장이 도둑이자 살인범이라고 폭로하겠다고 사위인 마리우스를 협박합니다. 6)마지막으로 그는 프랑스를 떠나 노예상인이 되기 위해 뉴욕으로 떠납니다. 이렇듯 테나르디에는 자기의 목적을 위해 이 세상 모든 인류는 자기의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예외중독자'입니다.

그리고 JTBC '스카이 캐슬' 등장인물 소개에서는 김주영의 '예외중독자'다운 모습이 잘 나타납니다. 그녀는 서울대 입학사정관 출신으로 입학 성공률 100%의 베테랑 전문가로서 수십억의 몸값으로도 유명합니다. 지금 누리는 기득권을 대대손손 물려주고 싶은 대한민국 상위 0.1% VVIP들에게도 그녀는 상전 같은 인물입니다. 그들 누구도 그녀를 고용하지는 못합니다.

거꾸로 서류와 면접을 통해 그녀에게 선택돼야만 자녀 관리를 맡길 수 있습니다. 그녀는 원하는 대학에 진학시키기 위해 합법과 편법을 비롯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진학을 원하는 아이들은 김주영과 마찬가지로 나만 생각하고, 나만 최고인 '예외중독자'로 세뇌되고 그렇게 바뀌어 갑니다.

하지만, 테나르디에가 더 나은 프랑스 민주 공화국에 살았다면, 아마도 장 발장처럼 착하지는 않았더라도 장 발장 못지않은 좋은 시민은 될 수 있었을 겁니다. 김주영 또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1등만 기억하는 지옥 같은 세상이 바뀌었다면, 김주영도 다른 삶을 선택했을 겁니다. 그래서 테나르디에나 김주영이라는 '사람'에게 우리는 쉽게 돌을 던질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 돌을 던지기 어려운 까닭은 돌이켜 나의 마음을 한 번만 돌려 비춰보면 압니다. 내 마음에도 또한 테나르디에와 김주영이 숨어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테나르디에와 김주영이라는 물고기도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는 진정성의 연못을 만들겠다는 사람들의 약속입니다.

그래서 테나르디에와 김주영을 욕하기에 앞서 출세와 돈에 환장하는 '커뮤니티센스(community sense) = 코먼센스(common sense)'가 바뀌어야 합니다. 사람다움을 예외 없이 존중하자는 약속이 '커뮤니티 센스 = 코먼센스'가 될 수 있도록 모두 애써서 합의해야 합니다.

평범한 여럿이 함께 애써서 진정성이 담긴 사랑과 양심과 자유의 약속을 합의하는 것입니다. 예외적인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사람을 지배하는(ruling) 상황을 모두 없애야 합니다. 사람이 아니라 합의한 약속이 사람들을 지배하고 간섭할 수 있도록 바꿔야 합니다.

테나르디에와 김주영을 나쁜 사람이라고 비난하는 일은 이 약속에 비해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랑과 양심과 자유가 목적이 되고 질서와 이성이 수단이 되는 '커뮤니티센스 = 코먼센스'를 만들자고 약속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테나르디에나 김주영 같은 '예외중독자'들도 그런 예외적인 사회라면, 착한 사람은 아니라도 좋은 시민으로는 살 수 있을 겁니다.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진정성 있는 약속

칼럼을 쓰는 내내 나는 '나쁜 사람이란 누구인가'를 되물어 봤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칸트의 정치철학 강의(Lectures on Kant's political philosophy)'에 나오는 글토막이 떠올랐습니다. 그 글토막은 바로 뒤에 소개하겠습니다.

테나르디에와 김주영을 따로 불러오지 않더라도, 모든 사람은 누구나 '나쁜 사람'입니다. 칸트에 따르자면, 그리고 아렌트에 따르자면, 나쁜 사람이란 '비밀리에 스스로를 예외로 만드는 사람'입니다. 나는 우리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칸트가 개념규정하고 있는 '나쁜 사람'일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나쁜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100% 자율적인 사람이어야 하는데, 그런 사람을 나는 아직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훔치기를 바랄(want) 수 있다. 그러나 훔치기가 보편적인 법률이 되기를 나는 의지할(will)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법률이 보편적이라면, 재산(프로퍼티)이라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칸트에게, 나쁜 사람이라는 것은 스스로를 예외로 만드는 사람일 뿐, 사악함을 의지하는(will) 사람은 아니다. 왜냐하면 칸트에 따르자면, 그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악마들의 인종'이라는 것은, 보통 말하는 그러한 악마들이 아니라 '스스로만큼은 (보편적인 법률로부터) 비밀리에 면제하려는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다. 초점은 '비밀리에'이다. 그들은 공적으로는 결코 그 짓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렇게 한다면, 그때 그들은 공통된 이익과 관심에 맞서는 것 곧, 인민의 적들이 되는 것, 설령 그 인민들이 악마들일지라도, 그것이 명백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덕들과 구별되는 정치학 안에서는 "모든 것들이 '공적인 품행'에 좌우되기 때문이다(‘칸트 정치철학 강의Lectures on Kant's political philosophy’, 한나 아렌트 지음, 김선욱 옮김, 푸른숲, 52쪽을 참조해서 다시 고쳐 옮김.)."

위의 글토막을 읽으면 나는 속이 후련합니다. "나는 훔치기를 바랄 수 있다"라는 처음 글줄이 너무 반갑습니다. 이 글줄이 나의 강박적인 윤리의식을 무장해제 시켜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그 다음부터 나오는 글줄들을 남들을 향한 손가락으로 쓰지 않고, 나를 향한 손가락으로 써먹게 됩니다. 나같이 나쁜 사람들도 여럿이 힘을 합친다면 예외가 될 만한 약속을 공적 영역에서 합의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입니다.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아차린 얼마의 사람들'이 좀 더 늘어난다면, 어쩌면 좋은 사회와 국가를 함께 '예외적'으로 약속하고 만들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나쁜 사람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어려울지 몰라도, 좋은 국가는 나쁜 사람들조차 좋은 시민으로 만들 수는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메뚜기들보다 그들이 사는 들판이 더 우선하고, 물고기들보다 그들이 사는 연못이 우선하는가 봅니다.

이제 '레 미제라블'이야기를 마무리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미리엘이 보여준 양심과 그래도 바뀌지 않는 짐승 같은 자기 모습을 함께 받아들이는 충격에서 장 발장은 성숙해 갑니다. 빛남, 진리, 정의, 양심이 담긴 법률과 관습을 향한 미리엘, 쟝발장의 눈물과 괴로움은, 나자렛 예수의 가르침과도 그리 다르지 않을 겁니다. 또한 근대 로크의 시민정부통치이론이라는 설계는, '하나님 안에서의, 양심 안에서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모든 사람의 평등'을 세속화한 것이라는 래리 시덴톱(Larry Siedentop)의 통찰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러한 보편적인 양심의 충격이 없다면 '예외적인' 근대의 개인은 탄생하기 어려웠을 테니까요.

세상의 모든 책은, 인류문명의 모든 학문 책은 경전의 언어들로부터 태어납니다. 학문은 경전의 아이들입니다. 경전 공부를 통해서, 비로소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무언지, 양심이 무언지, 사람의 도리와 만사의 이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작은 점이 마음의 밭 한가운데 생겨납니다.

'이 한점이 있느냐 없느냐'가 인생을 바꿉니다. 자신의 내면 속에서 환한 빛남을 가진 인생이 되느냐 아니면, 주술적으로 덕지덕지 첨가물만 가득하거나 '페르조나 = 가면'을 쓴 과시적인 인생에 그치느냐, 이것이 여기서 갈림길에 섭니다. '그 한 점이 만들어지지 못한 인생'은 지옥입니다. 탐욕, 분노, 어리석음의 3가지 독소가 불타는 지옥입니다. 그러니 지옥을 바꿔야 합니다.

지옥을 바꾸지 않고 인류 전체에게 적의를 품었던 테나르디에와 김주영에게 돌을 던지기 힘듭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바로 나였고, 나이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나 또한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훨씬 더 늘어서 '예외적인' 약속이 만들어지길 믿어 봅니다. 그것이 바로 이 지옥을 끝낼 수 있는 진정성 있는 법률과 관습을 컨스티튜션하는 '예외적인' 약속이 될 것입니다.


도움받은 자료들
1) '레 미제라블(Les Mis?rables)', 빅토르 위고 지음, 정기수 옮김, 민음사
2) '레 미제라블', 톰 후퍼 감독의 뮤지컬 영화
3) '세기의 소설, 레 미제라블', 데이비드 벨로스 지음, 정해영 옮김, 메멘토
4) '개인의 탄생(Inventing the Individual)', 래리 시덴톱 지음, 정명진 옮김, 부글북스
5) '스카이 캐슬', JTBC 드라마
6) '칸트 정치철학 강의(Lectures on Kant's political philosophy)', 한나 아렌트 지음, 김선욱 옮김, 푸른숲


신천 함소아한의원 대표원장 / MBC 본사 의무실 한방주치의 / EBS 역사드라마 <점프> 한의학 자문 / 연세대 물리학과 졸업 / 경희대 한의학과 석사졸업·박사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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