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광무황제 독살 그리고 3.1운동

2019-01-16 16:34:16

[프라임경제] 지난 해 7월 대통령 직속의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공식 출범한 뒤, 관련 사업들이 정부 및 지자체를 중심으로 활발히 진행 중에 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100주년 기념위원회 출범에 앞서 6월8일 육군사관학교를 찾아 '신흥무관학교 설립 제107주년' 기념식을 거행했다.

이날 기념식에서 문 대통령은 "지금의 육군사관학교는 항일 독립운동 시기 신흥무관학교의 독립 정신을 계승하는 학교이자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임을 명확히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일련의 조치들은 역대 정부에서도 하지 못한 제대로 된 '역사 바로 세우기'로 평가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최근 한일간 정치·외교적 관계는 수교 이후 최악의 상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간을 100여년 전으로 돌려보자. 대한제국은 그 기운이 쇠락해 국제사회에서 발언권조차 얻지 못할 정도로 나약한 국가였다. 국모 명성황후는 일제 낭인들에 의해 무참히 암살되고 권력의 중심에는 친일파들이 득세해 황제의 권위는 무너졌고 백성의 삶 또한 의지할 곳 없이 피폐해 졌다.

광무황제가 일제에 의해 강제 퇴위당하고 아들 융희황제가 즉위했지만 이미 기울어질대로 기울어진 나라를 바로 세우기 힘들었다. 결국 나라를 일제에 빼앗긴 후 영어의 몸이 된 광무황제는 일제와 그의 하수인 노릇을 했던 친일파 손에 독살당하게 된다.

그날이 바로 100년전 1월21일이다.

1919년 1월21일은 명성황후에 이어 황제마저도 독살되는 동서고금에서 찾아보기 힘든 일대 사건이었다. 황제에게 독이든 식혜를 올린 상궁들은 이틀 뒤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이러한 사실이 궁밖으로 알려졌고 1919년 3월3일이 바로 광무황제의 인산일로 잡히고 이날을 앞두고 8도의 유생과 백성들이 서울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바로 이때 3.1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황제의 독살에 통탄하던 백성들이 나라를 되찾기 위한 결의를 인산일에 맞춰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광무황제가 무능하고 세계 정세에 어두웠던 임금이라는 평가는 사실 일제가 만든 프레임이다. 자신들의 식민 지배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대한제국 황제를 철저하게 짓밟았다.

이후 3.1운동을 계기로 1919년 4월10일 상해에서 대한민국의 뿌리인 '임시의정원'이 설립된다. 4월11일 제1회 의정원 회의를 통해 국호, 국체, 임시헌장 등이 채택·제정되고 지금의 헌법의 근간이 되는 전문(全文) 10조로 이뤄진 임시헌장을 통해 국호를 '대한민국', 국체는 '민주공화제'를 한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전문 10조를 토대로 1919년 9월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헌법이 제정 공포된다.

당시 헌법에서 주목해야할 점은 제7조로 '대한민국은 구황실을 우대함'이라는 조항이다.

이는 국호에서 '대한'을 정함과 동시에 국기를 '태극기'로 인정한 것 또한 대한제국의 정통성을 이은 것으로 이를 당시 헌법에 포함한 것은 한민족의 유구한 역사를 임시정부가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이어온 셈이다.

격동의 시기 나라가 힘이 없어 온전히 보전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웃 대국 청나라가 백성의 힘으로 체제를 뒤집은 반면 우리는 외세의 침략으로 나라를 잃었다.

3.1운동의 다양한 평가에서 민족자결과 시민정신 등은 상당한 연구가 진행됐지만 일제의 눈을 피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노력한 황실의 모습과 일제의 눈을 피해 독립운동에 대한 지원 등은 상대적으로 평가절하 됐다.      

망국의 원죄이자 최종 책임자에 대한 역사적 판단일 것이다. 하지만 3.1운동에 핵심 원동력 또한 국가 정통성에 기인한다고 말하고 싶다.

1909년 10월30일, 민족의 쾌거인 안중근 대한의군(大韓義軍) 참모 중장이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처단한 뒤 하얼빈 일본 관동도독부 검찰관 미조부치 타카오(滿淵孝雄)에게 밝힌 15가지 이유에서 첫 번째가 명성황후를 암살한 죄, 두 번째가 광무황제를 폐위한 죄라고 말한 것 또한 그 정통성에 기초했다고 볼 수 있다.

지금의 대한민국 이전에 임시정부 대한민국과 대한제국으로 그 뿌리와 정통성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다가오는 3.1운동 100주년 기념일에 앞서 오는 21일 광무황제의 독살이 결코 무관하지 않으며, 이 또한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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