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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칼럼] 백수일기 #2. 리얼체험, 반외국인 백수의 취업성공패키지

수년 걸친 뉴질랜드 공무원짬도 안 먹힌 기막힌 취업정책

한성규 청년기자 | press@newsprime.co.kr | 2019.01.18 13:36:49
[프라임경제] 귀국한지 한 달쯤 지났을 때였다. 청년실업 해결에 올인한다는 대한민국 정부를 믿고 고국에 왔건만, 딱히 해주는 건 없었다.

목 마른 사람이 우물 찾듯 동네 행정복지센터를 찾아갔다. 반나절정도 구체적인 구직 지원 상담을 받아볼 요량으로 미리 든든히 점심을 챙겨 먹고 양복까지 입었다. 그러나 이날 말 한 마디에 사실상 문전박대를 당했다.

"글쎄요, 우리 업무가 아니라서."

말이 좋아 '종합행정복지센터'지 종합도 아니었고 행정이며 복지는 또 무슨 개뿔. 짜증이 밀려왔지만 일단 참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는 공권력을 조심하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머물렀던 뉴질랜드에는 워크앤인컴(work&income)이라는 고용청에서 취업세미나와 관련 교육을 제공하고 면접비에 정장 구입비도 지원한다. 찾아보니 한국에도 비슷한 기관이 있긴 했다. 전화로 상담 약속을 잡고 싶다고 했더니 울산의 고용복지센터에서 알아보라는 답이 돌아왔다. 

◆1단계. 취업계획수립과정

두 달이 넘게 걸려 겨우 1단계 기초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 불행히도 내 고향 울산은 지금 최악의 고용위기를 겪고 있었다. 뭐라더라 위기관리지역이라고 했다. 조선업과 자동차업계의 불황으로 대량의 실업자가 쏟아졌고 정부가 위기관리지역으로 선포해 뭔가 추가 조치가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나 같은 백수가 찾아가는 곳에 줄만 길었다. 위기관리는 개뿔. 아저씨들 새치기나 좀 관리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또 참았다. 

초기상담을 하고 심리검사를 받았다. 제목은 심리검사지만 결과표에는 '구직준비도 검사'와 '직업선호도 검사'라고 찍혀 있었다. 구직준비도 검사에서 가족의 지지는 13으로 아주 낮았는데 자아존중감과 자기효능감이 98과 99로 하마터면 100점 만점을 넘길 뻔했다. 결과지를 받아든 상담사 선생님은 뭔지 모를 웃음으로 나를 바라봤다.

가족의 지지가 낮으면 가족과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생길 수 있으며 구직에 어려움으로 작용한다고 적혀있는데, 맞는 말이다. 가족의 지원은 어려운 상황에서 큰 힘이 될 수 있으니 전문상담원과 상담하라고 돼 있었다. 문제의 전문상담원은 알아서 찾아보라는데 돈이 없어 찾지 않았다. 이밖에 구직기술과 의사전달, 대인관계 활용, 구직정보수집 등 항목에서 90점 이상을 받았다.

직업선호도 검사 종합결과로는 ES형, 즉 진취적이고 사회형 인물이라는 평을 받았다. 리더십이 있고 설득능력이 탁월하다면서 공감 능력과 협동심, 사교성이 큰 대인지향형 인재로 판명을 받았다. 칭찬이 쏟아지자 기분이 좋아졌다. 

2단계는 진행할 직업훈련을 결정하는 것이다. 여러 가지가 있는데 리더십을 발휘하고, 설득하고, 공감 능력과 사교성을 발휘할 직종의 훈련은 없었다. 울산에 개설된 구직자 직업훈련은 CAD 설계, 요리사, 전산회계 등등이 있었다.

상담 선생님은 정원관리사를 적극 추천했다. 이에 정원관리사는 내 리더십과 설득능력, 공감 능력과 사교성을 쓸 기회가 없다고 적극적으로 항변했지만 들어주지 않았다. 친구 중에 정원관리사가 있는데 언제나 혼자 일한다며 매달렸지만 취업 잘된다고 무조건 정원관리사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에 오자마자 미세먼지 때문에 기침을 달고 사는 탓에 죽기는 싫어서 결국 비교적 먼지를 덜 탈 것 같은 전산회계를 선택했다.

◆2단계. 직무능력 향상

수업은 총 40일, 240시간 과정이었다. 두 달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하루 6시간씩 수업을 받고 엄청난 숙제를 해치워야 했다. 이렇게 공부하기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처음이었기에 온 종일 공부하면 회계 기초는 배울 수 있을 줄 알았다.

사실 제대 후에 해외취업이 '갑'이고, 공무원이 '갑중의 갑'이라는 말에 속아 뉴질랜드 국세청에서 수년간 일하고 온 참이었다. 다만 어카운트 매니저라고 회계법인 관리와 애널리스트 경력만 있어 부끄럽게도 회계의 기초조차 없었다. 이런 기회가 또 없을 것 같아 열심히 배울 맘을 먹었지만 결과적으로 이 꿈은 깨졌다. 

수업의 핵심은 어떻게 하면 시험에 합격할 수 있을까에 맞춰져 있었고 최종목표는 전산회계 자격증 취득이었다. 부끄럽게도 국세청 5년차인 나는 헉헉거리며 수업을 따라가다 고등학생들과 함께 친 자격시험에서 홀라당 미끄러졌다. 참담했지만 잃을 건 없고, 가진 건 불굴의 정신밖에 없는 다음 수업을 신청했다. 
 
이번에는 컴퓨터 활용능력시험 대비반이었다. 직장생활하며 엑셀 때문에 애를 먹었던지라 동기부여가 넘쳤다. 하루 4시간, 30일 과정이라 여유도 있었다. 처음 며칠간은 실용적이다. '이런 기능이 있다니' 감탄하며 집중했지만, 일주일 만에 감탄은 탄식으로 바뀌고 수업 내내 '저걸 어디에 쓰지'하는 생각으로 바뀐 게 함정이었다. 2주가 지나자 '나는 누구, 여긴 어디'의 실신 상태에 접어들었고 30일 후 또 낙방했다. 

지역 명문고를 나왔고, 학교 출석률이 많이 모자랐지만 나름 명문대에 합격해 군복무도 시험 쳐서 마쳤던 내가. 외국에서 공무원까지 한 아들을 자랑스러워하던 아버지는 2연속 낙방소식에 뒷목을 잡으셨다. 

나조차도 자괴감에 빠졌지만 곧 '이러려고 백수됐지'하며 긍정적인 맘을 고쳐 먹기로 했다. 대통령을 하든 삽질을 하든, 감방에 있든 물 건너 해외에 있든 긍정의 힘이 있다면 삶은 유쾌하리라. 

◆3단계. 집중 취업알선

몇 번의 시도 끝에 드디어 3단계 집중 취업알선 상담 예약이 잡혔다. 1시간50분을 버스로 달려 울산고용복지센터에 도착했다. 오후 2시에 시작한 상담은 정확히 21분 만에 끝났다. 

이력서·면접 클리닉, 일자리 정보제공이나 동행 면접 등 홍보책자에 등장한 상담스킬은 경험하지 못했다. 단지 취업성공수당을 받으려면 두 달 안에 취직을 해야 한다는 당부만 거듭됐다. 이날 나는 원하는 일자리와 남보다 좀 더 잘하는 것을 설명하려 애썼다. 

글을 쓰고 싶고 남들보다 영어와 일본어, 중국어를 사무실에서 쓸 수 있을 정도로 구사한다고 강변했다. 

하지만 상담사는 "워크넷에 글 쓰는 직업은 없고 외국어를 쓸 직장도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또 "중소기업에서는 특정 업무만 고집하면 안 되고 몸 쓰는 일이나 자재관리 업무 같은 것도 해야 한다"고 나를 타일렀다. 

덧붙여 집 근처 공단에 찾아가 면접이라도 보라며 등을 떠밀었다. 해당 공단은 동남아 출신들뿐이라 베트남어라도 배워야 하나 잠깐 고민했다. 지난 경력이나 이력서라도 보여주고 싶었지만 상담사는 응대 중에도 걸려온 전화를 받느라 바빠 슬그머니 집어넣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취업성공패키지가 끝났다. 

◆문제는 사람이 아닌, 시스템

굳이 긴 체험기를 남기는 이유는 이른바 '취업성공패키지'에 등장한 공무원 및 관련자들을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상담사 선생님은 최선을 다해 도와주려고 했지만 너무 바빴고 교육 선생님들은 열정적인 강의를 펼쳤지만 교육목표가 자격증 취득, 그 자체였을 뿐이다.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이었다. 올해 정부의 일자리예산이 23조500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좋은 정책은 바늘로 구멍을 파듯 정확히 필요한 구멍에 인력과 재원을 찔러 넣어야 실현된다.

정책을 만드는 사람과 집행자는 다르다. 정책을 만드는 것은 쉽지만 이를 의도대로 제대로 시행하는 것은 아주 어렵다.

체험기를 마치며 이왕 돈을 쓰려면 결제자의 눈치를 볼 게 아니라 집행하고 실행하는 이들에게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함을 강조하고 싶다. 

한성규 청년기자

*해당 칼럼은 사단법인 '청년과미래' 활동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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