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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칼럼] 혐오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혐오 온상된 남녀갈등 '진짜 대화가 필요해'

박성준 청년기자 | press@newsprime.co.kr | 2019.02.19 11:25:41
[프라임경제] 지난 설날, 전역 후 모처럼 시골에 내려갔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은 많이 달라졌다. 어리기만 했던 동생들은 벌써 중학교, 고등학교에 입학했고 어른들은 어느 덧 흰머리와 주름이 덮이셨다.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당연한' 것들은 그대로다.

음식은 여자들이 한다. 남자들은 큰 상에서 먹고, 작은 상에는 여자들이 좁게 앉아 적은 반찬으로 먹는다. 식사가 끝나면 여자들은 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한다. 남자들은 커피를 마신다. 손님이라도 오시면 여자는 술상을 차리고 남자들은 술을 마신다. 물론 자리가 끝나면 여자들이 자리와 상을 치우고 다음 음식을 준비한다. 나에겐 지금 껏 당연한 풍경들이었다.

명절에 남녀가 모두 같이 일하는 가정은 4.9%에 불과하다는 통계청 자료를 보면 대부분의 가정이 비슷할 것이다. 

'여성차별철폐협약'이 탄생한지 40년이 지난 지금, 국제적 기준에 비추어 보면 상당히 어색한 광경이다. 많은 시민사회 운동을 통해 세워온 여성인권은 아직 우리 생활에 스며들지 못한 듯하다. 뿌리 깊은 가부장제의 틀을 벗어나기엔 아직 부족한 모양이다. 

뿐만 아니라 여성이란 이유로 범죄의 대상이 되어 불안에 떨며 살아간다. 이에 대해 많은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이익충돌의 문제로 이해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온갖 비난을 감수하며 부르짖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이익집단의 이해관계에 불과할 뿐일까?

요즘 시대에 성차별이 어디 있느냐는 반문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차별받지 않은 사람이 어떤 차별이 있는지 알고 싶다면 차별받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온전한 주체가 되려고 하는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할 필요가 있다.

다만, 혐오까지 경청할 수는 없는 일이다. 혐오는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버지와 남동생을 비하하고 남성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범죄를 옹호하는 것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한다. 물론 이들의 감정을 재단할 수는 없다. 

사회구조적 모순 속에서 여성들이 당한 피해를 축소하거나 침묵하는 것도 잘못이다. 하지만 법적으로까지 문제가 되는 행위는 여성인권 신장은커녕 동정조차 받기 힘들다.

혐오는 혐오를 먹고 자란다. 철학자 니체는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속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체를 훼손하고 남성 목에 칼을 들이대는 사진을 찍어 올리는 것은 괴물과 다르지 않다. 또한 남자아이의 태아가 훼손된 사진을 퍼 와 "오늘 저녁은 낙태 비빔밥" "젓갈 담가 먹고 싶다" 등의 댓글을 다는 것은 혐오만 키울 뿐이지, 긍정적인 기능은 없다.

남녀 서로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대화의 장이 마련된다면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어렸을 때부터 성평등 교육을 의무화해서 실질적인 인식이 개선된다면 남녀 모두 차별받지 않는 평등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포괄적 차별 금지법을 제정하면 혐오와 차별의 표현이 사라지지 않을까? 그로 인해 우리 모두의 존엄성이 보호받는 사회가 오지 않을까? 여성운동가들이 국제적인 단체와 연대해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시대 흐름을 선도하면 합리적인 정책으로 발전하지 않을까? 이런 방법은 내버려 둔 채 혐오로 일관한다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한 사회의 발전은 갈등을 넘어설 때 가능하다. 누적된 혐오와 무관심, 차별과 억압의 폭발로서 나타난 최근 여성운동가들의 목소리가 없었다면, 해결책을 마련하려는 움직임을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갈등과 투쟁이 아닌 혐오는, 당장은 주목받을지 몰라도 후에는 더 큰 손실을 남긴다. 겉으로 드러난 표현들이 그 사람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를 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행복하고 혐오가 없는 세상은 사람이 평등할 때 비로소 만들어진다.

완벽한 행복과 평등이 어디 있겠냐마는, 그것을 지향하는 수준이 그 사회의 수준이다. 혐오를 없애는 것부터 근본적인 차별의 뿌리를 뽑아내는 것까지. 이제는 남녀가 힘을 모아야 가능하다.

박성준 청년기자

*해당 칼럼은 사단법인 '청년과미래' 활동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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