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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혁재의 건강창작소.11] '기억의 명리학'과 건강창작법

 

이혁재 칼럼니스트 | sijung1030@gmail.com | 2019.03.10 16:22:20

[프라임경제] 앞으로 새로운 칼럼이 하나 더 시작됩니다. 칼럼의 제목은 '이혁재의 명리학으로 읽다'입니다. 명리학(命理學)은 사람의 사주팔자(四柱八字)를 풀어서 따집니다. 사주는 '네 기둥'이란 뜻입니다. 그것은 태어난 연월일시를 육십갑자(六十甲子)로 표현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올해 2019년은 육십갑자로 기해(己亥)년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기'는 십간이고, '해'는 십이지입니다. 이처럼 십간(十干)와 십이지(十二支)를 짝지어, 연월일시를 표기합니다. 그래서 네개의 기둥은 모두 육십갑자로는 여덟 글자가 됩니다. 이것을 팔자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태어난 연월일시에 따라 서로 다른 사주팔자를 갖게 됩니다.

◆운명의 명리학, 기억의 명리학

우리 인류의 역사는 어떤 면에서는 자신의 생존의 기억들을 모아 여러 형태의 이야기들을 만들어 온 역사이기도 합니다. 그 가운데에 대표적인 것들이 5개 있다고 합니다. 그것들을 시간순서로 나열하면, 신화 영웅담 종교 과학 문학, 이렇게들 보는 듯 합니다.

이들 이야기의 형태 속에는 또한, 사랑 위대함 양심 이성 자유라는 가치들이 그 각각의 내용으로 들어 있습니다.

이들 가치는 생존의 깔닥고개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를 얻기 위해서, 인류는 죽음 장애 상처 아픔과 같은 괴로움의 댓가를 치루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의 어느 이야기는 그 형태와 내용, 둘 모두에서 인류 생존의 기억들입니다.

그러면 명리학에서의 이야기는 과연 무엇일까요? 전통적으로 명리학은 '운명의 이치 또는 논리를 풀이하는 학문'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그러나 뇌신경과학에 따르자면, 명리학은 더이상 운명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기억에 대한 것입니다. 나는 전통적인 운명학이 아니라, 인류생존의 이야기학 또는 신경기억학으로써 명리학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런 인류 생존의 기억학 또는 이야기학이라는 가설이 그럴 듯 하다면, 우리들 개개인의 운명 역시 이제는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기억의 명리학에서 사주가 기승전결이라는 드라마의 네 국면들에 비유된다면, 팔자는 인류 생존의 기억들을 담아내는 서랍같은 것에 비유할 수 있다고 봅니다.

다시 말하자면 사주라는 네 기둥에 인류의 무수한 이야기들이 기승전결로 펼쳐진다면, 팔자의 여덟 서랍에는 인류의 셀수없는 기억들이 포개져 있다는 것입니다. 개개인의 사주팔자는 따라서 인류의 숱한 기억들과 이야기들이 나름의 진실로 드러나는 것이다, 이렇게 나는 생각합니다.

한사람이 이 땅 위에 나투어난다는 것은 그래서 나름의 기억들과 나름의 이야기를 가진 진실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개개인은 이제 인류 생존의 기억과 이야기로부터 나름의 진실을 자아실현하는 것입니다.

운명의 명리학에서는 주어진 정답 아래 꼼짝없이 살아야했던 개개인으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 기억과 이야기 그리고 진실의 명리학에서 벌어진 것입니다. 기억의 명리학은 사주팔자를 통해 인류와 개인을 만나게 돕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도록 나름의 역사를 응원합니다.

운명의 명리학에서는 신화와 영웅담과 종교와 과학과 문학의 차이가 두드러지지 않습니다. 운명의 명리학에서는 사랑과 위대함과 양심과 이성과 자유의 차이가 두드러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억의 명리학에서는 신화와 영웅담과 종교와 과학과 문학의 차이가 두드러집니다. 기억의 명리학에서는 사랑과 위대함과 양심과 이성과 자유의 차이가 두드러집니다. 이렇듯 운명의 명리학에서는 흐릿하고 없던 것들이 기억의 명리학에서는 뚜렷하게끔 바뀝니다.

기억의 명리학이 제안하는 이런 가설이 어떻게 들리는지요? 이 가설이 낯선 사람도 많을 듯합니다. 하지만 그럴듯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낯설다는 사람이나 그럴듯하다는 사람이나 '이혁재의 명리학으로 읽다'라는 새 칼럼이 작은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생존의 깔딱고개를 넘어가는 처방의 기억들

사람마다 나름의 이야기가 다르면, 생존을 위해 소중한 가치들도 다릅니다. 소중한 가치들이 다르면, 죽음과 장애와 상처와 아픔이 주는 괴로움도 다릅니다. 괴로움이 다르니 치유하는 처방도 다르겠지요.

앞으로 '이혁재의 명리학으로 읽다'라는 칼럼에서는 생존의 깔딱고개를 넘어 괴로움을 치유하는 처방들이 소개됩니다. 주로 여덟 가지의 처방들이 제안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만 정답은 없습니다. 그저 치유를 돕는 하나의 방법으로 받아들여 주길 바랍니다.

여덟 가지 처방의 내용을 살짝 훑어보면 이렇습니다. 첫째, 어떤 사람들은 '먹고사니즘'을 해결하는 데서 치유가 됩니다. 둘째, 다른 사람들은 언어를 주고받다가 치유가 됩니다. 셋째, 어떤 괴로움은 행동을 바꾸면서 나아집니다. 넷째, 다른 괴로움은 여행을 다니면서 나아집니다. 다섯째, 어떤 깨달음은 종교의 교리에 대한 믿음을 키워 찾아집니다. 여섯째, 다른 깨달음은 과학의 가설에 대한 지식이 늘면서 찾아집니다. 일곱째 어떤 생존의 깔딱고개는 예술 활동을 하면서 넘어갑니다. 여덟째 다른 생존의 깔딱고개는 문학 활동을 하면서 넘어갑니다.

이 여덟 처방을 나는 △의식주 처방 미디어 처방 행동 처방 여행 처방 종교 처방 과학 처방 예술 처방 문학 처방으로 부르고 싶습니다. 이 가운데 치유를 위한 가치는 주로 십간에서 찾고, 치유를 위한 처방은 주로 십이지에서 찾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괴로움 가운데는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벗어날 수 없으니 딛고 일어서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그리 만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류 역사에서는 여러 지혜로운 사람들이 도왔습니다. 그들은 괴로움을 딛고 생존의 깔딱고개를 넘어갈 수 있도록 소중한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때로는 신화로, 때로는 영웅담으로, 때로는 종교로, 때로는 과학으로, 때로는 문학으로 말이지요.

이 이야기들은 여러 사람의 헤아릴 수 없는 괴로움들의 기억입니다. 그리고 넘어가기 힘든 갈등을 치유하는 처방의 기억도 있습니다. 이 기억들을 떠올려 사람은 나름의 이야기를 만들게 됩니다.

사주팔자에 맞게 진실 더미가 이야기로 재구성될 때, 치유를 돕는 처방도 태어날 수 있게 됩니다. 나름의 이야기가 가치를 담을 때, 사람은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 나름의 이야기는 다시 누군가의 생존을 돕는 기억이 되기도 합니다.

앞으로 죽음과 장애와 상처와 아픔이 주는 괴로움이 어떻게 이야기가 되는지 구체적으로 살필 예정입니다. 나름 진실한 이야기는 주인공의 노래와 같습니다. 이때 사주팔자라는 서랍이 어떤 소리를 내는지 여러분이 잘 지켜봐 주길 부탁합니다.

사랑과 위대함과 양심과 이성과 자유라는 가치가 생존의 깔딱고개를 넘어 성숙하기를  바랍니다. 여러 나름의 이야기가 울려 퍼지기를 기다려 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이야기가 또  다른 사람들에게 지혜로운 기억으로 남게되기를 바랍니다.


신천 함소아한의원 대표원장 / MBC 본사 의무실 한방주치의 / EBS 역사드라마 <점프> 한의학 자문 / 연세대 물리학과 졸업 / 경희대 한의학과 석사졸업·박사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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