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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25시] 일본의 '레이와'와 문재인의 소득주도성장 차이점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9.04.03 15:30:54
[프라임경제] 기존 일왕이 물러나고 이제 새 일왕이 즉위하는 변화의 길목입니다. 비록 총리가 지도하고 의회에서 정책을 결정하는 의원내각제 국가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그 '상징적' 존재인 일왕이 차지하는 의미가 나름대로 있기에, 일본인들은 이번에 아키히토 일왕 시대를 닫고 나루히토 일왕의 치세가 열린다는 점에 적잖은 의미를 부여하는 양상입니다. 그 하나의 징표가 연호 변경이지요.

아키히토 일왕에 앞서 군림한 이는 히로히토 일왕이고 그는 쇼와 연호를 사용했습니다. 이제 아키히토 일왕 시대가 끝나므로, 지금까지 쓰던 헤이세이를 내려놓고 새 일왕의 시대를 표시하는 연호를 쓰게 됩니다. 그 연호가 근래 결정됐는데 대단히 의미심장합니다.

새롭게 사용될 연호는 '레이와'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아름답게 마음을 맞대면 문화가 태어나고 자란다'는 뜻이라지요. 질서와 평화에 심지어 문화 개념까지 들어가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일본 고전인 '만엽집'에서 따온 표현이라는 점입니다. 그간 일본 연호는 중국 고전에서 표현을 따서 정했는데 '그야말로 최초로' 이번에 중국의 것이 아닌 일본 고전에서 차용했다고 합니다.

이는 대단한 문화적 자부심의 결정체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일본은 중국과 한국에서 문화를 받아들여 성장해 오던 동아시아의 변방에서 서양식 개국을 가장 먼저한 '탈아입구' 국가로 빠르게 변신해 왔습니다. 그 와중에 심지어 제2차 세계 대전의 한 주축이 될 정도로 눈부시게 성장하기도 했고, 거기서 패했지만 다시 빠른 전후 복구를 이루고 새롭게 선진국 대열에 다시 참여하는 괴력을 과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긴 여정에서도 전통적으로 중국 고전에 따른 연호를 쓰던 일본이 이제 비로소 일본 고전에서 좋은 글자를 따와서 연호를 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오랜 기다림과 이제 드디어 막 뽑아든 칼날의 날카로움에 우리가 주목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런 와중에 우리나라에서는 새삼 정책의 '족보' 논쟁이 있었지요.

문재인 대통령이 근래 "소득주도성장은 세계적으로 족보 있는 얘기"라고 말한 것인데요, 이는 "최저임금(상승)은 죄가 없다"는 기존의 청와대 입장을 대변한 것이자,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을 오래 괴롭혀온 '소득주도성장론의 문제점' 지적에 대한 고용주로서의 항의이기도 합니다.

문 대통령은 진보단체 관계자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이 이야기를 꺼내들었습니다.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이었지만, '작심'했던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문 대통령이 매번 소득주도성장론을 속칭 '듣보잡(듣지도 보지도 못하던 잡놈)'쯤으로 취급하는 국내 주류 경제학자들, 그리고 언론에 이제 완전히 지쳐 폭발한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문 대통령이 이렇게 소득주도성장론에 대해 제대로 자리를 잡아주고 싶었다면, 족보 문제를 거론할 게 아니라 앞서 이미 그간 집권 기간 와중에 중간 성적표를 제대로 만들어 줬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실험을 했으면 그 실험의 결과값이 들어맞아야 하는 게 중요합니다.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문재인 정권의 핵심 정책이 족보를 따지려면, 지금쯤 소비와 투자가 늘고 온 사방에 일자리가 널려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정부의 경제 개입에 대해 호의적인 케인즈 학파인 정운찬 전 서울대 교수조차 3일 문재인 정권의 소득주도성장에 대해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경제 정책이라기보다는 인권 정책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꼬집은 것을 청와대는 뼈저리게 받아들여야 할 겁니다.

정 전 교수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고용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의 소득은 올려줘도 자영업자나 중소상공인과 관련된 고용은 많이 줄었기 때문에 전체 소득이 늘어날지 안 늘어날지는 알 길이 없다"며 "그런데 현재로서는 늘어났다는 증거가 별로 없지 않나"라고 했지요.

일본의 '지나치다 싶을 만큼의' 오랜 기다림과 비로소 밖으로 자부심을 드러내는 일처리, 그 결정체가 '역사상 최초로' 등장하는 이번의 일본식 연호라고 보는 기자로서는, 정책의 족보를 따지는 청와대의 태도가 너무도 성급하게 느껴집니다. 농축된 결과와 그로 인해 얻어진 많은 성과물, 그리고 더해진 많은 점검과 확인의 시간들이 겹쳐져서 한꺼번에 그리고 한방에 '딱' 터져나와야 힘을 받을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연호와 경제 전반의 정책 기조는 물론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클라이막스를 다스리는 결정력, 오래 기다릴 수 있는 인내력 그리고 무엇보다 바탕이 되는 세계 최강의 실력 그리고 우수한 결과 등이 일본만의 전유물은 아닐 것입니다. 문재인 정권은 지금 그런 걸 기획하고 추진할 재미보다, 밖으로 표출하는 일에만 재미들린 게 아닌가 기우가 듭니다. 일본의 새 연호 결정 사례를 계기로, 선전과 분투를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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