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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혁재의 명리학으로 읽다.2] 사천만 배우 류승룡의 '메멘토 모리' 이야기를 읽다 ②

 

이혁재 칼럼니스트 | sijung1030@gmail.com | 2019.03.27 09:40:34

[프라임경제] 생존의 깔딱고개에서 사람은 치유를 돕는 처방을 운명'처럼' 만나게 됩니다. 이 처방은 그의 죽음과 장애와 상처와 아픔의 기억으로 만들어집니다. 이 나름의 기억들이 주인공을 다른 사람으로 거듭 태어나게 합니다. 그래서 운명이 아니라 '기억'입니다. 사천만 배우 류승룡도 운명처럼 다가온 기억이 있습니다.

류승룡은 '메멘토 모리'란 글귀를 늘 가슴에 담고 있다고 합니다.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라는 의미가 담긴 말입니다.

류승룡은 어째서 이 글귀를 가슴에 담게 되었을까요? 지금부터 그 기억의 자취를 명리학으로 읽어보겠습니다. 그에 앞서, 덧붙이는 글을 짧게 올립니다. 아랫글에는 이탤릭체로 된 글줄들이 띄엄띄엄 나타납니다. 그 부분은 '명리학으로 읽기'를 집중적으로 한 곳입니다. 2014년 갑오년의 '갑'과 '오'와 '갑오'를, 2018년 무술년의 '무'와 '술'과 '무술'을 좀 더 설명한 부분들입니다. 그다지 궁금하지 않은 독자라면 이 부분은 뛰어넘거나 대충 읽어도 됩니다.

◆2014년 갑오년(甲午年),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2014년 갑오년에 류승룡은 영화 '명량'으로 그의 삶에서 세 번째로 천만 관객 영화배우가 됩니다. 하지만 같은 해 11월이 되면서 가파른 내리막길이 시작되지요. '라디오 스타'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그는 '확 뜨고 나서 가장 많이 변한 연예인', '뜨고 나더니 휴대전화 번호까지 바꾼 사람'이라는 악담을 듣습니다. 이어진 비난과 악플로 그는 사회적으로 죽어갑니다.

류승룡이 겪은 이 악담의 깔딱고개를 나는 갑오의 '갑'에서 봅니다. 갑은 양의 기운을 가진 나무입니다. 사람에게서는 어짊(仁)과 사랑을 지향하며 아낌없이 사랑을 주는 가치입니다. 그런데 나무는 풀과 달리 기운의 오르내림이 더 높고 깊습니다. 갑은 사랑의 공감도 크게 일어나지만, 미움의 반감도 크게 일어납니다. 큰 사랑이 류승룡을 들어 올리고, 큰 미움이 그를 끄집어 내립니다.

이어서 더 큰 죽음들이 연이어집니다. 가까운 사람들이 한 사람씩 죽고 맙니다. 믿고 따르던 김효경 교수가 이 세상을 떠납니다. 대학로에서는 선배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합니다. 이때부터 장모와 매형 그리고 누나가 한 해 한 해 류승룡을 떠나갑니다. 류승룡은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곧 '죽음을 기억하라'는 글귀를 되뇌면서 죽음 앞에서 자신의 정체성의 밑바닥을 다시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메멘토 모리'는 갑오년의 '오'라는 들판과 어울립니다. 오는 불꽃의 기운입니다. 불꽃의 들판에서 사람은 치룸(禮)이나 양심이 어떤 가치와 의미인지, 그 정답을 찾습니다. 잇달아 죽어간 사랑하는 사람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떠도는 자신을 류승룡은 직시합니다. 정답이 떠오를 때까지 멈추지 않고, 그는 삶과 죽음을 쳐다봅니다.

류승룡은 냉면 고명으로 나온 수육 한두 점에 소주를 네 병이나 마시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는 술에 절어 죽어가는 자기 모습을 봅니다. 그러던 그가 술을 끊습니다. 아낌없이 사랑을 나누려면 그 길밖에 없었을 겁니다. 모든 것이 불탄 가운데 홀로 남게 된 죽은 나무로부터 새싹이 나오기 시작하듯이 말입니다.

이는 갑오의 기운과 비슷합니다. 갑은 생명을 사랑하는 나무입니다. 오는 환한 양심이라는 꽃이 만발한 들판입니다. 그러나 달리 보면 불난 들판의 타버린 나무이기도 합니다. 이 나무는 죽음 한가운데에서도 들판의 여러 꽃 속에 서 있을 자신을 다시 상상합니다. 류승룡의 '메멘토 모리'라는 정답은 이렇게 죽은 나무를 살립니다. 생존의 깔딱고개를 넘은 나무는 꽃이 펴도 사랑하고, 꽃이 져도 사랑합니다.

◆2018년 무술년(戊戌年), 삶과 죽음이 담긴 오답노트

2018년 무술년에 더 깊은 수렁에 류승룡은 빠집니다. 영화 '염력'과 '7년의 밤'은 100만 관객도 넘기지 못합니다. 관객들에게 '7년의 밤'은 별 의미를 주지 못했고, '염력'은 재미를 잃었습니다. 2015년에서 2017년까지 이미 바닥을 쳤다고 류승룡은 생각했지만, 아직도 바닥이 아니었습니다. 이때 연기를 그만둘 생각까지 그는 했습니다. 몇 년 동안 겪었던 죽음들처럼 살아감도 내 맘이 어쩌질 못합니다.

죽음만큼이나 삶도 어쩌지 못한다는 진실을 류승룡은 받아들입니다. 진실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은 무술 가운데 '무'의 가치와 잘 어울립니다. 무는 양의 기운을 가진 흙입니다. 산을 상상하면 됩니다. 산은 오랜 시간 삶과 죽음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흙더미입니다. 그 두께는 류승룡이 살아온 두께이기도 합니다. 이 두께가 깊은 만큼 진정성도 깊어집니다.

이제 높은 산꼭대기만을 그는 찾아 오르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평지의 둘레길들을 돌아다닙니다. 그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주고받는 말 한마디가 그는 더 소중합니다. 술 먹고 부리는 허세보다 차를 마시고 나누는 진실이 좋습니다. 휘갈긴 사인을 줄 때보다 손수 만든 명함꽂이를 건넬 때가 기쁩니다. 아프리카를 가더라도, 초원을 누비는 사자가 사냥하는 모습이 그는 궁금하지 않습니다. 그 동네에 사는 주민들의 먹고 놀고 일하는 삶이 그는 더 궁금합니다.

진실과 맞닿을 때의 이 뿌듯한 느낌은 무술의 '술'이라는 가을 들판의 흙입니다. 이 들판은 믿음(信)과 자유의 가치와 의미를 찾아 몸부림친 오답투성이 노트입니다. 이 노트에 담긴 참회와 절제가 진정성과 만나서 예술이 되고 문학이 됩니다. 류승룡이 선택한 진실은 산꼭대기가 아니라 골짜기 바닥에서부터 차곡차곡 다져집니다.

여행과 봉사와 신앙으로 류승룡은 슬럼프를 버팁니다. 들풀을 보고, 차를 마시고, 나무 다듬는 일을 배웁니다. 이것들은 모두 진정성을 성숙시키고 자기를 존중하게 해줍니다. 인생의 깔딱고개에서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하나하나 자기를 고쳐간 오답들의 기록이 이제 류승룡의 불행을 바꿉니다.

2018년은 무술년입니다. 이 해에 그는 생존의 깔딱고개를 진정성과 참회와 절제로써 넘어갑니다. 이 뒤부터 맘대로 되지 않는 일이 그는 두렵지 않습니다. 그게 오히려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이 사라지자, 슬럼프는 죽음의 모습이 아니라 삶의 모습이 됩니다. 죽음이 삶으로 바뀌는 것은 무술년의 기운과 어울립니다. 무토가 술토와 만나면 켜켜이 흙이 쌓여서 산이 깊어집니다. 켜켜이 쌓인 흙은 죽음을 딛고 일어난 삶의 역사입니다.

◆류승룡이 만든 처방의 샘물

류승룡은 난타 공연을 하면서 '강심장'이 됩니다. 난타 공연은 심장에 도움이 되는 '활동처방'이었습니다. 소리가 빠르고 느릴 때, 크고 작을 때, 높고 낮을 때, 심장은 다르게 움직입니다. 심장은 긴장과 이완을 바꿔 소리에 몸을 맞춥니다. 심장이 튼튼하면 마음을 비우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강심장이 아니었다면 류승룡은 슬럼프를 이겨내기 힘들었을 겁니다.

류승룡은 술을 끊고 '차 전도사'가 됩니다. 참 잘한 일입니다. 내 몸에 맞는 차를 처방해서 꾸준히 마시면 마음도 치유됩니다. 술을 많이 마시면 누구든지 허세를 절제하기 힘들어집니다. 최고가 아니면 늘 괴롭습니다. 이때는 담담한 맛이 나는 차가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술이 잦으면 듣기 싫은 말을 사람들은 참기 어려워 합니다. 입바른 소리는 듣고 싶지 않습니다. 이때는 떫고 쓴 맛이 나는 차가 도움이 됩니다. 술로 찌든 마음의 때는 차로 닦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류승룡은 '새내기 목수'입니다. 장인의 길을 따르는 '예술처방'은 간절히(誠) 제대로(敬) 하고픈 마음을 기릅니다. 나의 악기를 손수 만들면 더 좋습니다. 세상에 하나뿐인 악기는 자존감을 키웁니다. 북을 잘 치면 심장이 섬세한 떨림을 읽게 됩니다. 거문고를 잘 타면 소리에 뜻을 실어 보낼 수 있습니다. '목공예'와 '악기 연주'는 나를 찾는 지름길입니다.

나를 찾는 길에 '여행처방'이 빠질 수 없습니다. 그는 여행의 힘을 잘 알고 있는 듯합니다. 류승룡은 국내의 둘레길과 섬들을 많이 갑니다. 멀리 코카서스나 캄차카, 그리고 아프리카도 다녀왔습니다. 여행 때 글쓰기를 같이 하면 더 좋습니다. 발로 걷는 여행과 손으로 쓰는 여행이 함께 할 때, 일상의 거룩함은 온몸으로 느껴집니다.

여행하기는 땅이라는 노트에 발로 글을 씁니다. 글쓰기는 노트라는 땅에 손으로 길을 만듭니다. 글과 길은 서로 통합니다. 이들이 통하게 될 때, 사람은 자유로운 개인으로 거듭 태어납니다. 처음에는 일기나 여행메모를 가볍게 써보길 바랍니다. 어떤 형식으로든 여행길을 담은 글을 쓰면 쓸수록 류승룡에게 아주 좋습니다. 나아가 작가가 되려고 애쓰면 더욱 좋습니다.

류승룡이 작가가 되면 더 많은 사람의 괴로움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 류승룡의 마음 깊이 담긴 '메멘토 모리'는 여행길과 만나 글로 바뀌면 좋습니다. 아직 글쓰기가 두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죽음의 수용소에서'(빅터 플랭클, 청아)와 '창작에 대하여'(가오싱젠, 돌베개)를 먼저 읽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류승룡의 마음속으로 김효경 스승님을 어쩌면 그 책들이 다시 불러올지도 모릅니다.

이제 마무리를 해야겠습니다. 류승룡을 빗대어서 그의 삶에서 여러 처방을 나는 읽어내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 처방들은 류승룡에게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나를 존중하고, 남에게 관심을 두려고 애쓴 사람들 모두에게 그것들은 통하기 때문입니다. 자연과 문명, 종교와 과학, 예술과 문학이 어울린 처방들은 나와 남이 자유로운 개인으로 살도록 돕습니다.

류승룡이 만든 처방들은 다른 사람들이 겪는 깔딱고개에서 물 한잔은 될 듯합니다. 나를 존중하고 남에게 관심 두는 가치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앞으로 어떤 샘물을 더 만들게 될지요? 나는 그 샘물이 기다려집니다.


▶덧붙임: 두 번째 주인공은 아이유입니다. 그는 생존의 깔딱고개를 어떻게 넘었을까요? 그는 어떤 처방을 만들었을까요? 다음에는 이런 물음을 모아 '아이유에게 보내는 밤편지'를 가지고 돌아오겠습니다.


신천 함소아한의원 대표원장 / MBC 본사 의무실 한방주치의 / EBS 역사드라마 <점프> 한의학 자문 / 연세대 물리학과 졸업 / 경희대 한의학과 석사졸업·박사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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