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칼럼] 백수일기 #5. 돈 안 들이고 몸 안 버리고 노는 법

2019-04-11 13:24:44

[프라임경제] 직장에 다닐 때 취미

직장이 있을 적 내 취미 생활 8할은 술이었고, 나머지 2할은 뒷담화였다. 술을 안 먹으면 가끔 뒷담화를 했지만, 술을 먹으면 거의 항상 그 자리에 없는 사람 이야기가 오갔다. 

술은 또 좀 비싼가? 한국에 있을 땐 그나마 괜찮았지만, 뉴질랜드에선 그 귀하디귀한 삼겹살과 소주라도 먹을라치면 일인당 70달러는 기본이었다. 또 다음날 머리도 띵하고 힘도 없어 하루 종일 펴져 있었다. 

없는 사람 욕하는 게 그날 밤에는 재밌지만, 다음날 그 사람을 만나면 불편했다. 원래는 잘 지내던 이들도 남들과 욕을 한 후엔 이상하게도 나쁜 점만 보였다. 결국 내 취미는 돈을 앗아가고, 몸도 앗아가고, 인간관계까지 앗아가는 악취미였다. 

백수가 되고 난 후 취미 

백수가 된 후에 여러 가지 취미가 생겼다. 다른 취미 소개는 다음 편에 하기로 하고, 오늘은 연극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연극? 그건 정준영쯤 생겨야 하는 거 아냐? 아니면 유호성 정도의 카리스마는 있어야 하는 거 아냐? 네 얼굴에? 네 까짓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나도 내 외모 한계를 알기 때문에 인정한다. 하지만 이 외모로도 벌써 1년의 연극 생활을 마치고 2년 차에 들어간다. 뽀통령만큼은 아니지만, 유아들 사이에선 카리스마 짱이다, 이거 왜 이래!.

나도 처음에는 연극은 선택받은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연기가 하고 싶어 알아봤더니 전혀 그렇지 않다. 

내가 연극을 하는 곳은 저 멀리 지방 울산에서도 한 20분쯤 차로 달려야 나타나는 언양 읍내에 있는 복지센터. '연극을 배우고 싶다'고 했더니 아주머니나 할머니들만 있는 연극단에 드디어 남자가, 그것도 젊은 남자가 나타났다며 오디션도 없이 합격시켜줬다. 

젊은 여성들은 전혀 관람하지 않지만(아, 아니지. 아이들을 인솔하고 오시는 어린이집 선생님들도 관객석에 몇몇 앉아 있다) 무대에 올라 아이들에게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기 위해서 열연을 펼친다.

지난해에는 무려 '금도끼 은도끼'에 출연해 권선징악의 무서움을 알려줬다. 100명이 넘는 어린이집 아이들과 함께 '정직송'에 몸을 맡기며 거짓말 무서움을 몸으로 깨우쳤다. 

아이들은 '거짓말을 하면 최서방처럼 가지고 있던 쇠도끼까지 잃어버린다'라는 교훈을 얻었지만, 정작 이런 교훈을 얻어야 할 사람들은 우리 어른들이 아닐까라며 몸서리쳤다. 

건강한 취미를 공유하는 사람들 

나처럼 할 일 없는 백수만이 아니라 보다 다양한 분들이 우리 연극단에서 활동하고 있다. 

먼저 다둥이 엄마 구모씨. 중학교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과 4살짜리 막둥이 아들까지 둔 그녀는 남편과 아이들만 바라보고 살아왔단다. 

남편에게 사랑받고 싶어 10년을 넘게 열심히 뒷바라지만 했다. 또 아이들에게 '최고의 엄마'가 되기 위해 밤낮을 노력했단다. 하지만 정작 '사랑한다', '고맙다'라는 한 마디를 듣지 못한 채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40대가 돼있더란다. 

친구 소개로 시작한 연극을 통해 이젠 밥하는 아내, 뒤치다꺼리하는 엄마가 아닌 자신의 당당한 이름 석 자로 남들 앞에 설 수 있게 됐다. 

나는 그녀가 이런 말을 하는데, 바보같이 눈물이 났다. 엄마도 돼 보지도 않았으면서 격하게 공감이 됐다. 전생에 엄마였나? 나는 최선을 노력을 기울이고 무대에 섰나? 

지난해에 할머니 두 분이 나와 같이 연극을 시작했다. 트위스트킹에 맞춰 춤을 추는데 할머님들은 엇박자에 맞추고, 다리가 꼬이고, 스피드도 남들보다 반 박자, 아니 아예 한 박자가 늦었다. 초보인 나는 그 할머니들을 보면서 안심했다. 내가 그래도 저분들보다는 낫지. 

하지만 할머니들은 나완 태도가 달랐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복지관에 오실 때 버스에서 대본을 연습하며, 집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춤 연습을 했단다. 심지어 한 할머니는 잠결에 트위스트를 춰서 옆에 곤히 잠드신 할아버지를 발로 찼단다. 

연말에 무대에 오른 두 할머님은 빛이 난 반면, 나는 연습 부족으로 '연극의 꽃' 악역 최서방역에서 아이들을 유인하는 원숭이캐릭터 역으로 전락했다. 맡은 연기도 제대로 못 하는 나를 질책하는 관객들 시선은 나에게 비수가 돼 박혔다. 

나는 웃고 있는 원숭이탈 안에서 울었다. 과연 1년 동안 최선의 노력을 다했나? 정말 후회 없이 연습을 하고 무대에 올랐나? 내게 돌아온 대답은 아니었고, 무대 밖에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무대에 오른 두 할머니들은 무대 위에서 조명보다 밝게 빛나고 있었다. 

인생은 연극이다 

우리 모두 살아가면서 연극을 한다. 학교에서는 좋은 학생, 사춘기 때는 인기 많은 불량학생을 연기하기도 한다. 집에서는 쌍욕은 들어본 적도 없는 착한 아들·딸, 회사에서는 성실하고 자신감 넘치는 우량사원을 연기한다. 

연기라는 게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사회는 이미 만들어져 있는 무대이고, 그 무대에 걸맞은 사람이 필요할 뿐이니까. 무대에 오르면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 인생을 연기한다. 하지만 연기를 하면서 침잠하는 대상은 결국 자기 자신이다. 

우리는 과연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인생 무대에 서 있는가. 그리고 최선의 모습으로 무대에 오르는가. 





한성규 청년기자

*해당 칼럼은 사단법인 '청년과미래' 활동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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