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칼럼] 야식배부 사업은 다 아는데, 성폭행 대처법은 왜?

2019-04-11 13:26:39

- 교내 성폭력 대응 기구 현 주소 파헤치기

[프라임경제] # 박진송 양(22세·가명)은 지난 3월 남자 동기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사건 이후 박양을 괴롭히는 건 신체적·정신적 트라우마 뿐만이 아니다. 해당 사건 대응 방법을 알지 못한다는 무력감도 그녀를 힘들게 한다.

성범죄 가해자를 처벌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경찰 신고나 소송 등 '법적 처벌', 공론화와 같은 '사회적 처벌', 박양 사례처럼 가해자가 학생일 경우 '교내 규정에 따른 처벌' 등을 고려할 수 있다. 하지만 박양은 어느 선택안도 쉽게 고를 수 없다고 말한다.

"어떤 대응을 해도 상처받을 게 두려워요. 법적 처리엔 장기간이 걸릴 텐데, 그 동안 끔찍했던 그 때 일을 반복적으로 진술하며 곱씹고 싶지 않아요. 공론화시키더라도 문제가 해결될까요? 성범죄 피해자임을 공개하는 순간 저는 '박진송'이 아닌 '그때 피해자'로 낙인될 거예요. 원치 않는 저에 대한 평가도 비일비재해지겠죠. 평범한 일상을 무너뜨릴 용기가 아직 부족한 것 같아요. 또 학교 도움은 어디서, 그리고 어떻게 받을 수 있는지 몰라서 못 받고 있어요."

박양은 '학교에 성 문제를 담당하는 단체가 없느냐'는 질문에 "총여학생회가 있었다면 거기서 상담했을 거예요. 총여학생회가 폐지된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라고 답했다. 

그는 덧붙여 "문제 해결을 위한 상담을 받고 싶은데, 현재로서는 알 길이 없어 혼자 고민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박양 말처럼 2019년 현재 대학가에서 총여학생회 폐지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서울권 대학 중 총여학생회가 남아있는 곳은 서강대·경희대(서울캠퍼스)·서울시립대뿐이지만, 세 학교 모두 장기간 공석 상태로 제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 내 성폭력 사건은 어떻게 처리되고 있을까.

◆학교 도움이 왜 필요한가

성폭력 피해자가 사건에 안전하게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하지 않다. 사회가 교과서적으로 제시하는 '가해자를 엄벌해라'는 주장 속에는 피해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피해자 회복 방안 및 가해자와의 관계 재정립 등 실질적 대안을 마련할 주체가 필요하다. 학생 신분이라면 학교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다.

"그 아이가 죗값을 치르는 것만큼 중요한 건 제가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그래서 남은 학기 동안 학교에서 그 친구와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요. 학교 도움이 필요하겠죠."

박양 사례를 비롯한 교내 성폭력 문제에 학교가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가해자와 피해자는 같은 수업을 듣고, 팀플레이도 함께 할 수 있다. 피해자 악몽은 끊임없이 되풀이될 것이다.

물론 대학이 성문제 해결 방안을 마련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서울대학교 인권센터 DB에 따르면, 전국 34개 대학에서 교내 성평등센터를 마련해 성적자기결정권 침해 예방 교육과 사후 상담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성폭력 사태 발생시 정작 교내 성평등센터를 찾는 학생은 그리 많지 않다. 

서울시가 제공한 '대학생 성평등 의식 및 성평등 교육 실태 조사 보고서(2019)'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를 당했을 때 대학 내 성폭력 상담소(성평등센터) 이용 경험이 있는 학생 비율은 1.3%에 불과했다. 

성폭력상담소를 이용하지 않는 이유는 '사건처리 전문성 결여'가 25.6%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를 뒷받침하듯, 성폭력상담소 이용 경험이 있는 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사건이 잘 처리됐다'고 응답한 학생은 한 명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겨레 21은 이와 관련해 지난해 5월 고려대 성평등센터가 지도교수에게 성폭력을 당한 대학원생에게 '수사권이 없다' '물증이 없다'며 지도교수 변경 및 휴학 신청 등 피해자 보호 조처를 거절한 사례를 보도한 바 있다.

"성추행을 당하고, 성균관대 양성평등센터를 방문했을 때 첫마디가 '왜 술 마셨어요?'라는 말이었다"고 인터뷰한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위원장 구 모양 사례도 성폭력 처리기구가 피해자 보호에 실패한 또 다른 건이다.

◆교내 성 문제 다루는 독립적 '성평등 위원회' 갖춰야

학교 자체 성평등센터가 이처럼 제 구실을 하지 못한다면, 학생들이 직접 성 문제를 해결하고 심판할 수 있는 독립 단체를 만드는 수밖에 없다.

이전에는 총여학생회(이하 '총여')가 그 역할을 담당했지만, 총여학생회가 없어진다면 역할을 대신할 자치기구가 필요하다. 이처럼 총여학생회 부재로 여러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서울권 대학을 중심으로 총여학생회 사업을 총학생회(이하 총학)가 인계하는 추세다.

지난해 총여를 폐지한 동국대는 총학 인권소통국에서 학내 인권센터 지원을 받아 기존 총여 사업을 유지하고 있다. 

김종헌 동국대 총학생회장은 "총여 사업 감사 자료를 참고해 기존 진행했던 사업 일부를 선별해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장 최근에 총여 폐지를 결정한 연세대 비상대책위원회 측은 권한대행 체제가 해결되자마자 성폭력담당위원장 임명 등 구체적인 활동을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권순주 연세대 총학생회장 권한대행은 "차기 총학생회장 당선 후 기구 개편을 논의하고, 성폭력 사건 발생시 학내 인권센터와 연계해 사건을 처리하겠다"고 발언했다. 

총여 권한대행 인준이 부결된 상태인 경희대학교 서울캠퍼스 역시 총학에서 총여 일부 사업을 흡수해 시행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처럼 총여학생회 사업을 총학에서 지속하고자 하는 시도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다만 성 문제 전담 기구는 다른 조직에 흡수되기보단 '독립적'으로 존재해야 한다. 그 이유로 두 가지를 제시할 수 있다.

우선 총여가 담당했던 성폭력 해결 사업을 총학이 흡수하는 정도로 그친다면, 남학생의 성적결정권 침해 문제 발생시 그들을 도와줄 합리적인 명분이 없다. 총여는 말 그대로 '여성' 권익 신장을 목표로 사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남학생은 고려대상 밖이다. 

때문에 교내 성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성별에 관계없이 똑같은 도움을 제공할 수 있는 전문 기구가 필요하다. 성평등위는 기존 총여가 다루지 않았던 남성 문제도 다룰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된다는 점에서 총여나 '총여 사업을 흡수한 총학'과 구별될 수 있다.

두 번째로 총학은 이미 너무 비대한 조직이다. 성폭력 피해자는 총학에게 도움을 받고 싶어도 접근부터 어려움을 겪기 쉽다. 수많은 총학 부서 중 어디서 해당 사업을 진행하는지, 어떤 채널로 문의하면 되는지 충분한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박 양은 이에 대해 "교내 성폭력문제 담당 기구에 대한 홍보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총학이 성문제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돕고 있는지조차 잘 모른다"고 말했다. 

아울러 총학과 같은 큰 규모 단체에서 신고자 비밀이 철저히 보장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성폭력 피해자가 더 이상 숨어버리지 않도록

앞서 언급된 보고서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다'고 밝힌 참여자 305명 가운데 '성폭력 피해시 당황해 가만히 있었고, 이후에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에 응답한 비율은 무려 48.9%에 달한다. 

또 전체 설문자(1006명) 중 성폭력 예방 방법으로 '학교의 적극적 개입이 필요하다'를 꼽은 사람은 31.8%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학생들 등록금으로 운영되는 대학과 학생회비로 예산을 마련하는 총학생회는 교내 성폭력을 해결할 책임이 있다. 이들 존재이유가 학생이라면, 성폭력 피해 학생을 돕는 일은 선택이 아닌 필수여야 마땅하다. 

학교가 '잘' 할 수 없다면, 교내 최고 학생자치기구인 총학이 해야 한다. 총학이 못하면 단과대 학생회가, 단과대 학생회조차 하지 못한다면 학과 학생회가 해야 한다. 

즉,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성폭력 사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몰라 가만히 있었다'라는 피해 학생이 더 이상 생겨나선 안 된다.

대학은 교내 성폭력 피해자에게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도록 관련 회칙을 제정하거나 성평등 위원회 등 전담 기구를 신설하는 등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 또 이를 적극 홍보하는 것도 중요 과제다.

박양은 "시험기간 야식 배부 사업을 모르는 학생이 없는 것처럼 성폭력 문제 조치 방안을 모르는 학생이 없는 대학 문화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저도 방법을 알았다면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괜찮아지기만을 바라고 있지만은 않았을 것 같아요"라며 씁쓸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조원정 청년기자

*해당 칼럼은 사단법인 '청년과미래' 활동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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