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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무책임한 금감원, 보험 약관 '사후약방문' 타령

 

하영인 기자 | hyi@newsprime.co.kr | 2019.04.11 17:15:42

[프라임경제] 최근 '치매 걸린 치매보험'이라는 우스갯 소리가 나올 만큼 일부 보험사 약관의 꼼수가 도마 위에 올랐다.

경증치매 진단 시 CT, MRI 등 뇌영상검사 결과를 필수로 한 것. 일반적으로 경증치매 진단은 인지기능과 사회기능 정도를 측정하는 CDR척도(Clinical Dementia Rating scale) 등 다른 방법으로 이뤄진다.

의료업계는 경증치매의 경우, 뇌영상검사에서 이상소견이 나올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입을 모았다. 또 다른 보험사는 치매 분류 코드에 해당되는지 여부를 요구거나 30일 이상 약을 먹어야 인정해 주는 등 각기 다양한 조건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금융감독원 보험감리국은 치매보험 약관상 문제 여부를 살피고 올 상반기 중 결론을 낼 것으로 보인다.

애석하게도 보험사의 약관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자칫 사소해 보이는 이 문제는 자살보험금, 암보험을 비롯해 당장 12일 첫 재판을 앞둔 즉시연금 등 심각한 분쟁으로 이어진다. 논란의 종결까지는 까마득한 시일이 걸릴 뿐 아니라 약관 해석에 따라 수천억원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다.

이는 힘없는 소비자와 보험사 간 다툼일까, 힘 센 금융당국과 보험사 간 겨루기일까. 불완전판매로 소비자가 실제 손해를 입기도 하거니와 약관의 허점으로 보험사가 애꿎은 보험금을 지급하기도 한다. 누구나 때로는 피해자가, 때로는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왜 이 같은 문제가 생길까. 결국 모든 것은 앞서 말했듯 약관으로 귀결된다. 비약하자면 수만가지 케이스가 발생할 수 있고 이를 충분히 고려한 합리적이고 명확한 약관이 우선돼야 하며 불완전 판매가 근절돼야 할 것이다. 여기에 소비자의 약관에 대한 관심도 더해져야 한다.

금융감독원이 통제하던 약관은 지난 2016년부터 '보험산업 경쟁력 강화 정책'에 따라 보험 표준약관이 폐지되고 심사 또한 사후신고로 바뀌었다.

보험사가 자율화된 상품을 판매하면 금감원은 이와 관련 소비자 피해 없는지 감독하겠다는 취지다. 약관의 문제에 대해 보험사의 책임을 더 엄중히 물겠다는 것으로도 풀이된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일견 무책임해 보인다. 자살보험금, 즉시연금 또한 금감원의 표준약관을 준용해 만들거나 심사를 거쳤건만 질책과 제재, 책임은 보험사에만 지워졌을 뿐이다. 더 많은 상품을 자유롭게 판매하고 더 많은 문제를 야기하라는 것일까. 아무런 책임도 없는 자에게 채찍을 휘두를 권한까지 내어줄 수는 없다.

현재 보험약관 제정권한을 금감원에서 보험협회로 옮기는 보험업법 개정안을 두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금감원은 수많은 상품 약관을 일일이 심사할 여력이 없다는 입장이다. 그렇다 한들, 보험 약관을 보험사 자율성에 맡기겠다는 것이 진정 소비자들을 위한 것인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더군다나 약관 심사를 사전에 하든, 사후에 하든지 분쟁은 발생하고 있다. 향후에 또다시 발생할 것이 자명하다면 방지에 초점을 둔 대비책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체 가구당 보험가입률은 98.4%에 달했다. 즉, 한 가구당 최소 1명 이상은 보험에 가입했다는 소리다. 우리는 개개인이 감당하기 힘든 위험이 존재하고 보험과 밀접한 삶을 살고 있다.

모든 약은 안전성이 입증돼야만 판매 가능하다. 시판 후에도 지속적으로 부작용 등 이상 여부를 모니터링한다.

약의 특수성과 보험의 성질은 엄연히 다른 것이나 금융당국이 취해야 할 조치는 적어도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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