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칼럼] 세월호 사고 그날, 바다는 비어있었다

2019-04-16 13:41:20

- 경비세력 중국어선 특별합동단속에 총동원

[프라임경제]'100톤은 연안 경비정 아닙니까. 구조정이 아닙니다. 13명 가지고 뭘 어떻게 합니까. 경찰관 10명, 의경 3명이었습니다.' 

김경일 123정장은 지난 2014년 7월28일, 광주지방검찰청 조사에서 해경 지휘부에 억울함을 토로했다.

2014년 4월16일 오전 8시55분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VTS)에 "배가 넘어간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독거도 남동쪽 2.4㎞ 지점에서 경비 중이던 123정은 긴급 출동 지시를 받고, 맹골수도로 향했다.

사고해역과 거리는 22㎞이었다. 원래 그 수역을 경비해야 하는 함정은 전날 중국어선 특별합동단속 계획에 따라 먼 바다로 빠져 있었다. 즉, 100톤짜리 소형함정 하나가 연안과 내해 전부를 경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혼자 도착한 123정은 현장지휘함(OSC·On-Scene Commander)으로 지정됐으며, 정장이 모든 책임을 뒤집어썼다.

사실 세월호 사고가 터지기 불과 이틀 전, 서해지방해양경찰청으로부터 중국어선 특별합동단속 계획이 하달된다. 출동함정을 무리하게 총가용하며 1차적으로 경비 공백이 발생했으며, 소속 경찰서장들 모두 현장 지휘에 동원하면서 2차적으로 지휘 공백까지 발생했다.

모 해경 관계자는 "중국어선은 이미 알고 다 도망갔는데, 욕심 때문에 무리해 밤을 지새우다 사고가 발생했다"며 "경비세력을 원래 구역으로 돌려보냈어야 한다"고 강하게 지적했다. 

전날 보령해양경찰서는 이런 내해 공백 상태를 우려해 출동 함정 3척(P-89·P-90·방제3호)에 별도 지시를 내렸다. 반면, 목포 해경전용부두에는 당직함이던 513함을 비롯해 함정 9척이 있었으나, 단 한 척도 경비 업무에 동원되지 않았다. 실제 바다에 떠있던 건 원 출동함정인 123정뿐.

▲세월호 사고 당일 서해지방해양경찰청 경비 배치도. ⓒ 목포해양경찰서 정보공개청구


공백 상태였던 건 함정뿐만이 아니었다. 구조본부 핵심 지휘라인도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당시 검찰은 '해경 지휘부 책임 소재를 명확하게 밝히지 못했다'라며 이들을 기소 대상에서 제외했다. 아래는 당시 문자 대화방 내용이다.

본청상황실님의 대화(오전 9:34): 서해청장 현장 지휘 바람
본청상황실님의 대화(오전 9:37): 목포서장도 현장 복귀 지휘할 것

당초 김문홍 목포해양경찰서 서장은 오전 9시에 이미 3009함에 착함했고. 3분경 보고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기자가 서해청과 목포서에 정보공개 청구한 전보자료에 따르면, 김문홍 서장은 최초 보고가 이뤄진 시점 헬기에 탑승하고 있었다. 

당일 김문홍 서장은 목포 광역구역 2개 편대를 맡아 현장점검 차 바다에 있었다. 오전 6시 1508함에 편승해 목포 광역 2구역으로 향했고, '1구역 지휘차' 9시쯤 헬기를 타고 3009함으로 이동했다.

그전에 세월호 사고를 인지하지 못했고, 일정을 바꿨다고 볼 만한 다른 근거가 없다. 전보에 기재된 시간보다 일찍 출발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김문홍 서장은 왜 시간을 앞당겨 진술했는가. 주파수공용무선통신(TRS) 녹취록을 살펴보면, 김문홍 서장은 사실상 세월호 좌현이 완전 침수 상태였던 오전 9시47분에 처음 등장한다. 김문홍 서장이 교신 이전에 했다고 주장한 초동조치는 단 하나다.

'9시14분께 3009함 조타실에서 구내전화로 목포 상황실에 연락했다. 123정이 도착하면 여객선에 직접 승선해 구명벌을 투하하고 선장을 지휘해 여객선 선내방송으로 퇴선 명령을 하도록 지시했다. 또한 목포 122구조대를 현장에 즉시 투입하고 123정장은 대공마이크를 이용해 즉시 퇴선 방송하도록 했다' - 2014년 5월30일 감사원 문답서.

하지만 김문홍 서장이 주장한 초동조치는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 김문홍 서장 진술은 항공구조사 증언과 배치된다. 

김문홍 서장을 태웠던 B-512호기는 17분, 3009함을 떠나 사고해역으로 출동했다. 9시14분에 심각성을 인지하고, 퇴선 지시를 했다면 이후 현장 출동한 헬기는 왜 해당 정보를 전달하지 않았는가. 

B-512호기에 탑승 중이던 권 경사 법정 증언에 따르면, 권씨는 선내 상황 정보를 듣지 못했다. 승객 수백명이 갇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진입을 시도했을 거란 얘기다.

비슷한 맥락에서 김문홍 서장이 123정장에게 '퇴선방송을 했다'는 거짓 기자회견을 지시한 사실 역시 앞서 청문회를 통해 드러난 바 있다. 

기자는 김문홍 서장을 태운 B-512호기가 17분경 3009함 착함 후에나 소식을 접했고, 김문홍 서장을 내려준 뒤 바로 사고해역으로 출발했다고 생각된다. 

그냥 지휘가 아닌 '복귀 지휘'에 주목해 보자. 함내 조타실은 청이나 서 상황실 같은 중추역할을 책임진다. 김문홍 서장은 최소 37분까지 조타실에 없었다. 초동조치가 거짓일 경우 2~30분 정도 김문홍 서장 행적에 공백이 생긴다.

아울러 이평현 서해지방해양경찰청 안전총괄부장 행적도 모호하다. 

중국어선 특별합동단속 현장점검 중이던 이평현 경무관은 전날부터 3009함에 탑승하고 있었다. 원래 김문홍 서장이 타고 온 B-512호기 연료 공급이 끝나면, 서해청으로 복귀하도록 예정됐으나, 사고가 발생하면서 헬기를 타지 못한 것이다. 

해상 현장 내에서 계급상 수장급인 이평현 경무관 이후 행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서해청 상황실 임장 명단에서도 제외됐다.

▲지난 2015년 5월20일 밤, 광화문 광장에서 유가족들이 세월호 1주기를 맞아 나비 모양 막대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 양인성 청년기자


'곧 침몰한다'는 보고를 단 20분 남겨둔 오전 9시28분,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이 상황실에 임장했다. 8분 뒤 여인태 경비과장은 세월호와의 전화 통화 후 '승객들이 미처 나오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곧바로 이춘재 경비안전국장에게 알렸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이춘재 국장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골든타임을 훌쩍 넘긴 10시47분이 돼서야 서해청 상황담당관에게 전화해 승객이 전부 밖으로 나왔는지 확인한다. 

김석균 청장이 10시50분경 현장지휘를 위해 영종기지에서 헬기를 타고 출발했지만, 세월호는 이미 물에 잠긴 뒤였다.

현장점검 헬기요청 공문을 살펴보면, 낯익은 이름이 등장한다. 바로 이춘재 경비안전국장이다. 당일 이춘재 국장은 중국어선 특별합동단속 현장점검을 위해 3009함을 방문하기로 했었다. 여인태 과장에게 제때 보고를 받은 게 맞는지 조사가 요구된다.

책임의 칼날은 뭉툭했고, 제대로 된 대상을 베지 못한 채 아래로 고꾸라졌다. 윗선의 무리한 운용에 '구조실패'라는 결과가 예정돼 있진 않았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해양안전심판원 자료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 이후 지난 5년간 해양사고 발생건수는 오히려 계속해 증가하고 있다. 2014년 당시 1330건의 발생건수는 2018년 2671건으로 무려 2배 이상 늘었다. 부담도, 그리고 책임도 늘었다. 

'제 2의 세월호 참사'를 방지할 수 있는가. 경비 공백은 변명할 여지없는 국가 잘못이다. 두 번 다시 반복돼선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선 이를 통제하는 제도적 확충과 책임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양인성 청년기자

*해당 칼럼은 사단법인 '청년과미래' 활동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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