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칼럼] 소유 욕망에 대해

2019-04-16 17:16:47

[프라임경제] 말을 탔다는 이유로 크샤트리아(Kshatrya; 무사·귀족) 계층 세 남성이 불가촉천민 '달리트(Dalit)' 남성을 구타해 숨지게 한 일이 인도에서 발생했다. 

말을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선물을 사줬던 아버지는 훗날 그 선물이 비극으로 이어질 줄 몰랐다. 이 안타까운 사연 이면엔 중요한 의미가 숨겨져 있다. 피해자가 구매한 것이자 자연 일부인 말을 크샤트리아 남성들은 왜 본인들 것인 양 행동했을까.

계층은 인류 역사에서 인간이 자연을 소유하면서 생겨났다. 최초 계층은 2만년 전 '농업 혁명'으로 생긴 지주와 소작농이다. 수렵과 채취를 통해 자연을 즉시 소비하던 인간은 농업 혁명을 계기로 곡식 저장이 가능해면서 자연을 소유하기 시작했다. 

자연을 많이 소유한다는 것은 '상위계층'임을 의미했다. 크샤트리아 남성들은 신분적 지위에서 비롯된 소유 욕망을 폭력 형태로 드러낸 것이다. 폭력은 인류사에서 대부분 소유 문제 때문에 나타난다. 특히 주식 생산 수단인 토지는 부족간 침략의 주요 원인이었다.  
  
현대인 비극 역시 자연 소유 욕망으로부터 비롯된다. 과거 비슷한 소동을 근대적으로 해결할 수 있던 것은 사유재산제 확립 덕분이다. 

이처럼 사유재산제는 애초부터 신성불가침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분쟁을 막기 위해 국민이 합의한 국가 권력 및 법률에 따라 취해진 '임시 조치'에 불과하다. 하지만 임시 조치가 공동체에 비극을 불러올 경우 언제든 수정 가능하다. 

공익을 위해선 토지소유는 국가가 적절히 규제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제도는 결국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한다. 사유재산제의 경우 그 범위는 사회적 맥락을 고려해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이를 두고, '사회주의 사상'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공허한 이념논쟁에 지나지 않다. 

상위 5%에 불과한 국민이 전체 토지 65%를 차지하고 있는 현재 상황은 인간 욕망 민낯이자 신분제의 또 다른 양상이다. 욕망이 만든 이 위계적 질서가 누군가에겐 죽음 위협이 될 수 있다. 

미국 신프로이트학파 정신분석학자이자 사회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삶 형태를 소유지향적 삶과 존재지향적 삶으로 구분한다. 

소유 지향적 삶 속 나와 상대는 경쟁관계다. 소유 욕망에 지배되는 인간관계는 갈등과 질투로 가득 찼을 수밖에 없다. 

반면, 존재 지향적 삶의 경우 대립적 관계가 아닌, 긴밀히 결합된 관계다. 존재 지향적 인간은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 자체로 만족을 느끼며, 인간을 비롯한 모든 자연물에 대해 사랑을 느낀다. 

자연과 인간 존재는 유기적으로 연결됐다는 삶 태도를 가질 때 비로소 이기심을 잠재우는 이타심이 발휘될 수 있다.


금재준 청년기자

*해당 칼럼은 사단법인 '청년과미래활동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카카오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트위터


Copyright 프라임경제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이전 1 / 0 다음
Copyright ⓒ 프라임경제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