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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학벌' 채용 매달리는 나라, OECD 자격 있나?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9.04.29 09:26:21

[프라임경제] 업무를 해 보면, 혹은 다른 이가 하는 일을 유심히 지켜보면 흔히 하는 말로 "일머리가 있다"거나 "일머리를 못 잡는다"는 경우가 있다. 이 일머리라는 속어를 학술적으로 표현하자면 바로 역량, 직무능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역량이 우수한, 이른바 고역량자를 가려내 선발하고 역량을 키우는 게 기업마다 명운을 건 일이라 HR 부서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고역량자' 고용률이 세계 최하위 수준을 기록하는 이상 상황이 감지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대체로 합리적인 고용을 하는 상황과 거꾸로 진행한다는 경고음으로 풀이된다.

28일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수행 결과물로 나온 '사회정책전략 수립을 위한 의제발굴 연구' 보고서가 그 불길한 신호탄이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개인 역량별 고용률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OECD가 2013년 21개 회원국 16~65세 성인을 대상으로 한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를 분석한 결과다.

해당 조사는 사회 참여 및 개인의 목표 달성, 개인의 지식과 잠재력 개발을 위해 문서화된 글을 이해·평가·활용·소통하는 능력 등 핵심정보처리능력에 해당하는 능력 점수를 주목했다.

점수별 고용률을 보면 우리나라의 고역량자(4~5수준)는 63.2%로 조사에 참여한 21개 회원국 중 가장 낮았다. 평균인 78.6%보다 15.4포인트 낮을 뿐만 아니라 20위인 슬로바키아(69.8%)보다도 6.6%포인트 뒤떨어진다. 역량이 뛰어난 사람 10명 중 9명(89.7%)이 자리를 얻었다고 집계된 노르웨이와 비교해 보면 무언가 단단히 잘못됐음을 알 수 있다. 

반대로, 저역량자(1수준 이하~1수준)의 고용률은 67.0%로 되레 고역량자보다 높았다. 일본(67.4%)에 이어 21개 회원국 중 2위에 해당할 정도로 높은 수준이며 미국(64.4%), 캐나다(63.2%)는 물론 독일(62.7%), 오스트리아(61.7%) 등 나라보다 높은 고용률을 보였다.

우리나라 기업들에게 개인의 업무역량은 중요한 고용 조건이 아니라고 이 결과를 해석한다면 지나친 해몽일까?

사실, 오랫동안 한국에서 고용률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변수는 학력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이하 학력자 고용률이 70%가 못 되는 반면 대학교 졸업 이상 학력자의 고용률은 80%에 육박했다. 고역량자보다 고학력자의 고용률이 더 높은 불합리한 상황이다. 더 적나라하게 이야기하면 학력도 아니고 학벌에 의존해 사람을 뽑는 데 안주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연구진도 이번 보고서를 내놓으면서 "한국은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개인의 역량이 향상돼도 고용 가능성이 증가하지 않는 국가"라고 지적했다. 또 "이는 실질적인 역량 향상이 아니라 학벌 경쟁을 부추기는 왜곡된 노동시장의 또 다른 단면"이라고 분석했다.

우리나라 전체 생산가능인구의 PIAAC 점수는 272.6점으로 OECD 회원국 22개국(호주 추가) 평균 272.6점과 같다. 그러나 취업자들로 좁혀 보면 점수는 271.9점으로 0.7점 떨어진다. OECD 평균적으론 취업자 역량 점수가 277.2점으로 4.4점 높아지는 것과는 반대 현상이 일어난다. 이른바 인력의 낭비와 비정상적인 고용 우려가 높아지는 대목이다.

고역량자를 가려내고, 역량이 비슷한 인물을 일단 뽑았다면 더 괄목상대하게 만들어낼 방법을 골몰해야 하는데, 그런 고민이 부족했다는 점이 이번에 변명의 여지 없이 드러났다. 사실, 어떤 때엔 둘 중 누구를 낙점해야 할지 아리송한 경우도 있고 그럴 때 기왕이면 학벌을 선택 도구로 삼는 게 답일 수도 있다. 실제로 그런 기대감이 '역시나'로 나타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잣대를 쓰는 것과, 그 지표 하나에만 매달려 사람을 뽑는 건 구분되어야 한다. 

연구진의 "높은 대학 진학률과 사교육 열기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데 노동시장에선 열심히 노력해 축적한 인적자본이 제대로 활용되지 않고 심각한 낭비가 발생한다"는 조언을 더 이상 흘려듣지 말아야 한다.

일명 선진국 클럽이라는 OECD에 가입하자고 들썩인 것이 벌써 YS 시절이다. 지금 이 인력관리 방식의 문제점을 본다면, 세계화를 외치던 그때보다 나아진 게 과연 있을까? OECD 국가들은 다 뛰는데 우리만 뒤로 가고 있다. 조선시대 기준으로 채용을 하려면 차라리 경제 부흥의 꿈을 일찌감치 공개 포기하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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