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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활성화 해결책" 액면가액 조정 '화폐개혁: 리디노미네이션'

이슈 부각 상황 2004~2015년과 유사…"유럽 사례 신중히 살펴봐야"

김동운 기자 | kdw@newsprime.co.kr | 2019.05.17 20:27:11
[프라임경제] 한국은행이 지난 13일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 통화액면단위변경), 화폐개혁 논의가 필요하다고 다시 한 번 강조한데 이어, 국회에서도 정책토론회를 통해 리디노미네이션 공론화에 대한 공감대를 확인하고 있다.  

이미 시장에서 자체적인 리디노미네이션을 실시한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 김동운 기자



리디노미네이션은 이전 정부가 시행했던 신권유통, 5만원권 발행과 다른 '액면가액' 조정을 위한 화폐정책이다. 지난 2004년 박승 한국은행 전 총재가 이를 위한 적극적 움직임을 보인 바 있지만, 현실화에 미치지는 못했다. 

◆물가안정·경제성장률 상승 '두 마리 토끼' 

현재 논의되고 있는 한국형 리디노미네이션은 화폐 실질가치는 그대로 두고 액면단위를 변경하는 것. 이를 단순히 설명하면 1000원이란 화폐의 표기를 1원으로 변경한다는 뜻이다. 특히 이런 움직임은 현재 소상공인들이 자체적으로도 시행하고 있어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인근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4.0'이란 표기를 해놓은 것이 그 예다. 이런 표지판을 보고 국민들은 아메리카노의 가격이 '4원'이 아닌 '4000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리디노미네이션은 그다지 낯선 개념은 아니다.

다만 일반 상공업자들과 국민들이 자체적으로 진행한 것과 달리 정책적으로 실시하는 리디노미네이션은 단순 표기 변경을 넘어 대한민국의 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가져오게 한다.  

우선 리디노미네이션을 반대하는 입장은 현물가치가 상승하게 되는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화폐 변환으로 인한 국민들의 인식 혼란 등 두 가지 문제를 짚는다.  

만일 현재 방안에 따라 리디노미네이션이 진행될 경우, 1000원 미만 가치의 물품 가격은 상승하게 된다. 예를 들어 현재 아이스크림의 가격이 950원이라면, 원칙대로 리디노미네이션이 진행된다면 '0.95원'이 되겠지만, 현실에선 '1원'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지만 이런 부작용에도 리디노미네이션이 실행되면 긍정 효과는 더 크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1달러 당 환율이 네 자릿수인 유일한 국가다. 따라서 화폐단위를 줄이면 회계 업무 간소화 및 거래 편의성이 높아진다. 또 환율 변경을 통한 국제적 원화 위상의 상승효과가 기대된다. 

OECD 회원국 중 유일하게 1달러 당 환율이 네 자릿수인 한국. ⓒ 연합뉴스


이와 함께 화폐 변경을 통한 위조지폐 유통 차단과 음지에서 잠자고 있는 현금을 양지로 끌어내는 '지하자금 양성화'를 도모할 수도 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2015년 기준 한국의 지하경제가 국민총소득(GDP)의 8%, 약 120조원이 넘는다는 것을 감안할 때, 이를 양성화해 얻는 세수 또한 막대한 수준이다.   

해외에서는 대한민국과 동일한 방식의 리디노미네이션을 실행해 좋은 효과를 얻은 국가가 있다. 1994년과 2001년 두 차례 외환위기를 겪고 인플레이션으로 고생한 터키가 좋은 예다. 

터키는 리라화 가치가 폭락하자 2005년 1월1일 화폐단위를 기존 100만분의 1로 낮추는 리디노미네이션을 실시한 뒤, 2015년까지 점진적으로 신·구화폐 교환을 진행하며 물가안정과 경제성장률 상승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데 성공했다.

현재 우리나라처럼 특별한 경제위기나 변동이 없는 상황에서 리디노미네이션을 실시한 유럽연합도 훌륭한 실시 사례로 꼽힌다. 

2002년부터 유로화를 사용하기 시작한 유럽연합은 일정 비율에 따라 자국화폐를 유로화로 교환했다. 또 개별 국가별로 교환기간을 짧게는 10년, 길게는 기간을 두지 않는 강수를 두면서 사회적 혼란을 최대한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 결과, 유로화는 유럽 전반에 성공적으로 안착했고, 이를 넘어 세계적 기축통화로 인정받게 됐다. 

◆리디노미네이션 '장기 프로젝트' 10년 완료 강조 

리디노미네이션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두 차례 실시된 바 있다. 한국의 첫 리디노미네이션은 6·25 전쟁 중인 1953년 2월15일 대통령긴급명령 제13호를 통해 실시됐다. 신·구 화폐 환가비율을 100대 1로 결정해 당시 100원을 '1환'으로 변경했다.

국내 두 번째 리디노미네이션도 1962년 6월10일 이승만 정부가 지하자금 회수와 인플레이션 통제라는 명목으로 10대 1의 환가비율을 조정했다. 그러나 기대한 것과 달리 지하자금 회수에 실패하고, 오히려 물가상승률이 높아지는 부작용을 낳았다. 

이후 약 40년간 리디노미네이션은 조용히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다. 그러다 2004년 노무현정부에서 다시 논의가 재개됐다. 선진국 반열에 들어가고 있는 한국이지만, 여전히 화폐단위가 개발도상국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당시 한국은행 총재였던 박승 전 총재는 태스크포스(TF)팀을 만들어 리디노미네이션 손익을 계산한 바 있지만, 물가상승 우려와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후 정치권 논의에서도 리디노미네이션 교체비용이 2조5000억원에 달한다는 점과, 현재 경제상황에는 시기상조라는 주장으로 인해 리디노미네이션 대신 신권을 발행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최근 리디노미네이션에 대해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고 있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 한국은행


이로부터 약 10년 뒤인 2015년 9월 국정감사에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리디노미네이션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지만, 한국은행이 독단적으로 결정할 문제는 아니다"라고 답하며 다시 한 번 리디노미네이션 이슈가 수면 위로 떴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이 있다. 올해 리디노미네이션 이슈가 부각된 상황이 2004년, 2015년과 매우 유사하다는 점이다. 

이주열 총재가 국회 업무보고 자리에서 화폐개혁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 "필요할 때는 됐다고 본다"며 이슈를 불러왔다. 하지만 한국은행은 2015년과 마찬가지로 "가까운 시일 내에 리디노미네이션을 추진할 계획이 없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럼에도 리디노미네이션 논의는 이전처럼 수면 밑으로 가라앉지 않고 '뜨거운 감자'로 움직이는 중이다.  

지난 13일 국회에서 열린 '리디노미네이션을 논하다' 정책토론회에 참석한 국회의원들과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는 리디노미네이션의 필요성에 대해 한 목소리를 냈다.    

이번 정책토론회에선 여야 의원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이례적인 풍경을 보였다. 정치 사안별로 여아가 치열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와중임에도 정책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중도적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리디노미네이션 필요성에 대해서는 꾸준한 입장을 보여왔고, 여야 역시 이는 당파 갈등을 넘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중요한 사항이라는 점에 공감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한편, 토론회 발제자로 나선 임동춘 국회입법조사처 금융공정거래팀장은 "리디노미네이션은 공론화 및 제도 준비 기간이 최소 4∼5년, 법률 공포 후 최종 완료까지 포함해 약 10년이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로 진행해야 한다"며 심도있는 논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여야가 경제 활성화와 직결되는 '리디노미네이션 해법'을 어떻게 풀어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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