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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 의혹과 고등어 손에 쥔 '한국당의 수사반장' 유기준

내년 총선 '스윙보터 부산' 사령탑 물망 '경제전문성+인간미' 눈길

서경수·임혜현 기자 | sks@·tea@newsprime.co.kr | 2019.05.22 19:30:16

[프라임경제] "빠바바바밤~빠바바바밤~" 금관악기들이 펼치는 재즈 선율로 시작되던 MBC 드라마 '수사반장'. 1989년 막을 내릴 때까지 시청자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을 받은 큰 원동력 중 하나는 최불암씨가 맡았던 반장 캐릭터였다. 끈질긴 수사 의지와 함께 마약 등 그 시절 보기 드문 경제와 특수 범죄까지 종종 다루며 전문성을 부각했다. 특히 '사람'에 대한 애정이 바탕에 깔려 있는 수사 책임자의 모습은 '한국의 콜롬보'라 불릴 만했다.

유기준 자유한국당 의원. ⓒ 프라임경제

유기준 자유한국당 의원이 북한 석탄 의혹을 파헤치는 선봉장 역할을 맡으면서 종횡무진하는 모습에 이미 오래 전 종영한 이 수사반장을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미사일과 핵 도발로 국제사회로부터 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 벼랑 끝 전술로 악착같이 버티며 원하는 바를 얻어내는 것은 그간 북한 외교의 주특기였다. 그런 북한에게도 석탄 밀반입 이슈와 이를 둘러싼 숨바꼭질은 대단히 힘들다. 석탄 밀수출이나 환적 등을 이유로 혐의 선박을 압류하는 조치를 밀어붙이고 있는 것.  21일(현지시각)에는 유엔에 주재하는 북한 대사가 직접 나서서 미국에 의혹 화물선을 돌려달라고 요구했지만, 미국이 보기 좋게 거절한 바 있다.

한국 정치권으로서도 이 문제의 의미가 크다.  우리나라로 들어온 석탄이 북한산인 경우, 단순히 화물 성격을 혼동한 데서 그치지 않는다. 고의성 여부를 규명하여야 하는데, 이 경우 인보이스(송장) 관련 사항 등 무역 흐름과 은행의 신용장 문제 개입 등 국제 자금 이동 내역상의 문제점을 훤히 들여다 보면서 따져볼 필요가 있다. 한국이 대북 제재 그물망에 오히려 고의로 구멍을 내는 게 아니냐는 국제사회의 의혹을 풀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단순히 정치적 입장에 따라 북한에 온정적이냐 비판적이냐는 태도에 따라 잘잘못을 눈감을 것도 아니고, 의욕적으로 덤빈다 해서 쉽게 진실이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이는 '놓칠 수 없는 이슈'다. 아울러 '보람과 소명의식을 갖고 매달려볼 만한 조사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여러 영역 출신의 전문가가 많은 한국당 내에서도 이런 문제를 짊어질 인물이 많지 않다. 정치적 역량이나 경륜으로 볼 때 좀 쉴 때도 됐건만 이 같은 유 의원의 '수사반장' 자격이 더 빛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기준 자유한국당 의원은 민주화 운동으로 젊은 날 고초를 겪은 바 있다. ⓒ 프라임경제

유 의원은 한국과 미국(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갖고 있는 세칭 국제 변호사지만, 그야말로 해상법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인물이다. 해양대와 부산대에 출강하는 한편, 해상법 관련 저서들도 펴낸 바 있는 유 의원이 △석탄의 대가로 지급된 금전이 누구에게 갔는지, 북한에 흘러들어간 건 아닌지 여부 △은행이 신용장 개설 또는 송금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여부 등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의혹들이라고 짚고 있으니, 여당 측이나 청와대가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다른 센세이셔널한 정치적 이슈에 가려져 이 석탄 의혹에 대한 유 의원의 투쟁은 상대적으로 덜 조명됐음에도, 한국당 내부 입장에서 보면 충분한 열광의 소재가 된다.

그런데 그런 그의 전문성 즉 해상 전문 변호사로 자리매김하게 된 배경이 '민주화 운동'이었다는 점이 얄궂다. 서울대 재학 시절 학생 운동을 했다는 점은 두고두고 유 의원을 괴롭혔다. 공무원이던 부친은 결국 옷을 벗었다. 나중에 사시에서 높은 점수를 얻고도 면접 단계에서 탈락하기도 했고, 결국 다음해 합격증을 받았지만 법무관으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차단당했다. 군 문제가 시기적으로 꼬이면서, '고시 출신 사병'이라는 기록을 세운 것 외에도 사실상 검사나 판사로 발령받을 기회도 잃었다.

한때 송상현 교수를 도와 조교 생활을 한 인연으로 해상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이렇게 답답한 상황에 처한 그의 운명에 중요한 촉매가 됐다. '단순한 소송 담당 변호사가 아닌 전문 변호사가 되어 보자'는 결기를 품는 밑바탕이 됐던 것. 송 교수의 뒤를 잇는 걸출한 전문학자가 배출되거나, 영미권 변호사들이 주름잡는 해상 법무 시장에 한국인 개척자가 나올 만한 기회였던 셈이다. 다만 이 기회는 정치권의 러브콜을 유 의원이 수락하면서 아깝게도 불발된다.

그렇게 국회에 입성, 이제 4선째다. 그래서 그는 돈과 경제의 흐름, 글로벌 감각 같은 전문성도 두드러지지만, 많은 사람들이 흘려버리는 것·억울하게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이 있다.

최근 가덕도신공항 논의 재점화 국면에서 한국당 출신 부산권 의원들은 대부분 이 문제에 어떤 입장을 드러내는 데 소극적이다. 그럼에도 유 의원은 지역을 위한 백년지대계를 살피자고 주장하고 있다. 잘못 끼워진 단추가 있으면 다시 바로잡고, 당시에 일정한 상황논리상 어떤 결정을 지지했더라도 다른 좋은 선택지로 돌릴 기회가 새로 주어진다면 이를 택하는 것도 정치인의 몫이라는 쿨한 태도다.

정치인으로서의 의무감이라는 측면 외에도 지역경제와 국제 물동량 흐름도 함께 고려한 끝에 나온 견해라는 점에서도 각별한 의미가 있다. 당장은 김해신공항 추진을 모두 뒤엎는 과정에서 진통이 있겠지만 "한 번 만들어 놓으면 백년지대계로 잘 쓸 수 있는 공항을 만들어야 할 텐데"라고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짚는다. 특히나 통일 이후를 위해서도, 동남권에 단순히 거점공항이 아닌 관문공항을 만들어 놔야 일정한 역할 분담을 할 수 있다고 유 의원은 내다보고 있다. 통일이 되면 곧바로 막대한 투자와 교류가 이뤄지게 될 것이라고 유 의원은 내다본다. 이 과정에서 우리 인사들만 오가는 게 아니라 외국 경제인들의 투자 방문과 다양한 화물 물동량 수요도 일어나게 된다.

그런데 북한의 도로와 철도 등은 거의 새로 깔아야 하는 수준이다. 즉, '서울에서 기차로 평양을 거쳐 신의주까지 가는 건' 상징적 의미는 있을지 몰라도 물류 면에서는 의미가 크지 않다. 인천공항과 서울을 기점으로 북측으로 드나드는 사람과 화물 수요를 모두 처리하는 것이 어렵겠지만, 글로벌 항구를 갖춘 해양물류도시 부산에 관문공항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고 유 의원은 짚는다. 지난 결정의 잘잘못만 따져서는 나올 수 없는 치밀하면서도 거대한 맥락의 발본색원이다. 

그런 예리하고 담대한 구석만 있는 건 아니다. 유 의원은 자기 지역구 내의 부산공동어시장 개발 요구에 단편적으로 대응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고등어 물동량의 대부분을 처리하는 부산공동어시장이지만, 지역 발전에 저해요소가 된다는 일각의 지적이 나온다. 사실, 이 시설을 이전시켜 버리고 수변구역을 잘 개발하면(예컨대 대형 고급 아파트 단지 개발) 해운대 못지 않은 경제적 가치가 생길 것임은 명약관화하다.

하지만 그는 어시장을 같이 안고 가는 방향, 어시장이 오히려 이 원도심 지역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는 방안을 고심한다고 털어놨다. "매년 공동어시장에서 열리는 '초매식'이 한해를 여는 항구도시 부산의 상징이라는 의미가 크다. 거기서 일하는 주민들이 꽤 있다는 걸 생각해야 한다. 새로 일자리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있는 일자리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면서 정체성을 지키는 개발에 대한 고민과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신교통수단 도입 같은 지역 살리기를 야심차게 추진하는 게 바로 이런 '유기준식 원도심 살리기'의 결실이다. 유 의원과 보좌진들이 송도선과 C-베이 파크선 등 아이디어 보강책을 밀어붙여 국가교통위원회 심의 통과에 기여한 점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런 그를 둘러싸고 여러 설이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하나는 다음 번 지방선거를 대비해 미리 거물로서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려는 포석이라는 관점이다.

유 의원은 이런 호사가들의 시장 도전설에 관심이 없다. '다음의 정치적 꿈'을 묻는 질문에 유 의원은 "한동안 우리 (한국)당이 무척 힘들었다. 그런 2~3년간의 상황을 치른지 얼마 안 됐다. (이제 좀 상황이 나아졌다고) 내 꿈이 뭐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그게 옳은 것인가? 도리가 아니라고 본다"고 일축했다. 

그럼에도 다른 방향에서 그의 새 소임이 주어지지 않겠느냐는 소리까지 모두 막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총선이 내년으로 바짝 다가와서다. 즉, 두번째 논의는 총선 역할론이다. 조국 청와대 수석의 부산 등판설이 나도는 것은 부산이 전체 선거의 구도를 흔들 수 있다는 전망마저 나오기 때문이다.

단순히 자기 지역구를 수성하느냐는 문제가 아니라, 한국당 부산 사령탑의 역할 모델을 놓고 그가 어떤 일을 맡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도는 것이다. 이 사령탑감을 놓고 갑론을박이 갈수록 치열할 전망이다.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이 필요하다는 관점부터, 지역을 잘 알고 각 인물마다 호불호가 크게 갈리지 않는 관리형 지역 밀착 인물에 대한 욕구도 있다. 한편, 부산에 경남까지 포함시킨 PK의 총선 전반에 아군 후보들을 격려, 고무해 완주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맡을 맏형 같은 모델에 목마른 시각도 있다.

왼쪽부터 이언주 무소속 의원, 이주영 국회 부의장, 유기준 자유한국당 의원. ⓒ 프라임경제

우리 정치 역사를 보면, 꽃길만 걸어온 프리마돈나 대신에 베이지색 바바리코트 깃 속에 사람에 대한 애정을 감춘 묵직한 최불암식 수사반장 스타일이 주목을 받은 예는 드물었다. 유 의원이 석탄 의혹에 이어 여러 지역 안건을 챙기기 시작한 것은 그런 관례에 비해 이례적인 선택 필요성, 수사반장의 영전 필요성을 한국당 지도부가 느낀 때문이 아닌지 추정을 낳고 있다.

이렇게 모종의 요청이 유 의원 측에 전달된 한 게 아니냐는 추정의 이유는 또 있다. 유 의원은 부정하고 있지만, 황교안 대표가 정치에 입문하는 과정에서 그와 몇몇 인사가 상당한 조언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럼에도 이렇다 할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혜택이 없었고 오히려 원내대표 도전을 선언했다 중도에 접는 등 암중모색 중이라는 것. 보수혁신을 모색하는 단체인 '보수의새길ABC' 멤버로 이름을 올린 외에 조용한 상황인 이유가 바로 이런 역할론에 대한 준비 때문이 아니겠냐는 얘기다. 

참고로 수사반장 마지막회에서 최불암 반장은 승진 꽃다발을 받으며 끝났다. 한국당의 특급 반장으로 어렵고 힘든 사안 풀이에 매달려온 유 의원은 어떤 박수받는 자리에 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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