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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故 구본무 회장 별세 1년…LG전자에 '정도경영'은 없었다

"기술로 정당 경쟁한다면서"…LG전자, 베스트샵 직원 교육자료서 경쟁 제품 '비하' 지시

임재덕 기자 | ljd@newsprime.co.kr | 2019.05.31 08:34:18

#1. 가끔 보고 싶은 영화제목이 생각 안 나 답답하실 때 있으시죠? LG TV는 주연 배우 이름만 말하면 알아서 영화제목을 다 찾아서 보여줘요! 반면, X사(삼성전자) TV는 내가 찾는 것 대신 완전 엉뚱한 것만 보여주는데 답답해서 쓰시겠어요?

#2. 혹시 노래 부르는 거 좋아하세요? LG TV는 말 한마디로 부르고 싶은 노래방 영상을 바로 찾아줘 비싼 돈 주고 노래방 가실 필요 없어요. 반면, X사(삼성전자)는 제대로 안 되는 거 보이시죠?

[프라임경제] 이는 LG전자(066570)가 지난해 11월 자사 유통매장인 LG베스트샵 직원들에게 내린 '인공지능(AI) 씽큐(ThinQ) 실연 및 상담가이드(OLED vs QLED 비교존 조성점)' 중 일부다. LG전자는 이 자료에서 이 같은 멘트로 고객을 맞이할 것을 주문했다.

LG전자가 자사 유통매장인 LG베스트샵 직원들에게 보낸 교육자료. 경쟁사인 삼성전자의 QLED TV와 자사 OLED TV 인공지능 테스트 결과를 비교한 이미지와 함께 경쟁제품을 비꼬는 듯한 멘트, 심지어 자사 제품이 잘 인식하는 문장까지 상황별로 제시해주고 있다. ⓒ 프라임경제


LG전자는 또 TV 리모컨으로 AI 음성명령을 시연하면서 경쟁 제품의 단점을 부각하도록 했다. 이를 위해 'X사(삼성전자)는 안 되고 LG TV만 되는 음성명령어 예시' 100여종을 꼽아 함께 전달했다.

최근 업데이트(지난 3월)된 자료에서는 "삼성전자(005930)가 LG OLED는 낮에 잘 안 보이는 TV라고 터무니없는 비방을 한다"며 "이 내용을 정면 반박한 후 상담하라"고 지시했다. 

특히 "양사 리모컨의 음성인식을 번갈아 실행하며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재질문을 반복하는 X사(삼성전자) '빅스비(Bixby)'보다 LG '씽큐'가 더 낫다는 점을 강조하라"고 당부했다.

◆앞에선 '정당한 경쟁' 뒤에선 '경쟁사 비하'

기자가 29일 찾은 다수의 LG베스트샵에서는 이 자료를 활용해 고객들을 유인하고 있었다. 일부 매장에서는 자료를 직접 보여주며 경쟁사 제품의 단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LG전자 관계자는 "해당 가이드는 LG베스트샵 직원들의 이해를 위해 내부적으로 참고하려던 것이지, 고객들에게 보여주는 취지의 자료는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자사 제품의 장점을 명확히 전달하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경쟁사를 비방하기 위한 용도는 아니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와 유사한 사례는 매장에 진열된 공식 홍보물에서도 발견됐다.

가전제품존 한편에는 '삶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진정한 가전의 리더'라는 제목의 출력물이 비치돼 있었다. 

이 홍보물에는 경쟁사인 삼성전자가 △LG 디오스 매직스페이스 △LG 트롬 스타일러 △LG 트롬 트윈워시 △LG 트롬 건조기 △LG 코드제로 A9 등을 베껴 출시했지만, 원조 리더인 자신들의 기술력은 모방할 수 없었다는 내용이 담겼다.

LG베스트샵에 진열된 홍보물. 자사 제품의 기술 우위를 설명하기 보다 경쟁 제품의 문제점을 들춰내는 '비방마케팅'을 전개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에서는 정도경영을 실천하는 기업이라고 강조했다. ⓒ 프라임경제

특히 LG 퓨리케어 정수기 존에서는 지난해 말 불거진 '코웨이(021240) 얼음정수기 발암물질 논란' 기사를 출력해 두고 "코웨이 제품은 발암물질이 나올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제품은 1년마다 직수관을 무상교체해 줘 안심해도 된다"며 고객들을 유인하고 있었다.

기술력을 앞세워 고객의 환심을 산다기보다 경쟁 제품에 하자가 있으니 우리 제품을 사는 게 낫다는 설명으로 들렸다. 이에 대해 LG베스트샵 현장 관계자는 "경쟁사들도 똑같이 한다"면서 "또 해당 홍보물은 사실에 기반한 자료기 때문에 문제 될 건 없다"고 했다.

그런데, 각 상담테이블에는 다소 '아이러니'하다고 느낄 만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LG전자 베스트샵은 정도경영(正道經營)을 실천하는 기업'이라는 것. 

물론 이 공지에서 규정한 내용 중 '경쟁사를 비방하지 않겠다'는 내용은 없었지만 '정도경영 실천 기업'이라고 규정한 데서 의아함을 느꼈다. LG(003550)는 '정도경영 3원칙'을 정해 핵심 경영철학으로 삼고 있는데, 이 중 하나가 '기술력을 앞세운 정당한 경쟁'이기 때문이다.

故 구본무 '정도경영' 무색일부 홍보물, 법 위반 소지도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LG전자가 고(故) 구본무 회장이 각고의 노력으로 정착시킨 '정도경영'을 무색하게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욱이 "그동안 LG가 쌓아온 고객가치 창조, 인간존중, 정도경영이라는 자산을 계승·발전시키고, 변화가 필요한 부분은 개선하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성장 기반을 구축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구광모 LG 회장의 취임사 또한 공염불(空念佛·입으로만 외는 헛된 염불)이 됐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LG 고유의 경영철학 모식도. 이에 따르면 행동방식인 정도경영은 윤리경영을 기반으로 꾸준히 실력을 배양해 정정당당하게 승부하는 것이라고 적시돼 있다. ⓒ LG


일각에서는 일부 홍보물의 경우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김상조·이하 공정위)의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표시광고법)' 위반 소지도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표시광고법은 공정위가 지난 1999년 시장의 공정한 거래질서를 해칠 우려가 있는 표시광고로부터 소비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법이다. 이 법 제3조 1항을 보면, 사업자는 공정한 거래질서를 해칠 우려가 있는 △거짓·과장의 표시·광고 △기만적인 표시·광고 △부당하게 비교하는 표시·광고 △비방적인 표시·광고 등을 하면 안 된다고 적시돼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사업자가 광고물을 비치하면서 객관적 근거가 없거나 일방적 주장으로 상대방을 비방할 경우, 표시광고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법조계 한 관계자는 "해당 광고물 중 객관적 기사를 바탕으로 비방한 내용은 표시광고법 위반으로 보기 어렵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도 "경쟁사가 자사 제품을 따라 출시했다는 내용의 광고물 중 '디자인은 흉내 낼 수 있어도 원조 리더의 기술력은 모방할 수 없다'는 문구는 (객관적 근거자료가 없는) 사업자의 일방적인 주장으로 보여 따져 볼 여지가 있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LG전자 관계자는 해당 홍보물에 대해 "일부 매장에서 자체적으로 사용했던 것 같다"며 "앞으로는 불필요한 오해가 없도록 보완해 사용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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