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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칼럼] 백수일기 #7 나를 '백수'가 아닌 '포의건달'이라 불러라

 

한성규 청년기자 | press@newsprime.co.kr | 2019.08.06 11:51:58
[프라임경제] 백수가 된 나는 올해 울산 '태화루'라는 누각에서 '한량무'라는 춤을 배우고 있다. 

춤을 가르치는 선생님은 무용을 전공했고, 한국 전통남자춤을 이어가는 직업인이다. 같이 춤추는 학생들은 사업하는 어르신들이나 주부들도 있다. 이 수업에서 압도적으로 나이가 어린 나는 한량무 학생들 중 유일한 진짜 한량이다. 다른 이들은 다들 바쁜 시간을 쪼개 한량무를 추러 온다.

백수도 종류가 있다

요즘 직업 없이 노는 사람을 '백수'라고 통칭하지만, 사실 이 단어는 모든 노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다. 즉, 백수도 구분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백수는 맨손 혹은 빈손을 뜻하는 한자말이다. 조선시대 사용된 말로, 주로 재물이 없고 소득이 없는 사람을 일컫는다. 나처럼 적극적으로 노는 사람들은 건달이나 한량, 파락호라고 구분해 불렀다고 한다.

먼저, '건달'은 재물도 없으면서 일하지 않고 빈둥빈둥 노는 사람을 뜻한다. 한량은 재물은 있는데 생산적으로 살지 않고 허랑방탕하게 노는 사람을 일컬었단다. 마지막으로 파락호는 행세하는 집안 자손으로, 허랑방탕해 인생이 결단난 사람을 뜻한단다.

재산세가 한 푼도 나오지 않고 집도 없고 차도 없어 건강보험료도 만원 남짓 나오는 나는 도저히 재물이 있는 한량은 될 수 없겠다. 한량무 괜히 배우는 건가?

조선시대 '유명 백수' 연암 백지원

조선시대 선비 유한준 아들 유만주가 남긴 책 '흠영'에 따르면, 조선시대 최고 문장가 연암 박지원도 당시 사람들에게 '인생을 포기한 파락호'라고 불렸다. 그렇다면 나는 파락호인가? 

연암은 당시 명문거족 노론 직계 자손으로, '명문가 자손'이라는 기준에 맞고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우리 아버지는 우리 가문이 조선시대 영의정까지 지낸 '한명회 직계 후손 명문가'라고 하지만, 그렇게 치면 대한민국에 명문가 출신이 아닌 사람은 외국에서 귀화한 이들 밖에 없을 테니 나는 명문가 자손이 아닌 셈이다. 또 무관과 문관 과거를 두 번이나 통과해 관직에 나갔으니 파락호도 아니다. 

'관직에서 물러나 노는 사람들을 백수나 건달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자료도 찾았다. 

조선시대 관직에서 물러나 노는 사람들은 은사·처사·포의·산림지사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렀단다.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에 은둔하거나 산림 속에 칩거하는 사람을 '은사'나 '산림지사'라고 하고, 관직을 가지지 않는 경우에 배옷을 입으므로 '포사'라고 했단다.

은사·산림지사·처사는 현실정치에 대한 대결의식, 즉 현실정치에 대한 '항거' 의미로 관직을 버린 사람들이라는 뜻이 강하게 내포된 단어다. 하지만 난 한국이나 뉴질랜드 정부에 아무런 불만이 없었고, 좀 더 재밌게 살고 싶어 노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유희'라는 공부

그나마 나에게 맞는 명칭은 포의와 건달밖에 없으니 그냥 '포의건달'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글을 쓰고 싶은 내가 롤모델로 삼고 있는 연암 박지원은 '유희' 하나만을 평생 공부로 삼았다. 자기 앞에 놓인 놀거리가 맑은지, 혼탁한지, 고상한지 비속한지, 순수한지 잡된지 따지지 않고 유희와 관련된 것이라면 무슨 일이든 참여했다. 어린애들 술래잡기부터 기생방 술판, 글을 짓는 자리부터 길에서 펼쳐지는 잡극까지 유희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놀았다고 한다. 

유만주는 이 또한 연암이 '덧없는 삶이 한 차례 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이른 나이에 깨달고, 이렇게 살았다고 평하고 있다. 나도 요새 한량무 뿐만이 아니라 지역연극단에서 연극도 하고, 소설도 쓰고 오락도 한다. 

20~30대 사망원인 1위 '자살'

정규직과 함께 '남들보다 잘 먹고 잘 노는 것'에 목메는 세상이다. 너무 타인과 비교하며 살다 진짜 목 메달아 죽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하지만 20, 30대 사망원인 1위는 '자살'이다. 

내 친구들은 현모양처와 결혼해 행복하고, MBA 공부도 하고 있다. 또 외국 파견 나가 일도 하며 연봉도 1억원씩 받는 친구들도 많다. 

하지만 나는 친구들이 전혀 부럽지 않고, 비교할 생각도 없으며 친구들이 맛있는 것을 사주면 그냥 좋다고 얻어 먹는다.

사는 게 즐거워지는 데 거창한 조건은 필요치 않은 것 같다. 생각만 바꾸면 될 것을.  



한성규 청년기자

*해당 칼럼은 사단법인 '청년과미래' 활동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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