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린트
  • 메일
  • 스크랩
  • 글자크기
  • 크게
  • 작게

[인사이드컷] 조국수호 안중근? 그도 한때 기자였다!

 

황이화 기자 | hih@newsprime.co.kr | 2019.09.05 16:12:17

안중근 의사의 단지장과 안 의사가 순국 직전 두 아우에게 남긴 유언. ⓒ 안중근의사기념관


[프라임경제] 얼마 전 손가락을 끊어 구국을 맹세한 안중근 의사의 단지장이 새삼 화제가 됐습니다. 한 네티즌이 온라인 게시판에 올린 '한국언론사망 성명서'에서 그의 손바닥이 활용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단지장 그림을 넣은 성명서를 놓고 최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관련된 언론 보도들을 비판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인데요.

성명서는 '사법개혁, 검찰개혁을 갈망하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온라인 시민운동'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말미에는 '조국수호, 적폐청산 이 시대 우리의 사명입니다'라는 말로 매듭짓고 있습니다.

여기서 '조국'은 일반명사가 아니라, 고유명사 즉 법무부 장관 후보자이자 사법개혁 의지를 강하게 드러낸 조국 서울대 교수로 해석되곤 합니다. 

사법개혁, 좁혀 말하자면 검찰개혁을 완수하는 길로 지지층에서는 그의 법무부 장관 입성을 바라고, 반대편에서는 온갖 의혹의 중심 인물이거나 관련자이기 때문에 공직에 나서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합니다.

실제로 의혹 보도에 열 올리는 언론에 대해 조 후보자 지지층에서는 불만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로 '한국언론사망'이 1위에 오르는 상황이 조 후보자에 대한 언론의 공격 및 검증에 대한 반격으로 받아들여지는 양상입니다. 

아울러 이 성명서가 게재됐던 커뮤니티에는 조 후보자 측에서 연 기자간담회에 참석, 질문을 했던 기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캡처해 이름과 매체를 정리한 '기자간담회 질문 기자 총 56인' 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이 글에 붙은 댓글엔 '기레기'라는 말도 자주 보입니다. 댓글을 종합해 보면, 질문 수준과 (휴대폰을 보고) 질문을 던지는 모습이 주로 공격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조 후보자를 핍박하는 몹쓸 인간들로 기자라는 직업군이 지목되고, 또 회견 중 질문하는 과정에서의 여러 문제점들을 거론하며 기레기 등 비하 발언까지 하는 상황인데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일반명사' 조국을 수호한 안중근 의사도 한 신문과 깊숙이 관계된 언론인이었습니다. 

오는 9월10일은 '대동공보'가 일본의 농간으로 문을 닫은 날인데요. 이 신문은 1908년 6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교포단체인 한국국민회 기관지로 창간됐습니다.

당연히 자주독립정신 및 국권회복을 고취하는 논설과 기사를 매호마다 다뤄, 인기가 높았습니다. 그곳 교민사회뿐 아니라 시베리아·상해·미주·하와이·멕시코 등지에 발송됐고 국내에서도 비밀리에 유입돼 읽혔다고 합니다. 

그런데 1910년 8월29일 경술국치로 결국 우리 국권은 침탈당하죠. 국치일 후 불과 열흘쯤 뒤인 같은 해 9월10일, 일제의 외교적 압력과 농간에 러시아 당국은 이 신문에 정간 명령을 내립니다. 조선을 집어삼키자마자 재빠르고 음험하게 방해가 되는 언론의 입을 막으려 들었던 거죠.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던 '민족의 저격수' 안중근 의사도 사실 이 대동공보 통신원기자로 활동했습니다. 단지장으로 유명한 그는 권총만이 아니라 펜으로도 독립운동을 했던 다양한 면모의 인물입니다.

평화로운 시기에, 언론이 기사를 작성하는 것 자체를 조국수호나 애국이라고 포장하기에는 난감한 구석이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반대 논리로 너무도 쉽게 언론을 적으로 지목하고, 조국수호에 걸림돌이 되는 기레기라고 매도하는 것도 주의 깊게 살펴야할 일입니다. 하물며 언론으로 독립정신을 치열하게 펼쳤던 안중근 의사의 단지장을 일방적으로 언론 공격에 활용하는 것도 지나친 감이 있네요.

'질문을 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 만큼 기자는 질문 하나로도 사안을 꿰뚫는 진실을 밝혀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바깥의 비난에 눈치 보며, 말과 방식을 세련되게 가공하느라 질문조차 던지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겠죠. 

조국과 언론이 유독 자주 거론되는 가을비 내리는 요즈음, 일제 강점기 조국을 위한 글을 싣다 외부 압력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 한 언론사와 거기 몸담았던 한 위인을 떠올려 봅니다. 오늘날 우리는 단지장을 일방적인 이미지로만 사용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 이 기사를 공유해보세요  
  •  
  •  
  •    
맨 위로

ⓒ 프라임경제(http://www.newsprime.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