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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이사 떼는 이재용? 믿는 구석은 집단지성 '조정자' 새 위상 전념

삼성전자 이사회 실험에 쏠리는 눈…전문경영인과 이사회 간 하모니 가능 자신감 확보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9.10.07 09:08:26

[프라임경제] 이사회와 최고경영자(CEO) 사이의 관계 그리고 견제 등의 연구에 초점을 두는 미국식 경영학 개념에 한국 재벌의 운영 방식은 완전히 들어맞지 않는 구석이 적지 않다. 이번에 삼성전자가 오너 일가의 사내이사 재신임 안건 문제를 저울질하면서 이런 케이스가 하나 더 추가되게 됐다.

오는 26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임기가 끝나지만, 현재 삼성전자는 임시 주주총회 개최 준비를 사실상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 부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을 다뤄야 하는데 그 절차가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 이 부회장이 임기 만료로 사내이사직을 내려놓는 구도를 만드는 셈인데, 그 이유와 이후 대책에 관심이 모아진다.

일단 삼성전자로서는 이 부회장이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에 대응하는 상황에 직면하면서 고심 끝에 이 같은 그림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2017년 실형을 선고받았던 이 부회장이 지난해 2월 열린 항소심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얻어냈지만, 지난 8월 대법원이 다시 파기환송을 선언한 바 있다. 파기환송심은 오는 25일 첫 재판이 열리며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지 않겠냐는 전망을 낳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 부회장이 일정 부분 지고 있던 짐을 내려놓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삼성전자 부회장으로서 경영의 방향을 제시하는 일에서 손을 전부 떼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돌고 있다. 이런 점과 사내이사 재신임을 포기하는 일이 동시에 거론되니 모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투자 기회 발굴 등 삼성전자 부회장 더 나아가 그룹 사령탑으로서의 역할은 계속하는데, 이 상황에서 제도적 책임과 권한 면에서의 삼성전자 이사회 참여는 일정 부분 놓아도 된다는 '뺄 것은 빼고 쥘 것은 쥐는' 쪽으로 결단을 내려도 가능한 바탕이 돼 있다는 얘기다.

◆사외이사 역할 강화 등 이사회 재편 실험서 '자신감'

여타 그룹들도 물론 오너 일가가 꼭 이사회를 완전 장악해야 한다는 논리나 경영진과 이사회 의장의 겸직 관행에서 벗어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점은 사실이다. 

우선 LG전자의 경우 지난 봄 권영수 (주)LG 부회장를 이사회 의장직에 올리면서 조성진 부회장이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는 구도에 마침표를 찍었다.

SK그룹 역시 근래 최태원 회장이 그룹 지주회사인 SK(주) 이사회 의장에서 물러나는 형식을 취했다. 다만 사내이사 재선임은 통과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보면 삼성전자의 경우 이 부회장이 다른 그룹 대비 약간 더 자유로운 상황이었으므로 사내이사를 내려놓는 것도 결정하기 쉬웠을 것으로 볼 여지가 없지 않다. 국민연금 등 대형 투자자의 입김과 때로는 반대 의사 표시 등 골치 아픈 상황이 더 많아지는 상황에서 굳이 사내이사 자리를 유지하는 형식에 매달리지 않겠다는 결정으로 약간 더 이동했을 따름이라는 풀이다.

특히 사외이사 역할 강화 등 이미 실험도 진행, 어느 정도 자신감도 얻은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2월, 김종훈 키스위모바일 회장과 김선욱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병국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등을 새 사외이사로 선임한 바 있다.

김 회장이 한국계 미국인인 점 등에서 당시 상황은 사외이사 역할 강화 수순으로 꼽혔다. 즉, 삼성전자는 앞서 2016년 10월 이 부회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한 이후 당면한 기업 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해 '주주가치 제고 방안'을 발표했으며 그 상황에서 얻은 이사회 운영 노하우로 이번 사내이사직 재선임 포기 흐름으로 이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시 사외이사 역할을 강화함으로서 이사회 중심의 글로벌 경영 철학을 구현하고 외국인 투자자 등 주주들의 다양한 요구를 반영하는 그림을 만들었고, 이사회 멤버를 기존 9명에서 11명으로 늘렸다. 사외이사야 원래 경영진 내지 오너 일가가 편한 사람을 뽑는 구색맞추기에 불과하다는 게 정설로 통했으나 삼성전자는 앞서의 실험에서 실질적 효과와 이를 통한 자신감 확보를 한 것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최근 삼성전자는 김종훈 키스위모바일 회장을 사외이사후보 추천위원장으로 선임하고 사외이사들이 직접 후보를 추천하도록 하는 데까지 한 걸음 더 전진하는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대표이사 최고경영자 하모니도 믿을 만? 전문경영인 힘실을 듯

이렇게 이사회에 일정한 기대를 걸 수 있다는 자신감에 더해, 전문경영인 관련 구도 역시 이 부회장에게 힘이 되어줄 만하다는 풀이가 나온다.

삼성전자는 디바이스솔루션(DS)의 김기남 부회장, 소비자가전(CE)을 맡는 김현석 사장 그리고 IT모바일(IM)을 주도하는 고동진 사장 등 3명의 대표이사 최고경영자(CEO)를 중심으로 한 편제를 갖고 있다. 이러한 전문경영인 체제가 있는 한 이 부회장이 일정 부분 짐을 내려놓고 큰 구도 등으로 삼성전자를 바라보고, 또 그룹 전반에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는 게 가능하다는 것.

실제로 이 부회장은 2014년 부친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뒤 그룹 경영을 총괄해 왔다. 이번 국정농단 사건 외에도 갖가지 돌발 악재를 맞으며 해결하는 능력을 보여준 바 있다.

이 부회장은 미국 전자장비 전문기업 하만을 인수하고 중국 전기차 업체 비야디(BYD)에 지분을 투자하기로 하는 등 굵직한 인수합병(M&A)들을 성사시켜 왔다. 노트7 발화 사태를 극복하고 IM 영역 경쟁력을 과시했으며, 메르스 이슈로 삼성병원이 도마에 오른 상황에서는 이 부회장이 직접 사과에 나서 대국민 이미지 전환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메모리반도체에서의 경쟁력 기반에 만족하지 않고, 시스템반도체 영역에까지 확고히 존재감을 빚어내겠다는 일명 '반도체 2030' 플랜을 선언, 이행해 나가는 상황이기도 하다. 즉, 이미 과감한 연구개발(R&D) 및 설비 투자를 통해 현재의 위치 이상으로의 도약 준비도 얼추 스케치한 상황이다.

현재 사내이사로서 꼭 이사회 테이블에서 일전일퇴 하나하나까지 챙기지 않아도 역할 분담을 기대하면서 이사회와 경영진 사이의 조정자 역할만 어느 정도 해내도 되는 상황이라는 소리로 바꿀 수 있는 대목이다.

삼성전자가 중요 계열사이기는 하나 반드시 이를 직접 통치해야 되는 건 아니라는 점도 흥미롭다. 현재 삼성물산을 통해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구도는 이미 확립됐다는 점 역시 삼성전자서의 특정한 자리 장악 골몰에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는 여지를 이 부회장에게 만들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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