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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20주년 구이람 시인, 새 시집 제목 '뭉클'로 정한 까닭은?

[인터뷰] 꺼지지 않는 열정 "앞으로도 매년 적어도 한권 쓸 수 있을 것"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9.10.22 11:00:51

[프라임경제] 구이람 시인이 다시 새 시집을 펴내면서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어느샌가 시집은 잘 팔리지 않는 책이 돼 버린 게 현실이지만, 그는 부지런히 책을 펴내면서 문단에 신선한 기류를 일으키고 있다. 10월 독자들에게 내놓는 '뭉클'은 그의 일곱번째 시집이다.

사실 그는 학자로도 명성이 높다. 각종 시세계를 두루 살피며 논문을 써낸 인물, 구명숙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어문학부 명예교수의 필명이 바로 이람이다. 독일 빌레펠트대학교에 유학해 비교문학을 공부한 뒤 교수 생활에 전념했다. 1999년 시인으로 등단했지만, 정작 구 시인 스스로는 시를 부지런히 쓰지 못했다고 회상한다.

"독일에 있을 때엔 꿈도 독일어로 꾸라는 말을 들으며 살았다. 그래서 귀국하고 나서 우리 말 작품을 실컷 읽으니 좋았다"면서 다만 "막상 교수 생활을 하다 보니 학문과 제자들을 가르치는 일에 우선 몰입해야 했고, 학과나 학교를 위해 봉사하는 보직도 병행해야 해서 엄청나게 바쁜 생활을 했다. 그래서 논문은 쓰지만 시는 쓰지 못 했다. 남의 시를 많이 읽고 연구하면 시도 잘 써질 것 같지만, 학문적인 논문의 언어와 시어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등단 20돌에도 늘 새롭고 정열적인 창작 전념

구이람 시인이 일곱번째 시집 뭉클을 펴내며 돌아왔다. ⓒ 구이람 시인

그런 겸허한 설명에도 막상 시 창작에 쏟고 있는 정열은 요즈음 시단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2009년 첫 시집인 '그 여자 몇 가마의 쌀 씻어 밥을 지어 왔을까' 이래, 지난해 여섯번째 시집 '너, 피에타'를 내놨고 이번에 또 일곱번째 시집을 펴낸 것. 어느새 '등단 20주년'이라는 타이틀이 생겼으나 시를 쓰는 일이 늘 새롭고 쓸 소재가 떠오른다.

"이제 밖에 나가고 사람들 만날 일도 최소한으로 줄이고 스스로를 유배시키니, 어느 날부터 시가 내게 온다"는 구 시인. 그는 앞으로도 줄곧 시작을 이어 나가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오늘/우리의 세상도/열지 못하는데/어찌 돌아가신 어른의 서랍을/열려 하는가(이번 시집 수록작 '서랍' 중 일부)' 같은 조심스러운 태도로 세상을 살피는 구 시인의 조심스러운 마음이 시집 전반을 관통한다. 

그러나 단순히 관조적인 태도라고 부를 만한 것은 아니다. '보는 이 하나 없어도/저마다 단정히 꽃피어/웃고 있네요(이번 시집 수록작 '저 홀로' 중 일부) 같은 비밀 그리고 비밀을 담은 마음을 가진 참사람을 찾기 위해 치열하게 고심하는 순례자의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마침내 '목을 축여 줄/한 모금 물을 바라며/땅속을 파고 파내던 어느 날/찍쩍 갈라진 땅속에서 하얀 물줄기가 솟구친다(이번 시집 수록작 '뭉클 3' 중 일부)'는 환희를 시를 통해 펼쳐내는 게 이번 시집의 성과이자 독자들에게 구 시인이 보여주고 싶은 시의 세계, 시의 정수다.

뭉클, 인간다운 감정을 느끼며 살자는 제목

구 시인은 시 쓰는 일이 '수행'이며, 알뜰히 써서 세상을 맑게 아름답게 평화롭게 노래하게 하고 싶다고 한다.

"사실 '격투장' 같은 세상살이에서 시를 읽는다는 것을 통해 인간다움을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구 시인은 이번 작품들을 대표하는 제목으로 '뭉클'이라는 이름을 붙은 이유도 "독자들이 뭉클한 순간을 많이 누리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그렇게 정했다"고 명쾌히 답했다. 

마음이 건조해지고 딱딱하고 갈라지기 쉬운 사막 같은 격투장 같은 세상에서 시와 시인의 역할이 무엇인지 자문자답한 끝에 지은 제목인 셈이다.

그는 내년에도 적어도 책을 하나 더 펴낼 수 있을 것 같다며 창작과 발간의 구상을 대강 설명했다.

'웅크린 시들에게/나를 산산이 부숴/바치고 싶다(이번 시집 수록작 '시 4' 중 일부)' 같은 태도로 생활을 경작하는 구 시인을 보면 등단 20돌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이 실감난다. 

주제를 정하고 시를 써내는 일에 전념하는 생활에 권태나 매너리즘은 없다. 늘 새로 솟는 시어와 시 속에서 즐거움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이미 이뤄온 만만찮은 창작 성과에 안주하는 대신, 늘 창작 과정의 즐거움 자체에 대한 그의 열의를 듣다보면 부지런히 밭을 가는 봄철 농부가 연상된다. 늘 봄날 같은 구 시인의 시 세계는 또 어떤 작품들로 이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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