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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제일제당, 해군과 수상한 업무협약

협약에 없는 '납품' 보도자료엔 등장…두 가지 사항은 공개조차 안해

강경식 기자 | kks@newsprime.co.kr | 2019.10.30 12:13:08
[프라임경제] CJ제일제당(097950)이 24일 해군보급창(해군군수사령부. 이하 군수사)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해군 장병의 급식질 향상과 복지 증진에 나섰다. 

CJ제일제당은 "열악한 조리환경을 감안해 불 사용 없이 전자레인지로 조리가 가능한 HMR제품들을 식자재로 납품하게 됐으며, 맛 품질과 조리 간편성을 동시에 갖춰 승조원들의 급식질이 향상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24일 CJ제일제당과 해군보급창은 서울 중구 CJ제일제당 본사에서 '불 사용 없이 전자레인지로 조리가 가능한 HMR 제품들을 식자재로 납품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업무협약을 채결했다. (왼쪽부터) CJ제일제당 민승홍 멀티채널팀장, CJ제일제당 박충일 기업외식SU장, 해군보급창장 이대준 대령, CJ제일제당 김상익 영업본부장, 해군기획조정실장 문대영 중령, 해급보급창 박형섭 주임원사. ⓒ CJ제일제당.



◆계획된 해금인가?

그러나 △이동 급식은 최근까지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됐던 사업 분야에 해당하며 △CJ제일제당이 보도자료를 통해 업무협약에 포함되지 않은 '납품' 등을 언급하거나 △납품 계약으로 볼 수 있는 항목을 삭제하고 발표한 점 △국방부의 국정감사가 종결된 다음 날 CJ제일제당이 전날 체결된 업무협약을 발표하는 등, 양 측이 기획한 군납시장 해금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동 급식은 잠수함 작전 등 화구를 사용한 조리가 불가능한 상황에 도시락이나 야외 식사 등을 마련해 납품하는 것으로 일반 급식업과는 다른 개념이다.

관련해 동반성장위원회는 2013년부터 '기타식사용 조리식품(이동급식)' 사업 분야를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 공공기관과 군납시장에서 대기업의 철수를 권고했다. 다만 권고사항은 올해 5월31일 일몰됐다. 

즉 대기업의 시장진입을 막을 규제가 사라진 상황. 보도자료만 놓고보면 CJ제일제당은 해군의 보급을 책임지는 군수사령부와 직접 업무협약을 맺는 방식으로 시장개척을 추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해군은 '납품계약 없다'는데 CJ제일제당은 '납품하게 됐다'?

수상한 부분은 업무협약 내용에 포함되지 않았던 '납품'이 보도자료를 통해 '이미 완료된 계약의 형태'로 표현된 사실이다. CJ제일제당은 '열악한 조리환경을 고려해 불사용 없이 전자레인지로 조리가 가능한 HMR 제품들을 식자재로 납품하게 됐다'며 '맛 품질과 조리 간편성을 동시에 갖춰 승조원들의 급식질 향상이 기대된다'고 밝혔다.

짧은 시간에 간편하게 조리해 먹을 수 잇는 가정식 대체식을 뜻하는 HMR은 일부 조리가 된 상태에서 가공·포장되기 때문에 간단한 조리로 신선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현재 국내 시장은 1인가구 증가 등을 이유로 대기업을 비롯 중소기업이 난립한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CJ제일제당은 "업무협약을 통해 납품 가능성이 생긴 것은 사실이나 납품을 계약하지는 않았다"며 "실무자가 엄격한 군납 과정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영업부서의 컨펌만을 통해 배포된 보도자료"라고 의혹을 일축했다.

해당 보도자료의 사실관계를 확인해준 해군 군수사 공보정훈실 관계자도 "업무협약일 뿐 CJ제일제당과 납품을 하기로 계약하지는 않았다"며 "CJ제일제당이 왜 그런 표현을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다"고 답했다.

◆숨겼던 업무협약 두 가지 항목의 의미는

그러나 공교롭게도 양측은 업무협약 사항 가운데 두 가지 항목을 공개하지 않았다. 해군측 담당자는 업무협약을 공개하는 과정에서 총 다섯가지 항목이 아니었냐는 추가 질의에 그제야 나머지 두 가지 항목을 공개했다.

군수사가 추가로 공개한 두 가지 항목에는 '납품 계약의 의미부여가 가능한' △전시 지속지원을 위한 상시 급식지원체계 구축과 △상호 견학 요청 시 지원 항목이 포함돼 있었다. 

따라서 양측이 오해의 소지가 있는 항목의 공개에 따른 파장을 우려해 이를 고의로 누락하지 않았냐는 의혹으로 확장됐다. 특히 CJ제일제당이 업무협약을 공개한 날은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가 진행중이고 양 측의 업무협약이 있던 24일'이 아닌 25일이다. 

보도자료에 해당 내용을 빼고 배포했던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상시 급식지원체계 구축은 납품을 의미하는 표현이 아니라 비상시 군수 지원업체 지정을 의미한다"며 "납품에 대한 규제가 없는 상황이며 다섯가지의 항목 전부를 기록하면 보도자료의 양이 늘어나 '등'으로 표현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CJ제일제당은 행사 당일에 보도자료를 발표하지 않아 왔다"며 국정감사를 피하기 위해 발표시간을 미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전면 부인했다.

◆잠수사 놔두고 굳이 군수사와 MOU? 

한편 CJ제일제당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양측은 업무협약에 앞선 7월, CJ제일제당의 가정간편식 대표 브랜드 '비비고' '고메'와 B2B(기업간거래) 브랜드 '쉐프솔루션' 제품들이 활용된 메뉴의 조리 편리성을 선보이는 품평회를 해군 잠수함사령부에서 진행했다.

이들이 잠수함을 선택한 이유는 해군 장병들이 장기간 고립된 공간에서 기존 급식설비를 사용하지 못한 채 작전을 수행하는 상황이 빈번하다는 특수성을 보여주는 가장 극단적인 환경이기 때문이다. 

즉, 최악의 상황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해군 장병들에게 비비고와 고메를 활용한 제품의 만족도를 평가받아 업무협약의 근거로 사용해 합목적성을 피력한 셈. 보도자료를 기반으로 실제 납품이 이뤄진다면, 햇반과 비비고 찌개, 국 및 고메의 전자레인지 조리식품이 납품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업무협약의 대상이다. 실제 해군 잠수함사령부(이하 잠수사)에는 6개 전대, 18척의 잠수함이 운용중이다. 전략무기에 속하는 잠수함은 승조원들은 모두 장교와 부사관 등 간부들로만 구성돼 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1척당 운용되는 총 승조원은 30~40명 수준으로 실제 작전으로 인한 급식환경의 문제는 간부 수백명이 겪는 현장이다.

따라서 이번 업무협약의 성격이 작전현장의 특수성을 고려한 업무협약이었다면, 대상으로 군수사는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대부분의 함정은 가스레인지 등 조리설비의 사용이 가능해 이미 제조된 HMR제품보다 신선한 식자재의 원활한 공급이 더욱 중요하다. 

업무협약에 제외됐던 납품의 유무와 별개로 작전을 수행하는 장병의 복지를 상향시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제품을 공급하는 업무협약이라면 경쟁업체나 국민들의 동의를 받기도 쉽다. 

그러나 해군 전체의 살림을 책임지는 군수사가 직접 나서 CJ제일제당의 HMR 제품을 납품받기로 한 것으로 보이는 형태의 업무협약은 잠수함 승선 장병들의 복지 상향을 빌미로 대기업과의 업무협약을 통한 군납시장 개방을 추진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내수 HMR시장은 고품질의 제품을 제조·공급할 능력을 갖춘 중소기업들도 판로확대에 애를 먹는 수준에 이르렀다. 왜 CJ제일제당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과 검증이 필요하다.

이번 업무협약이 의혹을 불러 일으키자 일부 업체는 이동급식 사업분야의 생계형적합업종 신청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도를 통해 대기업 진입을 다시 막겠다는 취지다.

그간 군 이동급식 시장에 참여해온 한 업체 관계자는 "중기 적합업종 지정과 시장철수 권고의 취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해군이 식품 대기업인 CJ제일제당과 업무협약을 맺으며 시장 개방의 의지에 동의해 준 것은 아닌지 사정기관의 수사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해군과 CJ제일제당 사이 업무협약 뒤에 가려진 진실이 드러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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