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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우리 모여살게 해주세요" 한센인 협동농장, 대명에 토지반환 요구

한센인 피라미드식 공동체구조 의한 참사…76억 '차입대금' 10년새 420억 '뻥튀기'

장귀용 기자 | cgy2@newsprime.co.kr | 2019.11.25 08:43:59

평내4지구 내에 위치한 협동농장에서 생활하던 한센인들과 한센인 2·3세들은 소속원 동의없이 토지에 대한 근저당설정이 이뤄졌으며, 이에 따라 토지를 매입한 차주인 대명종합건설과 현 토지 소유주인 지우종 대명종합건설 대표이사가 한센인들의 토지를 반환해 줄 것을 요구했다. 50여명의 시위대는 10시50분경 건물 진입을 시도하면서 경찰의 제지를 받기도 했다. 사진은 진입을 시도하고 있는 한센인들 모습. = 장귀용 기자



[프라임경제] 한센인 자활촌 협동농장의 소속 한센인과 2·3세 50여명이 22일 대명종합건설 앞에서 협동농장 토지를 돌려달라며 시위를 벌였다.

몸이 불편한 한센인들을 포함해 같이 시위에 참여한 2세·3세들도 대부분이 노인으로 구성된 협동농장 소속인들은 대명종합건설 건물 왼편에 마련된 10평 남짓한 폴리스라인 안에서 자활촌 생활을 계속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40여분간 건물 왼편에서 시위를 벌이던 한센인 자활촌 협동농장 소속 50여명은 10시50분경 건물 진입을 시도하다가 경찰의 제지를 받기도 했다.

나병(癩病)이라 불리는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 살던 협동농장의 토지소유권이 대명종합건설의 소유가 되고 몸이 불편한 나이든 한센인들이 회사 건물 앞에서 시위를 벌이게 된 사연은 한센인들이 살아온 기구한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표본이었다.

속칭 '문둥병'으로 비하되어 온 한센인들은 일제강점기에 강제로 소록도에 수용된 채 길 세월을 사회와 격리된 상태로 살아왔다. 그러다 소록도를 벗어나 각 지역마다 십시일반으로 모은 자산으로 농장을 마련해 자활촌 생활을 하게 된 것은 불과 얼마 되지 않은 이야기다.

남양주 평내동 일원의 한센인 협동농장 소속 한센인들과 한센인 2·3세들이 대명종합건설 건물 왼편에 마련된 폴리스라인 안에서 토지반환과 자활촌 유지를 위한 대책마련을 요구하고 있는 모습. = 장귀용 기자



문제가 된 경기도 남양주 평내동의 5000여평에 이르는 토지도 이렇게 소록도에서 나온 한센인들 중 경기도지부에 속한 사람들이 협동농장을 꾸리며 한센인촌을 형성해 살아가기 위해 마련된 것이었다.

한센인들은 1997년 6월 소속 농장민 67인의 동의서를 작성해 故 문석민 협동농장 대표회장과 그 부인 김혜순 씨에게 명의신탁 하는 방법으로 토지소유권을 문 대표회장에게 일임했다,

이러한 토지관리 방식은 한센인 공동체에서 흔히 있는 일로, 사회에서 격리돼 교육이나 사회생활의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 채 살아온 한센인들이 토지관리와 체계유지를 위해 피라미드식 사회공동체를 만들고 가장 위에 자리하는 대표회장에게 전권을 일임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남양주에 택지가 개발되면서 도시외곽에 위치했던 협동농장부지까지 그 바람이 불어 닥치면서 발생했다. 

택지지정 당시 평내4지구에 속한 협동농장부지는 경춘선 평내호평역이 도보 10분권내에 있는 요지에 위치하고 있어, 많은 기업들이 토지작업을 시작했는데, 대명종합건설도 이 중 대표적인 업체였다는 것.

실제 대명종합건설은 2020년 6월로 예정된 자체사업지 평내호평역 대명루첸 리버파크를 포함해 상당한 부지에 토지를 매입해 사업을 추진 중이다.

한센인들은 당시 대명종합건설 측이 故 문석민 회장에게 한센인들을 돕겠다며, 토지를 근저당으로 잡고 돈을 빌려 투자를 할 것을 제안했다고 주장했다. 

故 문석민 회장은 이러한 개발 소식과 대명종합건설 측의 제안을 듣고 재산을 더 증식시킬 요량으로 2008년 10월21일과 2009년 5월11일 2차례에 걸쳐 76억원을 차입하고 담보로 협동농장토지를 84억원에 근저당권설정 등기를 실행했다. 

이 과정에서 협동농장 소속 한센인들의 동의를 받지 않고 차입을 실행했다는 것이 한센인들의 주장이다.

더 큰 문제는 전문가가 아닌 문 회장이 투자에 실패한데다, 이자 등 금융비용이 추가돼,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던 것.

여기에 약 110억원에 달하는 금액으로 불어난 빚을 감당할 수 없는 상태에서 문석민 회장이 2012년 8월20일 사망하자, 토지가 원래 공동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한센인 협동조합으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문 회장의 가족들이 이 토지를 상속한 것.

22일 시위에 참여한 한센인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는 모습. = 장귀용 기자



이 상태에서 대명종합건설은 2013년 9월10일 경매신청 한 이후 법인자금을 통해 이를 구입해 2014년 가등기와 본등기를 차례로 진행해, 지승동 회장의 장남인 지우종 현 대명종합건설 대표이사의 개인 명의로 등기를 완료했다.

이후 한센인들의 집회 신청과 항의에 2차례에 걸쳐 협상을 벌였지만, 대명종합건설 측에서는 그동안 평내지구 개발 사업이 진행되면서 오른 토지비 약 350억원(1차 협상)과 420억원(2차 협상)을 요구했고, 지불능력이 없는 한센인들과 협상이 결렬됐다는 것.

시위에 참여한 한센인 A씨는 "(격리된 생활과 재정형편 때문에) 한센인들이 무지하기 때문에 일어난 참사며, 대표회장의 욕심이 불러온 화다. 하지만 이전에 돈을 빌릴 때, 소속원들의 동의가 없었다"며 "오갈 곳 없는 한센인들이 모여살던 터전을 이대로 빼앗긴다면 한센인들은 어디에서 살아가야 하나"고 말했다.

한센인 2세 B씨도 "택시가 본업인데, 오늘 일을 제쳐두고 왔다. 한센인인 노모가 어려움 속에서 나를 길러주신 터전이 협동농장"이라며 "기업이 사회공헌사업도 벌이는 현 시대에 시대의 아픔이라고 할 수 있는 한센인들의 아픔을 돌아봐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센인들은 대명종합건설의 입장을 듣기 위해 관계자가 시위 현장에 나오길 요청했지만, 대명종합건설 관계자는 시위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한편, 협동농장 측은 지우종 대명종합건설 대표이사 등을 상대로 소유권이전등기 등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상태로, 토지 명의신탁자 혹은 권리계승자들의 동의절차가 없었던 부분이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을지 여부가 주요관건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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