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칼럼] 66일간 '상실의 시간'을 지나며

2019-11-25 12:23:50

[프라임경제] 추위가 한층 매서워진다. 거리는 온통 냉기로 뒤덮여 있고, 행인들 걸음걸이도 얼어붙기 시작했는지 점차 둔해진 분위기다. '조국 사태'로 촉발된 이념적 반목 역시 스산한 계절만을 남긴 채 소강상태에 접어든 것 같다.

66일간 분열은 도덕적 타락과 거짓에 대한 방조에 매몰돼 문제 주체들이 성찰할 기회마저 앗아가 버렸다. 그래서인지 마땅히 성찰 목소리를 내야 할 이들은 침묵하기에 바쁘다. 물론 '사퇴'라는 두 글자가 덩그러니 남겨지긴 했다. 허나 그것을 사태 책임으로 치환할 순 없다. 시작부터 예견된, 필연적 귀결이기 때문이다. 

'공정'의 상실은 실시간으로 중계됐다. 기득권 타파를 부르짖던 이는 스스로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내며, 그 자신이 고백했듯 기득권 전형이었음을 보여줬다. 

딸 논문 취소와 사모펀드 의혹, 그리고 연이은 주변인들 구속. 어느 새 그는 청년에게 깊은 상흔을 아로새긴 가해자로 변모해갔다. 

지난 66일간 날선 여정은 그야말로 냉소와 허탈을 자아낸 시기였다.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은 정작 그것을 소리 높여 외치던 이들로부터 냉혹하게 외면당했다. 

그들은 '뱀의 혀'를 놀리며 적극적으로 평등과 공정을 해체시켰으며, 이는 청년들로 하여금 심리적 박탈감을 불러일으키기에 모자람이 없었다(특히 논문에 기여한 바가 전혀 없는 인물이 제1저자로 등재된 문제와 관련해 이를 'R&E' 프로그램 일환인 양 가짜뉴스를 퍼트리며 비호한 이들은 도덕적 해이의 극치였다).

남은 것은 무엇일까. 극단으로 흘렀던 66일은 사회적 가치만이 아니라 그런 가치들에 대한 믿음마저 사라진 시기다. 거기에는 '상실의 시간'을 거치며 계층 차이를 절감했던, 그래서 질투할 힘조차 내지 못한 청년들의 허탈이 잠재됐다. 
 
물음으로 회귀해본다. 무엇이 남았는가. 먼지가 자욱해 잘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결과의 정의'가 남아있다. 청년에게 새겨진 깊고도 짙은 상처를 보듬기 위해 결과만은 '정의'를 쫓아야 한다. 

이제 시선은 검찰로 옮겨간다. 결말은 미지 영역이겠으나 '모범답안'이 존재함은 자명해 보인다. 겨울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겨울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 사뭇 궁금하다.




장재원 청년기자

*해당 칼럼은 사단법인 '청년과미래' 활동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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