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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오늘] 삼성이 잊고지낸 나비효과…무노조원칙 깨지기까지

 

강경식 기자 | kks@newsprime.co.kr | 2019.12.03 09:50:24
[프라임경제] 10년 전 오늘 현대·기아차그룹(이하 현대차그룹)은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를 탈퇴한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일부 매체는 현대차그룹이 경총을 탈퇴하는 원인으로 정부가 내놓은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을 둘러싼 삼성그룹과의 견해차이를 지목했습니다. 

정부안이던 복수노조 설립 허용이 합법화되면 50년을 지켜온 '무노조원칙'이 깨질 것을 우려한 삼성그룹이 '복수노조 허용 3년간 유예',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는 종업원 수에 따라 순차 적용'등 자사에 유리한 협상안을 경총의 힘을 빌려 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하는 바람에 현대차그룹의 입장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주장입니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오늘, 무노조경영을 원칙삼던 삼성전자에는 '노조파괴기업' 꼬리표가 붙었고, 한국노총 산하 전국단위 노조가 활동하는 시대가 열렸습니다. 지금의 삼성에게 어쩌면 가장 곤란하고도 스스로 풀기 어려운 숙제가 주어진 상황입니다. 

삼성이 어쩌다가 50년을 버틴 무노조원칙을 깨고 전국단위 노조 설립을 지켜볼 수 밖에 없게 된 사연인지 10년 전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경총서 영향력 행사한 바로 그 날

삼성그룹을 필두로 현대차그룹을 제외한 여타 재벌기업들이 복수노조설립 허가를 유예하는 것에 대해 환영해온 기록은 2009년 이전에도 여러차례 확인됐습니다.  

조금 더 앞으로 돌아가 2006년 노사정위원회는 한 차례 '복수노조 허용 3년 유예,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유예' 등을 골자로 한 노사정합의를 이끌어 낸 바 있습니다. 

당시에도 삼성그룹은 "복수노조 유예나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를 3년간 유예키로 한 합의는 노사관계 안정화, 선진화를 위해 노사정이 머리를 맞댄 결과이므로 존중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같은 합의의 수혜가 삼성을 비롯한 무노조 또는 노사관계가 안정화 된 기업에게 간다는 주장은 당연하게 따라 붙었습니다. 

그 사이 세계 금융위기를 거치며 노사정위원회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로 개편됐습니다. 2009년 이들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민·정 합의'를 이끌어 내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10년 전 오늘인 2009년 12월3일 경총이 또 다시 현대차그룹의 입장을 배제한 합의를 추진하자 현대차그룹은 경총 탈퇴라는 초강수를 둔 것입니다. 

경총과 한국노총이 2009년 12월2일 오후에 진행한 협의에서 복수노조 허용을 3년간 유예하는 안에 사실상 합의했지만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시기에 대해서는합의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협상은 늘 그러하듯, 하나를 주면 하나를 얻는 것입니다. 삼성이 반대했던 '복수노조는 허용'은 노동자들의 요구와 반대로 3년간 미뤄졌고, 노동자들이 반대했지만 현대차그룹이 요구했던 '노동조합 전임자임금지급 금지'의 즉시시행도 미뤄졌습니다. 

현대자동차 입장에서 보기에 협상결과는 3년 전과 결론이 같았습니다. 즉 삼성그룹은 무노조원칙을 3년 더 고수할 수 있게 됐고, 현대차그룹으로서는 노조 전임자의 임금 부담을 지속해야 했습니다. 이런 협상을 한 경총의 행보를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는 가만히 지켜볼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하필 MB가… 또 다시 MB가…

그런데 삼성이 고려하지 못했거나 관리에 실패한 변수는 정부였습니다. 당시 여당이었던 한나라당과 2008년 취임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도 같은 문제를 두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나라당은 경총과 같이 '복수노조 허용,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조항 3년 유예 또는 3년에 걸친 단계적 시행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었고, 정부는 즉시 복수노조를 허용하고 이듬해 7월부터 노조 전임자에 대한 임금 지급을 금지하는 대신 근로시간을 면제해주는 타임오프(time-off) 제도의 도입을 추진했습니다.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당시 노동법개정의 승자는 정부와 현대차그룹이었습니다. 12월 타임오프제도가 포함된 노사정 재합의가 도출됐고, 이듬해 1월1일 국회 의결로 전임자임금 지급금지가 결정됐습니다.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의 시행도 예고됐습니다. 즉 복수노조 설립 허용을 반대해온 삼성은 패배한 것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달력을 빠르게 넘겨 현재로 돌아오면, 10년전 무노조원칙을 고수하기위해 복수노조 허용을 미루고자 주장했던 삼성그룹은 경총과 함께한 노조파괴전략이 드러나며 50년 무노조원칙을 깨고 전국단위 상급단체를 둔 노조 설립을 허용하게 됐습니다. 

전혀 삼성이 추진하지 않았던 방향이죠. 삼성은 10년 동안 패배를 인정하기 보다는, 정부가 복수노조를 허용하더라도 삼성이 허락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40년을 그렇게 이겨왔기 때문이죠.

하지만 지금 삼성에게 닥친 이런 상황은 다름아닌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수사에서 시작됐습니다. 어렴풋이 10년 전에도 발목을 잡혔던 기억이 떠오를 듯 합니다. 

공교롭게도 검찰은 이 전 대통령 재임시절 삼성의 다스(DAS) 미국 소송비 대납 혐의를 수사하기 위해 삼성전자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노조 와해 전략 문건을 발견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구체적으로 '삼성전자가 미국 법무법인인 에이킨검프(AKin Gump)의 법률서비스 기회를 이 전 대통령에게 제공했는가'를 파해치다 보니 삼성전자가 노조를 와해시키려는 내용이 포함된 문서가 발견됐고, 수사가 이어졌다는게 검찰의 설명입니다. 만일 변호사 비용도 대납해준 게 사실이라면 삼성 측이 이 전 대통령에게만은 억울하다고 호소하더라도 공감해 줄 것 같습니다.  

사실 검찰은 2015년 노조와해 의혹에 대해 한 차례 수사를 한 뒤 관련자들을 무혐의 처분했지만, 새롭게 문건이 발견됨에 따라 지난해 4월 본격적인 수사를 재개한 것입니다. 한 번 뭍힌 사안이 다시 발굴되기도 어려운데, 하필 이 전 대통령과 삼성. 좋은 인연은 아닌 게 분명합니다. 

검찰은 5개월여 간의 수사 끝에 삼성이 그룹 차원에서 노조 와해 전략을 수립하고, 조직적으로 시행했다고 수사 결론을 내렸습니다.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수사부(당시 김수현 부장검사)는 지난해 9월 이 같은 혐의로 전직 삼성전자 노무담당 전무 목장균(55) 씨 등 4명을 구속 기소하고 28명을 불구속 기소하는 등 관련자 32명을 무더기로 재판에 넘겼습니다. 사실 삼성그룹의 2인자로 알려진 이상훈(64)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 등도 포함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복수노조와 관련해 이건희 회장에게 보고될 문서도 공개됐습니다. 'A문건'으로 불리는 해당 문서에는 복수노조 시행을 유예하는 법 개정 추진 방안을 포함한 삼성그룹 노사전략의 핵심 내용이 담겨 있었던 것으로 △복수노조시행을 재차 유예하는 법개정 추진 △그룹 내부 전 임직원 노사교육 강화 △원천적 노조설립 차단 등 핵심적인 그룹노사전략 방안을 골자로 했습니다. 

또한 2014년 표적감사에 시달리던 노조원 염호석씨가 안타까운 선택을 한 뒤 벌어진 경찰의 시신 탈취 과정에 삼성과 노동부·경찰 간 유착이 있었음도 드러났습니다. 

당시 경찰청 정보국 간부 김모 경정이 삼성으로부터 돈을 받고 노조와해 전략에 개입한 혐의로 구속되면서 이러한 의혹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었음이 확인됐습니다. 또 염씨의 투쟁 당시 상경한 조합원들을 정보국 경찰 20여 명이 따라다녔던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진정한 반성은 실형 구형에서 시작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지난달 5일과 11일 각각 열린 '삼성전자노동조합 와해'와 '삼성에버랜드노동조합 와해' 혐의에 대한 검찰의 구형 과정에서 알려진 일화입니다. 

지난달 5일 검찰은 이상훈(64)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과 강경훈(55) 삼성전자 부사장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등 혐의 결심 공판에서 각각 징역 4년을 구형했습니다. 바로 염씨가 속해있던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조합 와해과정에 주도적으로 개입한 혐의에 대한 구형이었습니다. 

이날 검찰은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성찰 없이 반성하지 않는 피고인들의 태도를 참작해야 하고,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거짓 주장하는 일부 피고인들의 태도는 반드시 양형에 반영돼야 한다"며 "이런 반헌법적이고 조직적인 노조파괴 범죄가 재발하지 않도록 엄중한 사법 판단을 해줄 것을 간곡히 요청한다"며 실형을 구형했습니다. 

검찰의 엄중한 요구는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이 의장을 비롯해 강 부사장 등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반성의 기미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방증이겠죠. 

검찰의 실형 구형은 효과적이었습니다. 이들의 달라진 태도는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같은 달 1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3부(재판장 손동환 부장판사) 심리로 개최된 강 부사장과 이우석 전 삼성에버랜드 전무 등 13명에 대한 결심 공판공판에서 강 부사장은 "제가 제어하고 통제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많이 반성한다. 과도한 대응에 대해서도 수사와 재판을 받으면서 많이 반성했다"며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책임 지겠다"고 밝혔습니다.

강 부사장은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해에 앞서 2011년 7월1일 복수노조 제도 시행이 예고되고 조장희씨 등이 에버랜드에 노조를 설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미래전략실에서 마련한 노사전략을 바탕으로 노조와해 공작을 벌인 혐의를 받았습니다. 

검찰은 강 부사장과 함께 재판에 넘겨진 이 전무에게 징역 3년을, 노조대응 상황실 김모씨 등에게는 벌금 500만원 징역 1~2년을 구형했습니다. 

이들은 이들은 복수노조 제도 시행 전인 2011년 6월부터 2018년 3월까지 '어용노조'를 이용해 조씨 등이 만든 '삼성노조'가 단체협약 체결 요구권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으로 노조활동을 지배하고 개입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또 회사가 어용노조 설립 신고서 등 노조설립에 필요한 서류를 대신 작성하거나 검토해 주면서 설립을 주도하고, 어용노조 시비를 염려해 어용노조 위원장 임모씨에게 언론대응 요령을 교육하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재판과 수사 과정에서 나타단 또 한가지 특징은 검찰이 삼성과 한국경영자총협회 사이의 관계를 인정한 사실입니다. 검찰은 두 건의 재판을 비롯, 삼성 노조의 수사와 관련해 경총을 압수수색해 발견한 노조파괴 활동의 자료를 발견했고, 경총 간부가 삼성그룹이 노조 활동을 저지하기 위해 만든 본사 특별대응팀 회의에 수시로 참석한 정황도 확보했습니다.  

10년 전부터 경총을 끌어들여 복수노조 설립허용에 반대해왔던 삼성의 노력에 비해 막심한 피해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검찰의 실형 구형이 아니었다면 잘못했던 사실을 깨닫기는 했었을지 의문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권리를 인정받게 된 삼성의 노조들은 이제 이재용 부회장에겐 눈엣가시같은 존재가 됐습니다. 8월에는 전국금속노조 삼성지회,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삼성에스원 노조, 삼성전자 노조 등 삼성그룹사 8개 노조가 모인 노동조합 대표단이 모여 대법원 앞에서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농단의 정점인 이 부회장을 재구속하고 무노조 경영 등 불법 행위도 엄중 처벌하라'고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이 때만 하더라도 이 부회장의 재구속 가능성이 점쳐지던 시기였죠. 삼성그룹은 당시 노조의 기자회견에 대해 무대응으로 일관했습니다. 아니 그럴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 부회장의 재구속 가능성이 사라진 이후에도 삼성그룹은 노조와 관련한 내용에 대해 언급을 피했지요. 결국 입을 꾹 다문 채 전국단위 노조의 설립을 지켜볼 수 밖에 없게 된 상황입니다. 

마침 삼성노조가 법적지위를 인정받은 이 날(11월13일)은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의 49주기이기도 했습니다. 노사정 삼자회의의 한 축이던 경총에서 재계1위의 영향력을 행사해 복수노조허용을 유예시키려던 꼭 10년, 그렇게 삼성에는 노조가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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