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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오늘]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 폴 새뮤얼슨, 떠나면서 남긴 것들

 

권예림 기자 | kyr@newsprime.co.kr | 2019.12.13 09:46:41
[프라임경제] 10년 전 오늘 2009년 12월13일은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미국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이 94세로 생을 마감한 날입니다.

새뮤얼슨은 미국 케임브리지에 위치한 유명한 공과대학인 MIT에서 경제학과를 개척하고, 1948년에 세계에서 제일 많이 읽힌 경제학 교과서로 알려진 '경제학(Economics)'을 발간한 업적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특히 새뮤얼슨은 경제학을 기존 '경제문제에 대해 심사숙고하는 학문'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문제를 해결하고 현상의 원인과 결과를 수학적 엄격함과 명료함으로 설명하는 학문'으로 바꾼 공로를 인정받아 1970년에 노벨상을 받은 바 있습니다.

심지어 그의 MIT 동료이자 또 다른 노벨상 수상자인 로버트 M. 솔로우는 "경제학자들이 어떤 것을 계산하거나 분석하기 위해 종이를 들고 책상에 앉아있으면, 그들이 사용하는 도구나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데 있어서 새뮤얼슨만큼 더 중요한 사람은 없었다"라고 말할 정도죠.

폴 새뮤얼슨 교수. ⓒ MIT 홈페이지

이런 찬사를 받는 새뮤얼슨이지만 그의 '경제학' 교과서가 처음 나왔을 때는 '좌파 교과서'라며 비난을 받았던 시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미국 신고전학파를 이끈 경제학자로서 그는 "완전고용을 위해서는 적절한 정부 개입이 필요하지만(케인스 이론), 완전고용이 달성되면 오직 수요·공급이라는 시장 메커니즘에 맡겨 경제를 자율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완전고용에 도달할 때까지는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지만, 일단 완전고용이 달성되면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완전고용이란 일할 수 있는 능력과 노동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취업을 희망하면 고용이 될 수 있는 상태를 뜻합니다. 통계적으로 실업자의 비율이 3~4%가 되면 완전고용으로 여깁니다.

이처럼 신고전학파는 고전학파와 케인스학파를 접목한 이중경제(mixed economy), 즉 사기업의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인정하면서도 국가가 '완전 고용 달성'과 '불황 극복'을 목적으로 적극적인 경제 활동을 펼치고 공공지출 확대를 지지하는 학파입니다.

다만 새뮤얼슨의 '경제학'이 출판될 당시엔 신고전학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수적인 이데올리기와 반공주의가 인기를 끌며 국가 개입을 반대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새뮤얼슨은 학부로 시장 자유를 우선시하는 자유주의 경제학의 본고장인 시카고대를 나왔습니다.

폴 새뮤얼슨 교수. ⓒ MIT 홈페이지

그렇다면 새뮤얼슨이 국가 개입을 옹호하는 케인스 이론에 매료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가 학부생일 당시 미국은 대공황이란 지옥에 빠져있었습니다. 아무래도 현실과 괴리가 있는 학문에 답답함을 느꼈던 거겠죠. 그는 "시카고대를 다니면서 교실에 배웠던 것과 창문 밖 길거리에서 듣는 것의 차이를 알게 됐다"며 자유주의 시카고대 학풍을 '정신분열증'이라고 말하기까지도 했습니다.

이런 그는 케인스주의를 내세우며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따고 26세란 어린 나이에 MIT 경제학과 교수로 발탁됐습니다. 이후 미국 대통령, 의회 의원, 연방 준비 위원회 회원들 등의 경제학 '과외선생님'이자 미국 재무부·예산국 및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가장 영향력 있던 제자는 존 F. 케네디일 것입니다. 

하지만 새뮤얼슨의 신고전학파도 한계가 존재합니다. 그가 지지한 자유무역체제는 세계화 시대를 여는 데 크게 기여한 반면, 최근 몇 년간 거세진 보호무역주의 불길에 영향력이 줄어든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올해는 미·중 무역 분쟁과 경제성장률 둔화, 금융시장 충격 등으로 세계 무역량이 감소하며 각국의 보호주의가 더욱 강화됐습니다.

심지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선두로 164개 회원국을 보유한 세계 최대 무역기구인 WTO의 상소기구 가동이 중단될 가능성도 제기돼 WTO는 1995년 설립 이후 최대 위기에 빠졌습니다. WTO를 창립한 주인공인 미국이 불만을 제기하면서 이런 사태가 발생한 것입니다. 상소기구 역할이 중단되지 않더라도 WTO의 영향력이 전보다 약화한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또 아이러니하게 새뮤얼슨이 시카고대 자유주의 사상이 당시 현실과 동떨어진 점에 비판했는데, '인간의 합리성'을 전제로 하는 그의 신고전학파 이론도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만연합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여러 변수에 취약하며 자주 비합리적인 선택을 한다는 비판이죠. 이와 더불어 수학적 이론이 현실에 제대로 반영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개인의 사상이나 경제 상황이 어떻게 됐든, 세상을 떠난 몇 개월 전까지도 수많은 학생들의 멘토로서 활동하며 경제 칼럼을 기고한 새뮤얼슨에게 우리가 본받을 점이 있다는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누군가 살아생전 그에게 이런 지적을 했다고 합니다. 세계화가 발전하면서 국가들이 더욱 경쟁하고 직장에서는 컴퓨터 기술이 도입돼 노동 시장도 치열해질 것이라고. 

이에 그는 기업들이 효율적으로 움직이며 자유 시장의 기본 틀을 따라야 한다고 동의하면서도, 기업 규모 및 정부 복지 축소는 "마음과 함께 이뤄져야 한다(must be done with a heart)"고 답변했다고 합니다.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과 불경기의 징조로 각박해져가는 우리 사회가 어느 때보다 새겨야 할 말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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