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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오늘] LG 스마트폰 흥망 가른 '조준호 카드'

최고의 인재가 절치부심 하게된 까닭

강경식 기자 | kks@newsprime.co.kr | 2019.12.19 08:45:13
[프라임경제] 오늘의 '10년 전 오늘'은 LG그룹 사상 유례없는 단일사업부 적자를 기록한 LG전자의 MC사업부가 흥망의 기로의 선 날을 조명합니다. 향후 MC사업부 실패의 단초를 제공했다 평가받는 조준호 부사장이 1년 만에 사장으로 다시 승진하며 지주사 LG의 최고운영책임자로 자리잡은 날이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빈소에 조준호 LG인화원장이 들어서는 모습. ⓒ 연합뉴스



당시 조 사장의 승진은 당연하면서도 파격적인 인사였습니다. 경쟁관계인 삼성그룹과 LG그룹 모두 전자제품을 주력으로 전환한 상태에서 촉망받는 후기 경영인이자 성과를 기반으로 선정된 카드였기 까닭이죠. 성과만 본다면 안정적인 선택이지만, 50세의 젊은 나이에 주력사업과 다른 전공분야의 수장이 된다는 사실은 '혁신'적인 인사로 보기에 충분했습니다. 

안정적인 선택이라는 평가의 배경에는 조 사장의 인품과 실력이 뒷받침 됐습니다. 이전까지 조 사장은 재계에서도 손꼽히는 인재였습니다. LG그룹 내부 평가를 빌리자면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엄격한 사생활과 젠틀한 매너를 갖춰 선후배 모두에게 존경을 받는 훌륭한 인품을 갖춘데다, 2004년 북미시장에서 LG전자 휴대폰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고(故) 구본무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재계에서도 초콜릿 폰 신화를 써 내려왔던 김쌍수 사장에 비견되며 향후 LG의 주축으로 예견되기도 했었죠. 김 사장의 작품인 LG의 초콜릿폰과 샤인폰은 당시 전 세계 휴대폰 시장에서 LG를 선두그룹에 올려 놓았던 훌륭한 제품이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LG는 준수한 시장 경쟁자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말이죠.

조준호 사장이 LG그룹의 얼굴로 자리잡고 시간은 흘러 아이폰과 갤럭시로 대표되는 스마트폰 전성기가 시작됐습니다. 경쟁사인 삼성전자에서 옴니아의 실패 이후 와신상담에 성공하는 반전 드라마가 펼쳐지는 사이 스마트폰 시장의 화두는 '최적화'로 정의되기 시작합니다. 마침 2009년 구글은 모바일용 운영체제인 '안드로이드'를 선보였죠. 즉 아이폰이 IOS라는 자체 운영체제에 최적화 된 디바이스를 출시해 사용자 충성도를 유지하자, 이에 대한 대안으로 개방형 운영체제인 안드로이드에 최적화 된 제품이 쏟아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으로 자연스레 이어지게 된 거죠.

결과로 보자면 안드로이드에 집중했던 삼성은 당시 출시했던 갤럭시의 이름을 지금까지 이름을 이이어가게 됐습니다. 반면 같이 안드로이드를 선택했음에도 LG는 안드로-원(Andro-10)으로 시작해 옵티머스를 거쳐 'G'와 'V'로 구축된 지금의 체제까지 수차례 라인업을 재 구성해야 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최적화'의 화두가 '스팩'으로 전환된 시기는 LG전자가 옵티머스 2X에 듀얼 코어 CPU를 탑재하면서 시작됐습니다. LTE 서비스 개시와 맞물려 삼성이 안드로이드 최신사양의 제품을 출시하는 방향을 선택한 반면, LG가 선택한 최고사양의 스팩으로 최적화의 문제를 극복하는 시도는 꽤나 성공적이었습니다. 이후 '옵티머스 G'의 성공적 시장 안착으로 LG전자는 반전의 기회를 마주하게 됐습니다. 

옵티머스 G에서 'G'를 딴 'G2'는 LG의 베스트셀링 기록을 달성했습니다. 이어진 'G3'도 1000만대 판매량을 기록하며 연타석 홈런을 때려, LG전자를 다시 전세계 매출액 3위의 스마트폰 제조사로 등극시키고야 맙니다. 박종석 사장이 이끌던 MC사업부는 LG그룹 내에서도 승승장구했고, 중국의 거센 도전에도 성공적인 성적표를 받아내며 삼성과 함께 스마트폰 제조강국의 면모를 세계에 알리는데 일조했습니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은 또 다시 LG 스마트폰의 발목을 잡고야 말게 됩니다. 박 사장의 갑작스런 건강 악화로 조준호 사장이 MC사업본부장에 자리하게 됐습니다. 사실 LG그룹의 구조상 조준호 사장 이상의 대안을 찾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미래 먹거리로 지목됐던 스마트폰 사업의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자리에 실적을 기반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조 사장 이상의 대안은 없었을 것입니다. 

10년 전 오늘 조 사장의 LG 사장 취임이 그로부터 5년 뒤 MC사업 본부장 자리에 갈 수 밖에 없던 환경을 만들어 준 셈이죠. 안 팎에서 인정받는 인재를 소방수로 활용하는건 당연한 선택이었고, 미래사업의 담당자는 전폭적인 신뢰를 받아야만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죠. 위기의 상황, 구원등판은 당연하게도 큰 기대를 모았고, 이때 사용된 조준호 카드는 LG그룹의 현재에 이르기까지 규모면에서 최대의 손실을 누적시키는 악수가 됩니다. 

시기적으로 악조건이 너무 많았습니다. LG그룹의 계산보다 허들은 높았습니다. 2014년 10월 시작된 단통법은 내수 매출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치기 시작했고, 중국내 LTE망 보급이 속도를 내면서 화웨이와 샤오미의 선전은 글로벌 매출 하락으로 이어지던 시절입니다. 

이 때의 실패는 단지 조준호 사장의 경영 문제로 치부하기엔 부족합니다. 경영진의 신뢰와 시장의 기대에 부응하기에 적합했던 인재인가를 고려해야 하고, 경쟁사의 선택과 차별화된 전략의 성공가능성을 타진하는 역량이 부족했다고 판단하는게 더 옳다고 생각됩니다. 

우선 MC본부장이 된 조 사장은 '퀄컴의 스냅드래곤 810'을 사용한 'G Flex 2'를 가장 먼저 선보였습니다. 살짝 구부린 형태의 'G Flex 2'는 심각한 발열과 성능문제를 나타냈습니다. 관련해 퀄컴의 설계 문제로 인한 불량이라는 소문은 기정사실화 됐습니다. 플래그쉽 모델로 내놓았던 'G Flex 2'가 품질문제를 겪는다는 사실은 보급형 모델에 대한 신뢰를 깎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다만 G Flex 2의 결함을 조 사장의 책임으로 묻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이후의 실패는 조 사장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됩니다. 사실상 조 사장의 진두지휘로 출시된 모델은 'V10'입니다. 애초에 G시리즈가 플래그쉽에 해당하는데 또 다른 플래그쉽을 출시한다는 전략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경쟁력을 갖춘 '옥상옥'을 만든다는 계획인데 실제 시장의 반응도 마찬가지로 납득하지 못했습니다. 화면의 대형화를 통해 이른바 '패블릿'라인을 구축한다는 계획이었지만, 갤럭시의 높은 벽에 막혀 시장 안착에는 실패했습니다. 

마케팅 측면에서도 큰 실책을 범했죠. 'SUPER', '프리미엄' 등 품질을 강조한 마케팅은 품질력으로 뒷받침이 됐어야 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 처럼 '최적화'를 넘어서기 위해 '고스팩'을 지향하기 위해 '퀄컴'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온 LG는 'G Flex 2'의 실패 이후 다시 최적화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다시 말해 G4 수준의 하드웨어를 기반으로 최적화를 통해 좀 더 나은 수준의 기기를 만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문제는 LG가 정한 최적화의 수준이 경쟁사의 고스팩 하드웨어 수준에 미치지 못했고, 무한 부팅 등 고질적 결함마저 발견된데다 결정적으로 프리미엄 수준에 맞지 않는 안드로이드 7.0 누가 업데이트 미지원 결정이 알려지며 경영 방침 자체에 대한 의구심으로 번졌습니다. LG전자는 추후 안드로이드 업데이트 문제를 해결하기는 했으나 결국은 조 사장의 부임 첫 해인 2015년 적자전환의 빌미를 제공하고야 말게 됐습니다.

힘든 한해가 지나가고 2016년 2월21일 LG전자는 G5를 출시했습니다. 이 때를 뒤돌아 보면 LG전자가 다시 없을 큰 기회를 잡았던 시기입니다. 같은 날 출시됐던 갤럭시 S7과 그해 8월 출시된 갤럭시 노트7에서 폭발사고가 잇달아 발견됐기 때문입니다. 유례없던 전량리콜 사태를 겪은 갤럭시 노트7과 마찬가지로 폭발사고가 보고됐던 갤럭시 S7은 삼성전자에게도 큰 손실을 안겨줬습니다. 

하지만, G5는 더욱 비참한 성적표를 받았습니다. 이른바 '노트7 사태'에 대한 반사이익은 없었습니다. 신제품에 혁신적인 모듈러 시스템을 탑재했지만, 뒤집어 보자면 소비자 입장에서 추가적인 장비를 구매하는 방식은 비용의 증가로 이어진다는 단순한 고민조차 누락된 선택이었습니다. 

그 해 가을 V시리즈의 두번째 모델 V20이 출시됐습니다. LG전자는 마케팅에 총력을 기울였고, 기계에 대한 평가도 긍정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적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계속되는 적자 행진을 막지 못한것은 사실입니다. V10에 대한 불신이 이어졌고, G5와 비슷한 스팩에도 높은 가격은 설득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와신상담. 2017년 G6를 선보이며 조 사장과 MC사업부는 돌파구를 찾습니다. G6는 북미시장의 호평과 갤럭시 S8 출시에 앞선 선점효과 등에 힘입어 1분기 영업손실을 2억으로 줄이는 효자가 됐습니다. 그것도 잠시, 삼성이 내놓은 S8은 사전예약만 100만대를 돌파하는 기염을 쏟아내며, G6를 돌풍에 그치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전략적인 선택이 만들어준 반짝 호황을 경쟁사의 상품력으로 뒤집어 버린 상황이죠.

흑자전환의 장밋빛 내일이 사라지자 하반기는 더욱 냉혹했습니다. 야심작인 V30가 V20보다도 못한 시장의 반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V30은 158g에 불과한 가벼운 무게와 훌륭한 베터리 성능을 갖추고도 노트8과의 경쟁에 실패했습니다. 패블릿의 강점인 펜이 없었고, OLED의 불량, 최적화에 실패한 사용자 환경의 구성 등 노트8에 비해 상대적으로 도드라진 약점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왜 노트8과 경쟁하려 했는지에 대해선 아직도 의문부호가 따라붙습니다. 펜의 여부가 기기의 성격을 달리하는 요소가 된지 오래된 시점에서 단순히 큰 화면이라는 공통점을 기반으로 경쟁한다는 것 자체로 무리한 시도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2년간 MC사업부의 수장으로 자리했던 조 사장은 2017년 12월 LG그룹의 인재개발원인 인화원장으로 보직을 변경합니다. 다만 언제라도 LG의 대표적인 리더로 복귀할 여지는 충분합니다. 인화원장이 갖는 이미지는 LG가 그리는 인재상에 가장 가까웠다는 방증으로 해석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향후 조 사장이 MC사업부로 복귀할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안타깝게도 조 사장이 이끌던 시절 LG MC사업부의 역량이 충분했고, 몇차례 기회도 찾아왔었으나 잡지 못했습니다. 결과를 기반으로 리더십을 평가하는 것은 잔인하지만 가장 공정하기도 합니다. LG가 스마트폰 사업을 핵심 사업 부문에서 포기하지 않는 한, 조 사장의 MC사업부 복귀는 어려울 전망입니다. 

또한 최근들어 개선되는 실적도 조 사장의 자리를 좁히는 까닭입니다. 올해 LG전자는 3분기 연결기준 매출액이 15조6990억원, 영업이익은 7811억원이라고 밝혔습니다. 증권가는 필요인력의 구조조정이 아니라 스마트폰 제조라인을 평택에서 베트남으로 이전하는데서 기인한 적자 감소로 판단했습니다. 

소비자 반응도 개선됐습니다. LG전자는 고객의 수요에 귀를 귀울이는 방식으로 접근에 성공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중국 업체들의 경쟁력을 인정하고, 보편적인 소비자 니즈를 충족시키는데 초점을 맞췄기 때문입니다. G5와 V10의 시도가 경쟁사와의 격차를 만들기 위해 성급한 판단의 결과였다면, 화면을 두개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V50 씽큐는 현실적인 폴더블의 대안이 되며 진정한 호응을 이끌어냈습니다. 

5G 출시와 동시에 'LG V50 씽큐'가 연착륙에 성공하며 돌파구가 마련된 것입니다. 지난 7월 LG전자는 2분기 실적 발표 이후 열린 컨퍼런스 콜에서 "상반기 전체 5G 스마트폰 판매량인 130만대 중에서 (LG의) 점유율은 약 20% 수준"이라며 "하반기에도 새 듀얼스크린이 적용된 5G 스마트폰 신제품을 통해 매출 모멘텀을 유지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장밋빛 미래도 현실로 다가오는 상황입니다. 모바일 공룡 가운데 하나인 애플이 5G가 적용된 아이폰의 출시를 내년으로 미뤘기 때문입니다. LG전자는 북미시장에 보급형 5G모델인 Mass 5G를 출시해 승부를 본다는 방침입니다. 연달아 실패를 맛봤던 새로운 라인업의 추가 전략이 이번에는 통할지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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