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카피한 야심작…그리고 감자 30톤

2019-12-20 16:22:14

- 정용진 야심작 줄줄이 실패…벤치마킹은 없었다

[프라임경제] "한번 힘 써 보겠다"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시원한 한 마디가 최근 화제를 모았다. 한 방송에서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의 못생긴 감자 매입요구에 이같은 답변을 내놓은 것이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정 부회장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감자옹심이 사진과 함께 "못난이 감자로 전 식구가 감자옹심이를 해 먹었다"고 적었다. 전화 한 통화에 감자 30톤을 매입해 버린 결정이 무책임한 리더로 인식되지 않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사실 이전부터 정 회장의 독특한 행보는 대중의 관심을 모았다. 인문학 보급을 위해 앞장 서기도 하고, 위스키와 피트니스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는 걸 대중에게 보여주는 데 망설임이 없다.

감자옹심이 뿐 아니라 프랑스 가정식 '비프부르기뇽'과 으깬 감자를 슈 모양으로 튀겨낸 '폼도핀' 등 이름도 생소한 요리를 직접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테슬라 모델 X의 국내 1호차 오너가 되거나 고가의 카메라 구입을 인증하기도 했다.

이렇다 보니 신세계그룹의 리더이자 범삼성가의 일원으로 모든 걸 다 가진 정 부회장은 재벌답지 않은 수더분한 말투와 결단력, 인스타그램을 사용한 친근한 접근방식 등 수수한 매력을 풍기는데 여념이 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고종사촌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사생활이나 관심사를 공개적으로 나타내지 않는 것과는 정 반대의 행보라는 평가다.

정 부회장의 이런 행보는 신세계그룹의 마케팅에서도 종종 사용돼 왔다. 이마트24의 무인화점포 도입에 앞서 시범운영 단계라는 사실을 가장 널리 알린 인물이 바로 정 부회장이다.

2018년 3월 정 부회장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셀프계산대로 보이는 기계 앞에서 직접 이를 작동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게시했다. 

당시에는 신용카드로 본인인증을 거치고 물건을 고른 뒤 셀프계산대에서 계산을 한 뒤 스스로 결제하는 방식의 무인점포가 시범운영되던 시절이다. 1년여가 지난 9월 신세계그룹 계열사인 신세계아이앤씨는 아마존의 무인 매장인 '아마존고(Amazon Go)'와 같이 매장 내 설치된 카메라와 센서(Sensor)를 활용해 고객의 쇼핑 동선을 추적하고 상품 정보를 인식하는 방식의 자동결제 셀프(Self)매장을 개점했다.

양 매장의 물리적인 차이는 어플리케이션, 그리고 밴딩머신 존이다. 아마존고는 입장시의 인증과 영수증발급을 목적으로 한다. 반면 이마트24의 무인점포는 SSG페이 또는 이마트24 앱(APP)을 통해 발급된 입장 QR코드를 사용해 입장한다. 또 이마트24 매장에 아마존고에 없는 스마트 자판기를 도입한 것도 다른 부분이다. 

시애틀 아마존고 매장과 이마트24 매장을 방문해 경험한 결과는 비슷하다. 입장해서 고르고 나온 뒤 결재내역을 확인하는 단순한 과정안에 구매의 모든 단계가 담겨있다. 동시 입장가능 인원이나 오작동에 대한 보고, 어플리케이션 반영 속도 차이는 조금 있지만 신세계아이앤씨의 기술력이 아마존고가 4년 전에 이룬 결과를 비슷하게 만들어 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투자대비 효율을 따져보면 성과의 격차는 천지차이가 될 전망이다. 신세계아이앤씨 관계자는 "향후 이마트24의 무인점포 확장은 전혀 계획하고 있지 않다"며 "B2B(기업대 기업) 측면에서 리테일테크를 판매하기 위해 만들어 낸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아마존은 아마존고의 매장을 미국 전역에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무엇보다도 편의점 치킨게임에 의욕적으로 뛰어든 신세계가, 지금까지 이뤄낸 리테일테크를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기존 매장의 무인화 전환과 향후 무인점포 확대의 방안이다. 

무인점포 개설 비용이 높기 때문에 직영점의 비중이 늘어 신세계의 부담도 커질테지만, 투자 회수를 극대화 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예시다. 심지어 신세계아이앤씨는 "2019년부터 셀프매장 구축을 위한 전담 조직을 구성해 기술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영의 기본은 수요와 공급의 논리다. 사업체를 늘리는 기본적인 이유는 본사와의 시너지를 기대하는데 있다. 마침 신세계그룹은 신세계아이앤씨가 개발한 리테일테크의 개발이 시너지를 낼 여지가 충분한 상황. 그럼에도 '고용 감소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과 '시스템 설치 비용에 대한 부담' 등을 이유로 신세계는 도입을 꺼린다. 

대신 B2B로 눈을 돌리고 있다. 리테일테크를 사용해 줄 유통 B2B 시장에서 고부가가치를 가진 무인화점포 수준의 리테일테크를 수요로 할 업체는 대부분 경쟁사다. 신세계는 쉬운 셈법으로 계산하기 어려운 투자 회수 방안을 찾고 있다.

더욱이 막상 아마존고 매장을 경험하고 나니 이제 시범운영을 시작한 이마트24의 무인화점포가 얼마나 늦은 건지 체감할 수 있었다. 현지에선 일상이 된지 오래였다. 운영사 입장에선 누적된 오작동 보고에 대한 경우의 수가 다를 것이며, 이를 통한 개선 방안도 다를 수 밖에 없다. 

신세계와 경쟁하는 경쟁업체가 레쥬메를 따진다면 이제 막 시작한 단계의 신세계아이앤씨의 무인화점포 리테일테크와 4년 앞선 경험치를 누적한 아마존고를 비교할 때 어느 쪽에 많은 점수를 줄 지는 얼추 답이 나온 문제다.

물론 국내에서의 영향력이 반영된다면 신세계아이앤씨를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대백화점은 아마존을 선택했다. 정 부회장이 무인화점포에 대한 관심을 인스타그램에 올린지 얼마 지나지 않아 현대백화점은 여의도 파크원에 들어설 매장에 아마존고의 핵심기술을 적용한 첨단매장을 구성하기로 했다.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은, 이마트24 무인화점포도 정 부회장의 야심작 시리즈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이다. 더 큰 문제는 정 부회장의 야심작 시리즈다. 본질적인 장점을 차용해 현지화와 최적화를 추구하는 벤치마킹이 아니라 껍데기만 베낀 야심작 남발이 정 부회장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양산하는 주요 원인이다. 

정 부회장을 전면에 내세우기 위한 그룹 차원의 홍보는 매번 유사한 패턴으로 진행됐다. 정 부회장 본인이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추측 가능한 정보를 보여준 뒤, 신사업을 시작한다. 그리고 현실화 시키기 위해 제공된 보도자료가 기사화 되는 과정에선 매번 '정용진의 야심작 OOO'으로 가공돼 왔다. 이런 보도에 대해 신세계그룹도 크게 정정하려 하지 않아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암묵적 동의 아래 정 부회장을 마케팅 목적으로 소비해 온 상황. 자신을 드러내는데 거리낌이 없는 정 부회장의 성향과 잘 어울리는 방식이다. 그렇다 보니 신세계의 신규사업은 늘 큰 관심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정 부회장의 이름이 소비된 신세계의 사업분야는 '이마트24', '트레이더스', '삐에로쑈핑', '일렉트로마트', '노브랜드', '부츠', '레스케이프 호텔' 등 열거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많고 다양했다.

문제는 정 부회장의 이미지를 소비한 마케팅의 결과가 나쁜 상황이다. 공통적인 지적은 배끼기에 집중됐다. 트레이더스에서 삐에로쑈핑까지. 전부 외국의 성공한 브랜드를 따라했다는 지적을 피하지 못했다. 

이런 화살은 방향이 정 부회장을 향하더라도 신세계 입장에선 손을 쓰기가 어렵다. "야심작이라더니 그냥 싹 다 배낀 거네" 같은 표현이다. 아마존고를 따라한 이마트24의 무인화점포에 대해서는 늦은 기술력과 확장성의 제한 등을 이유로 더욱 강도높은 비판도 충분해 보인다. 

삐에로쑈핑과 노브랜드를 예로 들면 정 부회장의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소비하는 사례가 신세계그룹에 미치는 악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삐에로쑈핑은 일본 '돈키호테'를 벤치마킹 했다. 정신없는 매장 컨셉과 먹는 것부터 입는 것, 전자제품, 명품, 성인용품에 이르기까지 많은 수의 제품을 판매하며 저렴한 가격을 표방한다. 삐에로쑈핑 매장과 꽤나 유사한 컨셉트다.  

하지만 신세계는 삐에로쑈핑과의 결정적인 차이를 극복하지 못했다. 원인으로 경영진의 오판을 지목하는 것을 문제삼기는 어려워 보인다. 야심은 그득했으나 현실이 반영되지 않았다. 현재 8개 점포 중 3개의 점포가 문을 닫거나 폐점을 검토 중이다.

삐에로쑈핑은 돈키호테와 달리 온라인보다 저렴한 오프라인 매장이 되지 못했다. 돈키호테가 판매 제품과 제품의 가격 결정권을 지점장에게 준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필요에 따른 가격 조정을 통해 마진을 조율해 구매율을 높이는 전략적 승부를 현장에서 결정하도록 한 것. 

반면, 삐에로쑈핑은 도입 당시부터 신세계백화점, SSG닷컴, 이마트, 일렉트로마트, 부츠 등 보유하고 있는 다른 채널과 가격 차이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컨셉트에 맞는 경영전략이 도입하지 못하는 환경에서 끼워맞추려 했던 것이다. 

더구나 정 부회장은 지난해 3월 기자들과 만나 "1년 동안 모든 걸 쏟아부어 준비했다"고 말했다. 결과를 기반으로 정 부회장은 또 다시 손해보는 방향으로 소비됐다. 1년 동안 모든 걸 쏟아부어서 실패한 카피를 만들어 냈냐는 소리는 당연하다.

노브랜드도 문제는 다르나 결과는 비슷해 보인다. 캐나다 최대 유통업체인 로블로(Loblaw)의 '노 네임'과 꼭 닮은 노브랜드를 향한 시선도 고을 리 없다. 캐나다 언론의 의혹 제기에 대해 신세계가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자 화살은 정 부회장을 향했다. 더불어 이마트24 가맹점주들의 거센 반발도 터졌다. 

신세계는 노 네임과의 유사성에 대해 '벤치마킹'이라고 설명했고, 정 부회장은 지난해 3월 신세계그룹 채용박람회에서 이마트24와 노브랜드 전문점의 근접출점 문제를 놓고 "뼈아픈 실책"이라고 말했다. 정 부회장이 직접 인정해 버리니 또 다시 이미지 손실은 발생했다.

이마트24의 무인점포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기술시장을 개척하고자 아마존고를 표방했다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아마존은 아마존고의 확장을 기치로 내걸었다. 또 인건비를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도 숨기려 들지 않았다. 전면에서 아마존고를 만들어낸 기술이 아마존의 수익으로 직접 이어지는 구조화를 추진하는 것이다. 

단지 B2B시장에 기술을 보여주기 위해 아마존고를 흉내낸 점포를 만들 정도로 신세계의 재정은 넉넉하지 못하다. 그간 정 부회장을 지지해온 재원인 이마트도 실적악화가 시작됐다. 

남은 투자여력은 스타필드에 집중될 방침이니, 리테일테크의 혁신적인 기술개발도 속도가 늦춰질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재정이 넉넉한 아마존은 아마존고의 확장으로 신세계아이앤씨와의 격차를 벌릴 것이다. 

이미 정 부회장에 대한 평가도 갈리기 시작했다. 본질을 현지화하는 벤치마킹과 껍데기만 따라하는 '카피'의 구분이 모호하다는 부정적 평가는 온라인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감자 30톤을 사서 일부 시민들의 호응을 받았을까? 또 다시 긍정적 이미지를 배포하려는 의도로 해석되는 원인은 정 부회장의 행보에 있다는 생각이든다. 

되려 적자상태의 이마트가 상품성이 낮은 감자를 품질조차 검증하지 않고, 부회장의 친목이라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매입했다는 사실만으로 신세계를 우려스럽게 바라보는 시선은 더욱 어둡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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