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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오늘] 혼인빙자간음죄 첫 무죄 판결, 역사 속으로 사라진 법은?

 

양민호 기자 | ymh@newsprime.co.kr | 2020.01.01 09:14:33
[프라임경제] 2020년 경자년(庚子年) 새해가 밝았습니다. 해마다 연초가 되면 그 해에 바뀌는 갖가지 제도들을 파악하느라 분주합니다. 하지만 매년 바뀌진 않지만, 그 해 이슈가 되며 폐지되거나 신규로 생기는 법률들이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하는데요.

10년 전 오늘인 2010년 1월1일을 장식한 여러 뉴스 중 눈에 띄는 것 중에 하나는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한 것이었는데요. 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30부(이민영 부장판사)는 혼인빙자간음죄와 사기, 폭행 등으로 징역 3년6월의 형이 확정돼 3년4개월간 수용돼 있던 박모(31)씨에 대한 재심에서 사기·폭행죄만 인정해 징역 3년을 선고하고 형집행정지결정을 내렸죠.

이는 혼인빙자간음죄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온 이후 이에 대한 재심사건에서 첫 무죄 판결이 나온 것으로 집중을 받았습니다. 

앞서 헌재는 2009년 11월26일 "혼인빙자간음 법률 조항이 남녀평등에 반할 뿐 아니라 여성을 보호한다는 핑계로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을 부인한다"며 재판관 6 대 3의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는데요. 피고인인 박씨는 위헌 결정이 나온 직후인 2019년 12월2일 재심을 신청했고 이를 법원이 받아들인 것이죠.

혼인빙자간음죄는 '혼인을 빙자하거나 기타 위계로써 음행의 상습없는 부녀를 기망해 간음한 자에 대해 처벌하는 죄'로 형법 304조에 규정되어 있던 법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혼인을 빙자해 상대방을 속이는 행위를 일컫는데요. 

하지만 성 개방 의식이 확산돼 개인들이 스스로 알아서 결정할 성적 사생활을 국가가 법률로 통제하는 것은 문제라는 인식이 커지면서 혼인빙자간음죄는 점차 존재 의미를 잃어왔습니다.

그렇다면 혼인빙자간음죄가 사라졌으니 이와 유사한 범죄를 용인해준다는 걸까요? 이에 대해 일부 법률계에선 사기죄로 기소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는데요. 하지만 사기죄란 '상대방을 기망해 피기망자가 착오에 빠져 재물을 교부받거나 재산상의 이익 등을 취한 경우'에 성립하는 범죄이므로 재산상 이득에 이성과의 성행위가 포섭되는지에 대해선 계속 논란이 되고 있죠. 

이처럼 시대가 바뀌며 이제 역사 속에서나 볼 수 있는 법들은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요. 혼인빙자간음죄 폐지 이후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바로 간통죄 폐지일 것입니다. 간통죄의 경우, 혼인빙자간음죄가 사라진 5년 후인 2015년 2월26일 헌법재판소 위헌결정으로 인해 효력이 상실됐고 2016년 1월6일 형법이 개정되며 정식으로 사라졌는데요. 

간통죄는 혼인빙자간음죄와 함께 뜨거운 논란이 지속되기도 했습니다. '불륜' '외도' '바람 핀다' 등으로 잘 알려진 간통의 경우, 아주 오래 전부터 종교와 문화를 막론하고 악행으로써 처벌해오던 범죄였죠. 이는 현대에도 와서도 '사람의 탈을 쓰고 해서는 안 될 일'라고 여기는 통념으로 이어졌는데요.

간통죄는 존치론과 폐지론이 계속 싸워왔으며,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이 내려지기 전 까지 총 5번의 심판대에 오르기도 할 만큼 첨예하게 대립해왔던 사안입니다. 또한 헌재의 위헌 결정 이후, 기혼자를 대상으로 하는 만남 어플이 생겨나고 있다는 공중파 뉴스가 나오기도 했으며 사회적으로 일시적인 혼돈이 생겨나는 부작용도 있었죠.

하지만 '간통죄 폐지'가 '간통 합법화'는 아닙니다. '비범죄화' 됐을 뿐이죠. 간통죄 폐지에도 불구하고 민사상으로 간통은 여전히 불법행위이고, 이는 배우자에 대한 위자료 배상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는 의미죠. 즉, 감옥은 안 가지만, 위자료 지불 사유로 인정되는 것이죠.

가장 최근에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이 이슈가 된 사안은 바로 낙태죄일 것입니다. 지난 2019년 4월 헌법재판소는 7년 전 위헌 결정을 뒤집고 낙태를 처벌하는 현행 법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큰 이슈가 됐는데요. 

이를 통해 형법 269조의 '임신한 여성이 낙태한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한다'는 자기낙태죄는 1953년 형법 제정 66년 만에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됐죠. 또한 '의사가 임신한 여성의 동의로 낙태 시술을 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한다'는 형법 270조 동의낙태죄 조항도 재판관 9대7로 위헌이라고 판단했는데요.

헌재는 결정문을 통해 "낙태죄는 태아 생명권이라는 공익에만 절대적 우위를 부여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며"자기결정권이 보장되려면 임신한 여성이 임신 유지와 출산 여부에 관해 전인적 결정을 하고 결정을 위한 충분한 시간이 확보돼야 한다"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엄연한 법치국가(法治國家)입니다. 법치국가는 국민의 의사에 따라 만든 법률에 의해 다스려지는 나라입니다. 때문에 시대가 지나고 사회적 통념이 변화하면서 기존에 존재하던 법이 국민 정서와 많이 다르다면 변화하고 진화하기 마련이죠. 더 이상 '악 법도 법'인 시대가 아닌 것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요.

앞으로 10년 후, 또 어떠한 법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새롭게 생겨날지,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화해 갈지 지켜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일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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