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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오늘] '30초의 비극' 아이티 대지진…'10년의 여파' 반정부 민심

30만명 희생, 콜레라 창궐…회복 여전히 더뎌

백승은 기자 | bse@newsprime.co.kr | 2020.01.17 08:59:36
[프라임경제] 10년 전 오늘인 2010년1월17일, 한국 정부는 대지진으로 참사가 일어난 아이티에 추가 구호지원을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대지진으로 20만명 이상이 사망한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한 쓰레기 집하장에서 쓸만한 물건을 찾는 한 남성. ⓒ 연합뉴스

당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한 달 내로 200만명에게 비상식량을 매일 제공하려 한다. 당장 5억5000만달러 정도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 아이티의 모습은 어떨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이티는 아직 비극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못 한 상황입니다. 

2018년 기준 아이티의 국내총생산(GDP)은 96억5808만달러로, 한국과 비교하면 약 0.56%에 불과합니다. 또 2019년 세계기아지수(GHI)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 영양결핍 인구 비율은 49.3%로, 세계에서 세번째로 높습니다.

전 세계를 안타깝게 한 아이티 대지진이 지나간 후, 아이티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비극의 굴레' 약 30만명 사망, 연방정부 건물 붕괴, 콜레라 창궐

중앙아메리카의 카리브해 연안에 위치한 섬나라인 아이티의 공식 명칭은 아이티공화국으로, 1804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는 되려 식민지배에 대한 막대한 배상금을 요구했고, 이 때문에 아이티는 긴 시간 동안 경제·정치적 혼란을 겪죠. 

1947년, 배상금은 상환됐지만 이후 계속된 쿠데타와 권력 다툼, 파업이 지속됩니다. 1957년 정권을 잡은 프랑수아 뒤발리에 대통령의 독재 정권으로 아이티는 다시 긴 암흑의 시간을 겪어야 했습니다.

또 아이티는 대지진 이전에도 자연재해에 의한 피해를 받곤 했는데요. 대지진이 일어나기 불과 2년 전인 2008년에는 허리케인으로 약 800명의 희생자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지진은 현지 시각 2010년 1월12일 수도인 포르토프랭스 인근 지표면에서 일어났습니다. 규모 7.0으로 약30초간 지속됐고, 이후로도 약 30차례 이상의 여진이 찾아와 주민들을 공포에 빠뜨렸죠.

지금까지 추정된 사망자는 약 30만명입니다. 또 대통령궁과 국회의사당 등 15개 연방정부 건물 중 13개가 무너졌고, 인근 교도소가 붕괴돼 죄수들이 대거 탈출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죠. 

참사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같은 해 10월21일, 아이티 보건부는 콜레라 전염병 창궐을 공식 확인했습니다. 이후 아이티 10개주 전역에 콜레라 피해가 확산, 5년 간 73만6000명이 감염됐고 사망자 또한 8800명에 달했습니다.

◆지원 활동에도 역부족…2017년부터 반정부 시위 이어져

대지진 이후 많은 국가에서 구원의 손길이 이어졌습니다. 한국 역시 약 260만불의 긴급구호 사업과 1000만불 규모의 중강기 재건·복구 사업에 착수했습니다. 또 단비부대를 파견해 아이티의 재건 활동을 펼쳤습니다.

그러나 아이티의 상황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2010년 경제성장률 -5.5%에서 다음해인 2011년 5.5%로 소폭 상승했지만, 2015년 이후 줄곧 1%대를 보이고 있는데요. 2018년 역시 1.5%에 그쳤습니다.

허리케인 '매슈'에 의한 피해 현장. ⓒ 연합뉴스

설상가상으로 2016년 9월 초강력 허리케인 매슈가 아이티에 상륙, 877명이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는 2015년 아이티 GDP의 32%에 해당하는 피해를 입히죠. 

지난해에는 아이티에서 13년간 주둔했던 유엔 평화유지군이 아이티의 어린 여성들을 성적으로 착취한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는데요. 새빈 리 영국 버밍엄대 교수연구팀이 현지인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 이들은 10명 중 1명 꼴로 평화유지군에 의한 임신과 출산을 경험했습니다. 대가를 주고 성관계를 가지거나, 성폭행을 당했다는 증언까지 나왔죠. 

아이티의 비극은 단순한 자연재해 만의 탓은 아닙니다.

아이티 대지진 이후 한 달이 지난 뒤, 약 500배 강한 진도 8.8의 지진이 칠레를 덮쳤지만 사망자는 그보다 적은 500여명에 그쳤습니다. 칠레는 지진에 대비해 건물이 무너지지 않도록 미리 건축법을 제정했지만, 당시 아이티는 어떠한 건축법도 없었습니다. 아이티의 부실한 사회 인프라를 여실히 보여주죠.

무능한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폭발해 2017년부터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난해는 9월부터 대규모 반정부 시위의 여파로 휴교와 휴업이 이어졌고, 수만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행진을 이어갔습니다.

지난 12일, 아이티 대지진 10주기 행사에 참여한 조브넬 모이즈 아이티 대통령이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공동묘지를 방문하던 중 반정부 시위대가 찾아와 충돌을 벌이기도 했죠.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아이티에게 봄은 찾아올 수 있을까요? 2019년 10월18일, 유엔 안보리는 향후 15년간 아이티의 정치적 안정과 거버넌스를 강화하는 작업을 시작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유엔의 이런 결정이 지금 이 순간까지도 고통받고 있을 아이티 이재민들과 난민들에게 현실적인 도움이 될 수 있길 간절히 바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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