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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오늘] '황제노역' 허재호와 '향판'

'법 집행의 형평성'에 대한 국민적 여론 형성

강경식 기자 | kks@newsprime.co.kr | 2020.01.22 14:18:01
[프라임경제] 오늘은 국민들에게 '황제노역'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준 대주그룹 허재호 전 회장에 대한 법원 판결을 짚어보려 합니다.

허 회장의 황제노역 사건은 재벌 기업인과 법조인의 유착 의혹으로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국민들에게 되새김질 하게 만들며 대중적 상실감을 불러왔고, 훗날 법조계에 대표적인 '향판(鄕判)' 폐해로 기록된 사건입니다.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이 2014년 4월4일 광주지방검찰청 앞에서 머리 숙여 사과하는 모습. ⓒ 연합뉴스


 
2010년 1월21일 당시 광주고법 소속 형사1부의 장병우 부장판사는 500억원대 법인세 등을 포탈하고 회삿돈 100억원가량을 횡령한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 등)로 기소된 허재호 대주그룹 전 회장에 대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54억원을 선고했습니다.

당시 법조계는세금을 빼돌리면 포탈 세액의 2배 이상~5배 이하의 벌금을 물리도록하는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8조(조세 포탈의 가중처벌)'이 적용돼 최소 1016억원의 벌금을 물게 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그런데 1심 재판부는 2008년 12월 허 전 회장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508억원을 선고했고, 2010년 오늘 항소심에서 이 마저도 절반으로 줄어든 254억원의 벌금형이 선고됐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2014년 3월 검찰의 허 전 회장에 대한 비자금 조성과 탈세 의혹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앞선 재판의 결과로 벌금형에 처해진 허 전 회장이 벌금을 내지 않고 버티자 광주고법에서 '환형 유치' 제도를 적용해 준 사실과 그로 인해 일당 5억원의 황제노역이 법원의 인정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이 세상에 공개됐습니다. 

당시 여론에 의미를 해석하자면 '법 집행의 형평성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형성된 것입니다. 

이어 허 전 회장의 은닉 재산도 속속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밝혀진 은닉 재산들은 환형유치를 인정해준 판사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졌습니다. 

결국 장 부장판사는 광주지방법원장 자리를 내려놓고 물러났습니다. 

또 광주지검은 허 전 회장에 대한 노역을 중단하고 강제집행을 결정했습니다. 

사실상 앞선 법원의 판단만 놓고보면 허 전회장은 남은 224억원에 대한 지불여력이 충분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허 전회장에게는 벌금외에도 국세 136억원, 지방세 24억원, 금융권 부채 233억원을 갚아야 하는 상황이었고, 채권자들과 지자체의 근저당이 먼저 잡혀 있던지라 강제집행해봐야 빈주머니를 터는 것에 그칠 것이라는 추측이 지배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미디어의 활약으로 은닉된 허 전 회장의 재산 내지는 허 전 회장의 불법행위로 조성된 차명 자산이 계속해서 발굴되기 시작하자 강제집행을 천명한 검찰에게는 이를 확실하게 따져 징수해야 하는 의무에 무게가 실리게 된 것이지요. 

일각에선 허 전 회장이 두손을 들게 된 계기가 당시 측근들의 차명으로 은닉해온 재산이 계속해서 보도를 통해 드러나는 것에 대한 부담이었을 것으로 알려졌졌습니다. 

또 밝혀진 차명 재산은 빙산에 일각에 불과하다는 여론도 지배적이었습니다.

2010년 4월4일 결국 허 전 회장은 광주지검을 찾고 사과문과 벌금완납계획을 밝히며 항복했습니다. 

급한불을 끄기 위해 백기를 들고 나타났던 허 회장의 바람과 달리 여론은 계속해서 불타고 있었습니다. 차명 재산 외에도 법조계 로비 의혹이 계속해서 터져나왔기 때문입니다.

정점은 MBC의 PD수첩이 찍었습니다. PD수첩은 허 전 회장의 호화스러운 뉴질랜드 도피생활을 조명하며, 이런 생활의 기반이 은닉 재산이라는 추측을 확신으로 바꿔줬습니다. 

또한 PD수첩은 허 전 회장의 선친이 목포지방법원장을 지낸 판사 출신이라는 것을 비롯해 법무부 교정협의회 중앙회장을 역임한 여동생과 전현직 판사들의 골프모임인 법구회의 총무를 지낸 남동생, 서울동부지청장을 지낸 검사 출신 매제, 당시 광주지법 판사였던 사위까지 법조계에 혈연으로 둘러쌓여 있었다는 사실도 공개했습니다. 

물론 허 전 회장을 둘러싼 두터운 법조 혈맥이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환형유치를 이끌어 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허 전회장이 동원할 수 있는 법조 인맥이 보통사람들보다 두텁고 끈끈하기 때문에 일당 5억 원의 노역이 인정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은 타당함에 모자람이 없습니다. 

마침 지난해 한겨레는 허 전 회장과 관련한 의미있는 영상을 보도했습니다. 허 전회장이 '법'을 바라보는 태도를 짐작케 하는 영상이었습니다. 

허 전 회장은 2015년 7월 검찰이 국세청 조세포탈 고발 사건만 참고인 중지 결정을 하고 고소·고발 사건 6건은 무혐의 결정을 내리자 뉴질랜드로 출국해 아직 귀국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광주지검 특수부는 지난해 7월 참고인 중지 결정을 했던 국세청 고발 조세포탈 사건을 뒤늦게 수사해 허 전 회장을 기소했습니다. 

즉, 귀국해서 검찰 조사가 예정된 상황이죠. 영상 속 허 전 회장은 마치 재판에 출석할 때 환자처럼 보이려고 표정 연습을 하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이에 검찰조사와 재판을 앞두고 건강한 평소 모습을 감추려 한다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물론 영상공개 직전의 보도에서도 고급 요트를 타고 바다낚시를 즐기거나 골프를 치는 등 호화 생활의 정황은 계속해서 노출됐습니다. 

이에 대해 허 전 회장 측은 '심장병 수술을 세 차례나 받았고, 의사 진단서를 재판부에 제출했습니다. 지금도 날씨가 차면 혈압이 올라갈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다'는 입장을 냈습니다. 

행보의 방향을 정한 검찰과 달리, 10년 전부터 광주법조계는 허 전 회장의 주장을 잘 인정해 주는 것 같습니다. 허 전 회장은 또 다른 재판이 진행중이었는데요. 

광주지법 형사합의11부(재판장 송각엽)는 지난 8월 양도세 5억원을 포탈한 혐의로 기소된 허 전 회장이 첫 공판기일을 연기해달라고 한 요청을 받아들여 줬습니다.

허 전 회장은 자신의 요청에 따라 10월로 밀려서 열린 첫 공판에도 불출석했고, 검사는 "허씨가 수사기관에도 출석하지 않았다. 재판을 한 차례 연기했음에도 이날 출석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출석을 보장할 수 없다"며 "범죄인 인도절차를 준비 중이다. 구속영장 발부를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앞서 재판연기와 관련해 광주지법 측은 "일반적으로 피고인이 재판에 나오지 않으면 구인영장 또는 구속영장 발부도 가능하다"고 밝혔습니다. 연기된 재판에도 허 전 회장은 출석하지 않았으니 '가능'의 조건은 충족한 셈이지요. 과연 허 전 회장이 광주지법에게 일반적인 사람으로 판단받는지 여부가 곧 밝혀질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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