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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누리의 교육놀이터] ① "대한민국 워킹맘을 응원해"

 

김누리 교사 | press@newsprime.co.kr | 2020.01.28 16:56:15

[프라임경제] 나는 19년차 현직 초등학교 교사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 부모님의 적당한 보살핌을 받고 그럭저럭 잘 살아왔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교사가 됐고, 결혼을 하고 아이 둘을 낳아 기르며 살고 있다.
 
내 인생을 되돌아보면, 가히 혁신적이라 할 정도로 삶의 변화가 강력하게 이뤄진 몇 개의 시기가 있었다. 그 중 가장 강력했던 것은 아무래도 아이가 태어난 이후 였던 것 같다.

아이가 태어난 순간 부터 내 인생의 80퍼센트 이상은 아이의 엄마이자 보호자로 살아야 했던 것 같다. 밤잠을 제대로 못자기가 일쑤였고, 생활비는 배로 들었다. 가끔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정말 내가 대신 아팠으면 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무엇보다 힘이 들었던 것은 출근을 하기 위해 어린이집을 보낼 때였다. 아이는 매일 아침 등원을 할 때, 한 번도 웃으며 '엄마, 안녕!'이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어린이집 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엄마가 떠나갈까 봐 손을 꼭 잡고 눈물을 글썽이던 아이였다. 선생님이 나오는 순간부터 울음을 터뜨렸다. 5분만이라도 더 어린이집 교실 앞에서 아이의 손을 잡고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나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머뭇거리는 순간 나는 또 지각이었다. 결국 선생님 손에 이끌려 발버둥치는 아이를 뒤로하고, 직장으로 가는 그 순간의 찢어지는 마음은 정말 겪어 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저 어린애를 떼어두고 이렇게 가야하는 건지.' 엉엉 울면서 출근을 하다보면, 눈에 띄는 엄마들이 보인다.

우아하게 유모차를 끌면서 가는 엄마, 커피숖에서 브런치를 기다리며 하하 호호 담소를 나누는 아기 엄마들. 그때만큼 그 엄마들이 부러운 적이 없었다. 출근 안 해도 되고, 아이에게만 집중하고 자신의 시간을 마음껏 누릴 수 있을 것 같은….

물론 그 나름의 애한과 고충이 있겠지만 적어도 아이와 생이별을 하고 엉엉 우는 그 순간의 나보다는 더 나을 것이리라.

시간이 흘렀다. 아이가 자랐고, 학교에 입학도 했다. 근무하느라 아이의 학교행사에 모두 다 참석을 할 수가 없어 아쉬움도 컸지만, 적어도 아이가 어릴 때만큼 가슴이 찢어지게 아프거나 눈물을 펑펑 쏟을 정도의 서러움은 잦아들었다. 

그리고 지금 나에게는 누구누구의 엄마라는 타이틀과 동시에 내 이름 석자를 아직도 불러주고, 인식해 주는 삶이 존재하고 있다. 내 인생의 50퍼센트는 아이 엄마, 또 50퍼센트는 나 김누리로 존재하게 된 것이다.

물론, 아이에게는 내가 미처 보살펴주지 못했던 아이만의 상처가 있을 수도 있다. "어린이집에서 엄마가 제일 늦게 와서 나는 아이들이 다가고 나면 혼자서 책을 읽으면서 엄마를 기다렸어. 선생님 모르게 책 한 번 보고, 시계 한 번 보고, 책 한 번 보고, 시계 한 번 보고 그랬어."

가끔씩 아무렇치 않게 두런 두런 건네는 이런 말들로 가슴이 먹먹해지곤 한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일장일단이 있다. 난 이제 당당히 내 아이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미안해. 엄마가 옆에 있지 못해서. 그 일로 슬프고 힘든 마음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너는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너만의 깨달음과 얻음이 있었을 거야. 엄마는 확신해."

나의 근무지는 나름 부촌이다. 비싼 아파트들로 둘러쌓여 있고, 삶의 질이 높다. 많은 엄마들이 대부분 한 두 명의 아이를 기르며 전업맘의 비율이 굉장히 높은 편이다.

어느 날 한 엄마가 상담을 신청했다. 그리고 머뭇머뭇거리다가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 저 교원이 되었어요."
"어머, 어머니. 임용고시 치신 거예요. 대단하시다."
"아뇨, 그 교원이 아니라, 회사에 취직했어요."

그 엄마는 작은 출판사를 다니다가 아이를 낳고 그만 뒀다고 한다. 경력 단절 8년 만에 학습지를 가르치는 회사에 취직해서 다시 자신의 이름을 달고 다시 워킹맘이 되기로 했다고 했다.

어렵게 상담을 신청한 이유는, 자신이 바빠지면 아이가 혹시 힘들지 않을까, 예전만큼 신경을 못 쓰게 돼 행여나 뒤처지지는 않을지 우려가 돼서였다. 핵심은 도와달라는 거였다.

나는 축하 인사와 더불어 응원의 메시지를 남겼다. 그 이후로 아이의 변화를 더 자세히 살펴보고, 보살펴 주려고 애를 썼다. 그런데 그런 나의 노력은 불필요한 것이었다.

아이는 별다른 차이 없이 씩씩하고 밝게 잘 자랐고, 눈에 띄는 건 오히려 학업 성취도가 굉장히 높아졌다. 그리고 종종 나에게 와서 엄마에 대한 자랑도 했다.

물론, 방과후 공개 수업이나 운동회 때 늘 뵙던 엄마의 얼굴 대신 할머니가 오긴 했지만 아이는 절대 슬퍼하거나 시무룩해 하지 않았다.

종업식을 앞두고, 그 엄마가 다시 한 번 찾아왔다. 몰라보게 세련된 모습을 하고 말투에도 자신감과 당당함이 베어있었다. 그 엄마의 모습에서 '누구누구의 어머니'와 동시에 어머니 자신의 이름 세 글자가 느껴졌다. 당당해 보였고, 자랑스러워 보였고, 뭉클했다.

그리고 느꼈던 건, 분명히 아이도 엄마의 이런 모습에서 나와 같은 자랑스러움을 느꼈을 거라는 확신이다. 아이에게 '엄마는 따뜻하고 좋은 엄마'와 동시에 '당당하고 멋있는 엄마'로 느껴지게 됐을 것이다.

워킹맘은 힘들다, 그리고 서럽다. 무엇보다 전업엄마보다 자녀에게 소홀해질 수 있다는 불안감과 죄책감을 많이 안고 산다. 

하지만, 교육 현장에서 매년 많은 아이들을 접하고 키우며, 또 두 아이의 엄마이자 워킹맘인 내가 봤을 때 '워킹맘 자녀의 불이익은 없다'라고 확신한다. 아주 어린 영아만 아니라면 엄마의 직업을 당당히 갖고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해 엄마 자신의 이름을 드높이길 추천드린다.

직업을 가지는 것을 권하면, 돌아오는 답변은 대동소이하다.

"경력단절이었던 엄마가 나서봤자 가정 부업이나 마트 캐셔, 급식실 도우미 같은 일 밖에 없더라고요. 그거 버느니 그냥 집에 있죠. 뭐."

하지만 돌아보면 엄마라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더 많다. 아이들의 학습을 관리하는 직업, 교육 관련 글을 쓰는 직업, 또는 방과후 강사 등 엄마만이 할 수 있는 아이에 대한 사랑과 끝없는 관심을 직업으로 풀 수 있는 방법들이 많다. 

게다가 교육 관련 업무는 내 아이의 교육에도 도움을 줄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고 말 하고 싶다.

이불 밖은 위험하지 않다. 이불 안 속의 포근함은 없지만, 뇌를 숨쉬게 하는 맑은 공기와 상큼한 새소리가 기다리고 있다. 대한민국의 모든 워킹맘 그리고 미래의 예비 워킹맘을 응원한다. 

김누리 초등학교 교사, 서울시교육청 영재교육원 강사, 교과서 집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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