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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유나의 거리, 정진우의 거리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20.02.16 16:07:33

[프라임경제] JTBC '유나의 거리'라는 드라마가 종편의 한계를 딛고  화제몰이를 한 적이 있다. 주인공 여성은 소매치기이고, 주변 등장 인물들도 노래방을 운영하는 퇴직 경찰부터 손씻고 콜라텍을 차린 전직 조직 폭력배와 그 후배에게 얹혀사는 전직 조폭, 폭력 남편으로부터 도망쳐 콜라텍에서 일하는 여성 등 내로라 할 게 없는 인물들 뿐인 드라마였다.

신데렐라 드라마가 될 배경은 전혀 없고, 그렇다고 캔디류의 여주인공이 부각되기에도 너무 조건이 좋지 않았다. 느와르물이 되기엔 범죄 관련 수준이 너무 선량해(?) 문제가 될 정도.

그럼에도 많은 관심을 모았던 이유가 무엇일까? 당시 드라마 마니아인 한 정치인은 자신의 SNS를 통해 "그 속엔 인생의 애환, 절망 그 속에서도 가지고 있는 꿈들이 나온다"면서 특히 "의리·선량함·공동체가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정진우 전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당대표 비서실장이 2014년 10월 남긴 이 SNS의 분석글처럼, 사람들은 어려운 상황 속에도 의리를 지키고 선량하게 살아가려 노력하는 이들의 스토리에 관심을 갖고 성원하는 법이다. 그래서 법꾸라지처럼 살아가는 문제적 거물들의 사회보다 전과자나 내세울 것 없는 인생들이라 해도 선량하게 어울려 공동체를 꾸려 살아가는 경우에 더 감정이입을 한다.

글을 썼던 드라마 마니아, 정 전 실장은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대학을 다닌 인물답지 않게 젊은 시절부터 '김대중 선거운동'을 하러 다녔다는 사람이다.

새정치국민회의 조직국·열린정책연구원 전략연구실 등 당이 모습을 바꾸는 여러 국면에서도 주요 조직을 지켜온 '산증인'이다. 민주통합당 부대변인 등을 거치면서 널리 말과 글을 뽐내기도 해 온 그는 드라마를 좋아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가 염두에 두고 매달려 온 지역구는 부산 북구·강서구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때 출마했던 지역구라 여기를 물려받은 정 전 실장은 대단히 감격해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여러 번 선거에서 떨어지고 또 어느 때엔 '공천 연대'라는 명분으로 후보 자리를 양보하기도 하면서 지역을 오래도록 누비면서 민심 다지기를 포기하지 않아 왔다.

매번 선거마다 고배를 들면서 생활이나 정치 활동이 윤택할 리 없다. 그러면서도 강서구 거리거리를 누비면서 그가 만나고 쌓아온 선량한 지역민들 사이에서 쌓아온 의리나 공동체 의식은 분명 값진 민주당의 자산일 터이다.

지난 15일 민주당 공천관리위원회가 4·15 총선 공천 43개 지역에 대한 2차 심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일부 지역의 전략선거구 지정을 전략공천관리위원회에 요청하기로 했다.

간단히 말해, 지역에서 현재 명함을 내밀고 있는 출마 희망자들로는 안 되니, 전략공천 필요성을 타진해 달라는 뜻이나 다름없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북구·강서구을이었다.

이 지역에는 얼마 전부터 국제금융 종사 경력을 가진 인물이 전략 공천될 것이라는 설이 돌았다. 하지만 일부 언론에서는 이에 의아해 하거나, 문제가 있다고 봤다. 해당 인물의 경우 '부산 연관성'을 찾는다면 모르겠지만 굳이 북구나 강서구에 가져다 붙일 인연의 고리를 찾기는 어려워 무리수라고도 지적했던 것.

하지만 결국 이번 15일 결정으로 굳이 왜 그런 수를 둬야 하는지 모호하다는 바로 그 방향으로 가닥이 잡히려는 모양이다. 그 이면에는 다시 차가운 바닥에 내팽개쳐진 정 전 실장이 있다. 

소매치기 여성도 인간성의 밑바닥까지 타락하지 않으면 나름대로 살아갈 공간과 공동체가 있다던 '유나의 거리'와 달리, 민주당은 '정진우의 거리'를 허락하지 않았다. 청와대 근무를 다녀온 몇 빼고는 평생 일선 당료로 살아온 인물들은 상당수 소외되는 게 당연한 세상이라는 징표다.

아무리 오래 당과 지역을 위해 헌신해도 경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외부에서 날아온 전문가 혹은 인재에게 밀려나는 게 당연하다는 것일까? 선거공학만이 판치는 민주당, '유나의 거리' 성공 이유를 모르는 민주당이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당을 자임하는 것처럼 웃기는 일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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