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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정치 1번지' 종로구 표심의 의미

 

김화평 기자 | khp@newsprime.co.kr | 2020.02.16 23:17:31

[프라임경제] 가수 설운도의 곡 '나침반' 가사인 '종로로 갈까요, 명동으로 갈까요, 차라리 청량리로 떠날까요, (중략) 을지로 길모퉁이에 나는 서 있네'처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고심 끝에 종로구를 선택했다.

수도권 험지 이야기가 나온 지도 한참 만에 결국 가장 비중 있는 지역구라는 종로를 정치 인생의 승부처로 택한 것이다. 종로는 약 600년 서울 역사 중에서도 가장 의미가 큰 곳으로 꼽히며 일명 '정치 1번지'로 불린다.

종로는 이윤영·장면·김두한·유진오·정일형·정대철 등 거물 정치인을 배출한 곳이다. 특히 우리나라 대표 여성 정치인이자 야당 지도자로 활약한 박순천 여사는 2대 총선에서 종로갑 의원으로 당선된 후 승승장구했다.

또한 윤보선·노무현·이명박 등 여러 역대 대통령들이 한때 지역구로 삼았던 곳이기도 하다. 청와대가 위치한 종로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면 지역구 의석을 차지하는 것을 넘어 차기 대권주자라는 타이틀까지 얻게 된다는 호사가들의 이야기가 그럴 듯하다.

왜 종로를 '정치 1번지'라고 부를까. 정말 저렇게 청와대를 품은 지역구이기 때문일까. 그 역사는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할 수 있다. 조선이 건국됐을 때부터 경복궁 앞 큰길이자 서울 사대문 안 심장부에 위치한 종로는 지리상 정치·문화·상업의 중심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종로라는 이름도 아침·저녁으로 도성이 열리고 닫히는 시간을 다루던 '종루(鍾樓)'에서 유래됐다고 하니, 정보와 그 흐름의 중요성에 가장 민감한 곳이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가 펴낸 '시민을 위한 서울 역사 2000년'에 따르면 조선시대 서울에는 최고통치자인 왕이 머무는 궁궐을 비롯해 육조(이조·호조·예조·병조·형조·공조)와 각종 관청들이 모여 있었다.

그런 한편 육의전(나라에 물건을 대는 곳)을 비롯해 다양한 상점들이 밀집한 상업 중심지기도 했다. 이곳을 '육조거리'라고 불렀다. 육조거리는 왕궁으로 통하는 특별한 길이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여론의 집합지가 되는 곳이었다. 또한 유생들이 모여 왕에게 상소하는 장소로도 이용되며 공공장소로서의 역할도 감당했다.

한편 북측에는 관청과 고급주택가가 형성됐고, 남측 남산의 북사면에는 높으신 분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서민들이 살았다.

이같이 종로는 자연스럽게 조선시대 '정치 1번지'로 성장했다. 정치인들만 모여서가 아니라 조선의 여러 분야 오피니언 리더들, 고관부터 갖가지 낮은 일을 하던 이들까지 어우러졌던 셈이다. 일제시대에도 국권과 상업 중심 기능은 일본인들에게 뺏겼을지언정 조선인 중심 상권이라는 자부심이 여전했다.

종로의 다양한 투표 성향도 여전히 민감하고 중요한 '정치 1번지' 자격을 구성한다. 부촌이 밀집한 서부지역(평창·가회·부암동 등)은 보수 성향을, 동부지역(창신·숭인·혜화동 등)은 진보 성향을 띤다.

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도 종로에서 처음 만났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종로구로 출마한 것이다. 당시 이명박 신한국당 후보가 총 투표수 9만 9365명 중 4만230표로 41%를 차지하며 당선됐다. 함께 출마했던 이종찬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는 3만2918표로 33.55%, 노무현 민주당 후보는 1만7330표로 득표율 17.66%에 그쳤다.

노 전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결과는 참담했다. 2등도 아니고 3등으로 떨어졌다. 이명박 후보가 승리했다. 내가 대통령이 되는 것도, 그가 그다음 대통령이 되는 것도 당시에는 상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 MB가 떠난 자리에서 치러진 재보선에서 노 전 대통령이 결국 의원직을 쟁취했다.

이명박과 노무현, 사실 이들은 유명인이었지만 정치 경력 자체가 짧거나 다른 지역에서 의원을 했던 이들이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종로의 묘한 정치 성향의 시소게임 덕에 바로미터 역할과 열린 성향을 보였다고 할 수 있다.

종로는 전국 표심을 대변하는 듯하면서도 꼭 거기에만 그치지 않았다. 거물이 될 만한 재목이 찾아와 열정적으로 호소하는 경우, 이미 물먹은 인물이라도 또 한 번 와신상담한 경우에 기꺼이 선택하기도 한 것이다.

지금 종로는 일찌감치 종로 출마를 예고했던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와 황교안 예비후보의 빅매치에 긴장감이 넘친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선후보 지지도 1·2위를 달리는 두 예비후보는 국무총리 재직 시절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거주했고, 모두 종로에서 처음 출마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 모두에게 그런 종로의 의미는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는 숙제이자 꼭 넘고픈 허들이다. 두 사람 모두 진정 정치인으로서 성장할 기회다.

종로구민들의 선택, 종로가 택한 2020년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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