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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신천지 전체명단 영장" 발언, '마패영장' 인권의식 논란

노태우 비자금 캐던 방식, 정의 구현 위해 법적 정의 침해…박근혜 시절에도 '비판대상'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20.02.24 11:10:12

박원순 서울시장이 신천지 관련 강경 발언을 내놔 주목된다. 사진은 순천시 국가정원을 찾은 당시의 모습. ⓒ 순천시

[프라임경제] 우한 폐렴 창궐 사태와 관련해, 압수수색을 통해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신천지) 신도 명단을 확보해야 한다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주장이 우려를 낳고 있다.

박 시장은 23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신천지 특성상 그들이 제공한 명단에만 의존할 수 없다"고 일갈했다. 그는 "정부는 신천지에 대한 압수수색 등 강제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한시라도 빨리 전수조사를 위한 신도 명단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박 시장이 이처럼 강경한 입장을 드러낸 데에는 이유가 있다. 박 시장은 "이들이 서울에서 다른 교인들과 접촉해 활동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다. 당연히 그의 말대로 "서울 지역 신도 명단 확보가 시급하다"는 것. 

이는 박 시장이 예배 참석을 중시, 명단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으로 알려진 신천지 상황에 주목한 것으로 해석된다. 

박 시장은 "신천지는 예배 참석 교인의 인적 사항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고 한다"고 전제하고 "확실하고 빠른 조치를 위해 정확한 명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서울시는 대구 신천지 예배에 참석했다는 사람 중 서울 소재 참석자 17명의 명단을 (신천지로부터)받아 추적을 마쳤지만, 명단의 정확성을 확인하기 어렵다"고도 하소연했다.

이 발언은 결국 중앙 조직을 '압수수색'이라는 강경하고 최종적인 국가 권력, 즉 형사사법절차를 통해 전체 명단을 확보해 우한 폐렴 창궐 상황에 맞서야 한다는 지적으로 읽힌다. 공공복리상 국민의 권리 제약이 가능하다는 헌법 논리상 겉으로는 일단 타당해 보이는 구석도 있다.

하지만 이런 박 시장의 주장은 문제와 실제 이행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을 감수해야 한다.

◆명단, 일괄적으로 얻으면 행정상 조치 강구엔 편리…"하지만"

압수수색을 통해 전체 신도 명단을 확보하는 것은 힘들고, 방법이나 절차상 가능하더라도 자제해야 할 필요가 높기 때문.

이는 영장의 특정 필요성 때문이다. 특정일에 대한 예배 참석자 명단 등에 대한 압수수색은 가능하지만 신도 전체 명단 확보를 위해 압수수색을 진행하는 것은 논란을 낳을 수밖에 없다.

지금 박 시장의 논리를 뒷받침하는 주요 '무기'가 무엇인지 살펴보면, 이에 대한 이해가 쉽다. 박 시장은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감염병법)을 활용, 광화문광장의 집회 금지 등 굵직한 조치를 밀어붙여 왔다.

일각에서는 정치적으로 보수파 집회를 차단하려 드는 게 아니냐, 그의 권한이 아니지 않냐는 주장도 나왔으나 시·도지사는 여러 규정상 사람이 많이 모일 행사나 교통 등의 차단과 금지 발동 권한이 있다는 것. 신천지 서울 각지 교회의 폐쇄 처리를 박 시장이 신속히 단행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맥락이다. 

그런데 감염병법 규정을 활용, 예를 들어 서울권 혹은 전국의 신천지 명단을 모두 획득하는 게 가능할까? 감염병법 18조에 따르면 △정당한 사유 없이 역학조사를 거부·방해 또는 회피하는 행위 △거짓으로 진술하거나 거짓 자료를 제출하는 행위 △고의적으로 사실을 누락·은폐하는 행위 등을 할 경우 등을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다스린다. 

현재 예를 들어, 우한 폐렴 문제가 심각한 대구 지역에서 신천지 자료나 연락이 안 되는 경우 이에 근거해(고의성 은폐 의혹) 규율할 수 있다는 것.

따라서 대구 경찰이 대거 동원돼 신자 추적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도 자료 신빙성 문제 등 경우에 따라서 유사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다.

다만, 필요한 그리고 행정조치를 구상할 때 유효한 자료를 요구하는 데 그쳐야 한다는 비례의 원칙 문제가 다음 허들로 등장한다. 신천지 명단이 궁금하다는 이유로 전부 내놓으라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 역학조사의 필요에 따라 문제 구간(예배일자나 장소 등을 특정해 놓은 것)을 밝히고 자료를 요구하고, 이것이 제대로 안 되는 경우 강제 조치를 강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즉 어느 날 어느 시간대 자료에 대해 일부만 제출된 경우, 나머지를 내놓으라고 요구하거나 진위 여부를 판별하기 위해 해당 일자 명부의 전체를 강제로 취득해 대조하고 또 처벌 등 후속 조치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전국 명단이나 서울 신도 명단 등을 광범위하게 요구하는 자체는 향후 소송 대상이 될 수도 있는 위법상 논란 요소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이런 자료 일괄 취득의 '유혹'을 수사나 행정을 맡는 기구에서는 강하게 느끼고, 경우에 따라서는 과거 관행적으로 활용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YS 시절이나 가능하던 마패영장? 박근혜 때 잠시 관행 부활 논란

일례로 1995년경 YS 정부가 각종 사회 적폐 현상에 대해 '성역없는 수사'를 독려하던 당시 검찰의 행태가 그랬다.

검찰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캐기 위해 법원으로부터 일명 '일괄영장'을 발부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실명제법이 마련되고, 1994년 말에는 실명제 관련 제도(시행령 등)가 정비된 것을 고려하면 지금 기준으로는 물론, 당시의 법감각이나 인권 의식에 비추어 보아도 의아한 일이다.

하지만 당시 검찰은 실명제 관련 조항이 개정된 뒤부터 금융기관 계좌 추적 때 불편함을 강하게 느끼게 되고, 영장의 구체적 특정성 요청이라는 헌법적 가치에 편의적 조치로 우회 방법을 고려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수표 추적에 이 기법이 유용했다. 이 일괄영장은 쉽게 말해 일일이 개별 사안마다 법원에서 영장을 발부받지 않고도 수표의 흔적을 따라이 은행 저 점포로 기민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당시 이것이 속칭 '마패영장'이라 불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반드시 특정 금융기관 점포나 계좌 번호가 적혀 있어야'만 가능하던 종전의 영장 발부 제도와 비교하면, 검찰엔 편리하지만 금융기관엔 아주 거북한 상황이었다.

수사의 기밀 보장이나 편의를 위해 매건 반드시 특정 점포 및 특정 계좌를 지목하는 수고를 덜게 되는(특정 계좌와 전후로 연결된 계좌에 대해 압수 수색을 하는 경우엔 영장에 또다른 계좌 번호 또는 점포명이 없어도 되도록 했다), 

이 제도의 등장에 반발도 없지 않았다. 당시 경제부처(구 재정경제원)은 이에 강하게 반대했으나 결국 1994년 12월말 관련 규정을 고치고 은행감독당국과 각급 금융기업 등에도 재경원 협조 공문이 하달되기에 이르렀다.

박근혜 정부 말기인 2016년경에도(박 전 대통령은 2017년 초 탄핵결정을 받았다) 공기업 수사에서 검찰의 무리한 계좌 털기 등이 논란이 됐고, 이에 따라 이 일괄영장(마패영장) 비교 주장이 일각에서 조심스럽게 제기됐었다.

검찰은 전임 MB 정부의 자원비리 의혹을 조사하기 위해 한국석유공사의 하베스트 부실 인수 과정을 수사하면서, 피고발자인 김형찬 전 메릴린치 서울지점장 계좌에 대한 압수수색에 들어갔다. 

이후 김 전 지점장의 부친인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의 계좌까지 따라 들어갔다. 김 전 기획관은 이명박 전 대통령 기념재단 준비를 하면서 여기저기서 자금 출연을 받았지만, 이 돈의 입출금 시점이 자원비리와는 관련이 없어 불필요한 것까지 연결해서 모두 터는 문제가 지적된 바 있다.

결국 전혀 생경한 문제적 발언을 했다고까지 지적할 수는 없지만, 구식의 과행과 제도에 가까운 방식을 박 시장이 일괄적 제출과 강제 확보로 불러오고 있다는 점 자체는 반대를 피할 수 없다는 것. 

검찰의 무소불위 지적을 뒷받침하는 옛 제도를 추억하거나, 강력한 힘으로 국익을 개인 이익에 앞세우는 게 아니라면 이런 흐름을 새삼스럽게 강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특히나 박 시장은 시민운동을 주도하면서 국가나 기업 권력 같은 문제를 견제와 감시에 나섰다는 평을 듣는다. 한때 저작권 전문 변호사 1세대로 활동했으나 선배 인권 변호사들의 당부로 관심사를 돌린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여러 점에서 단순히 공공복리상 권리 제한이라는 맥락으로 나이브하게 일을 접근하는 이런 태도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하물며, 법률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공공복리 등을 이유로 권리 제약을 하더라도 본질적 침해는 할 수 없다고 이해하고 있다. 그렇잖아도 이단 논란 등으로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이들에게 시달리는 신천지 교인들의 처지에서 불필요하게 명단 전부를 행정기관에서 확보하겠다고 달려드는 것은 공포 그 자체일 수 있다. 양심과 신앙의 자유 위축이라는 고상한 설명만으로는 불가능할 정도의 문제일 수 있다.

그러므로 전체적으로 봐도 뭔가 문제가 있지 않냐는 점에서 박 시장의 사고관은 신중하게 교정되어야 할 필요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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