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혁재의 건강창작소.13] 봉준호의 《기생충Parasite》과 '가부장의 죽음'

2020-02-26 09:44:09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 후 소감을 밝히면서 마틴 스코세지 감독에게 감사를 표하고 있다. Ⓒ 방송 캡처

[프라임경제] 오늘 〈이혁재의 건강창작소〉의 주인공은 《기생충Parasite》의 영화감독 봉준호입니다. 그는  《플란다스의 개》(2000)로 장편 영화에 데뷔한 뒤, 《살인의 추억》(2003), 《괴물》(2006), 《마더》(2009), 《설국열차》(2013), 《옥자》(2017)에 이어, 《기생충》(2019)을 만들었습니다. 《기생충》은 2019년 72회 칸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데 이어, 2020년 2월 9일 아카데미 시상식(OSCARS)에서는 국제영화상, 각본상, 작품상과 더불어 감독상까지 받게 됩니다.

▲마틴 스코세지 감독이 봉준호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 방송 캡처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고나서 한 말이죠. 그는 어릴 때 영화 공부를 하면서 이 말을 가슴 깊이 새겼다고 합니다. 통역을 맡았던 샤론 최 감독은 "더 모스트 퍼스널 이즈 더 모스트 크리에이티브 The most personal is the most creative."라고 옮겼습니다. 할리우드 돌비 극장에 잔잔한 공감이 흐를 무렵, 봉 감독은 이 말의 주인공이 누군지 조용히 외치죠. 그 사람은 바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었어요. 스코세이지 감독은 울컥하면서 '엄지척'을 했고, 거의 모든 사람들은 일어나 박수와 함성을 보냈습니다. 

봉 감독이 아카데미 감독상과 거장의 '엄지척'과 많은 사람들의 박수 및 함성을 받았다는 것은, 그의 문제의식이 세계적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뜻일 겁니다. 저는 그래서 봉준호 감독의 문제의식을 나름대로 재구성해보고 싶었어요. 키워드는 '가부장의 죽음'으로 좁혔습니다.

그럼 오늘의 이야기를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기생충Parasite》에 앞선 죽음들

▲영화 '프란다스의 개' 포스터. Ⓒ 프라임경제

봉준호 감독은 사람들이 감추고, 숨기고, 버리고 싶은 불편함을 모아 영화에 주워 담곤 합니다. 그리고는 그 불편함을 죽음으로 한 번 더 몰아가지요. 《플란다스의 개》에서는 편법을 써서라도 교수가 되고자 하는 윤주에게, 목청껏 짖어대는 개들이 '입바른 개소리 한다'고 죽습니다.

▲'살인의 추억' 포스터. Ⓒ 프라임경제

《살인의 추억》에서는 비 오는 밤 연쇄살인범에게, 그저 여자라는 까닭으로 여러 '향숙이'가 죽지요.

▲'괴물' 포스터. Ⓒ 프라임경제

《괴물》에서는  독극물이 만든 괴물에게, 중1 현서가 까닭 없이 붙잡히고 가둬지고 물어 뜯겨 죽기도 합니다.

▲'마더' 포스터. Ⓒ 프라임경제

죽음은 《마더》와 《설국열차》와 《옥자》로도 이어지지요. 《마더》에서는 홀어머니 혜자가, 사는 게 너무 힘들다며 지적 장애가 있는 아들 도준과 함께 죽고자 합니다.

▲'설국열차' 포스터. Ⓒ 프라임경제

《설국열차》에서는 꼬리칸 사람들이 굶주리다 못해 아이를 잡아먹지요. 나중에는 폭탄이 터지고 눈사태가 일어나면서 앞뒤 칸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죽게 됩니다.

▲'옥자' 포스터. Ⓒ 프라임경제

《옥자》에서는 사람들의 먹을거리를 해결하기 위해 슈퍼 돼지들이 도축장에서 죽어갑니다.

개, 돼지, 어린 아이, 청소년, 딸, 아들, 여자, 엄마가 불편한 진실을 견디지 못하고 죽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그저 우연인걸까요? 어른이자, 남자이자, 남편이자, 아빠인, 한 명! 바로 가부장은 꿋꿋하게 살아 있습니다. 저는 몹시 궁금했습니다. 언제쯤 봉준호 감독이 그의 영화에서 '가부장의 죽음'을 다루게 될까 하구요. 그러던 가운데 마침내 영화 《기생충》이 만들어졌지요. 

◆《기생충Parasite》에 앞선 가족들

▲'기생충' 포스터. Ⓒ 프라임경제

혹시 알고 있었나요?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서 남편과 아내, 엄마와 아빠, 아들과 딸이 모두 있는 가족은 《기생충》에서 처음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그에 앞서서는 하나둘씩 빠진 가족들이었지요. 《플란다스의 개》에서는 대학 강사 윤주와 직장인 은실이, 부부이긴 하지만 아이는 은실의 뱃속에만 있습니다. 《살인의 추억》에서는 형사 두만과 약방 직원 설영이, 그저 서로의 애인으로 나오지요. 《괴물》에서는 딸 현서가, 엄마 없는 하늘아래 여러 가족들 옆에서 외롭게 살고 있습니다. 

《마더》와 《설국열차》와 《옥자》에서도 이런 가족관계는 이어지고 있지요. 《마더》에서는 아빠 없이 엄마와 아들만 나옵니다. 엄마 혜자는 무슨 일을 하던 간에 아들 도준이의 홀어미로 사는 것이 가장 먼저입니다. 《설국열차》에서는 엄마 없이 아빠와 딸이 나옵니다. 아빠 남궁민수는 열차 보안설계자고, 딸 고아성은 열차에서 태어났지요. 고아성과 엄마와의 교감은 거의 드러나지 않습니다. 《옥자》에서는 강원도 산골 소녀인 미자가, 엄마아빠 없이 할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슈퍼 돼지 옥자의 친구이자 엄마가 됩니다. 

남편과 아내, 엄마와 아빠, 아들과 딸, 언니누나오빠형동생 가운데 누군가 빠지게 되면, 가족에게는 빈틈이 생기게 됩니다. 그 빈틈을 해석하는 감독 가운데 봉준호 같이 생생하고 디테일하게 드러내는 사람을, 저는 아직 못 봤습니다. 그래서 '가족의 빈틈을 메우려는 몸부림에서 가족이 가족다워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는 봉준호 감독만한 사람이 없다'는 평가가 나오나봅니다. 하지만 '가족의 빈틈을 메우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라는 게 봉준호 영화의 메시지라면, 나는 그 의견까지 동의하기는 어렵습니다. 내 생각으로는 봉준호 감독 또한 그런 메시지에 동의하지는 않는 것 같더군요. 

◆《기생충Parasite》과 '가부장의 죽음'

《기생충》에서는 비로소 '멀쩡한' 두 가족이 나타나게 됩니다. 한 가족은 모두가 백수인 실패한 자영업자 김기택의 가족입니다. 이들은 반지하에 살지요. 또 다른 가족은 글로벌 아이티 기업의 대표인 박동익의 가족입니다. 이들은 지상에 살지요. 그리고 국문광과 오근세라는 '어정쩡한' 가족이 있습니다. 이들은 지하에 삽니다. 이들 가족들이 지하와 반지하와 지상에서 뒤섞이면서, 그 갈등은 '가부장의 죽음'으로 마무리가 됩니다. 다만 가부장 한명이 숨어 살아있게 되고, 미래의 가부장이 죽다 살아나게 됩니다.

▲'어느 가족' 포스터. Ⓒ 프라임경제

《기생충》을 보다가 저는 문득 루쉰의 〈광인일기(狂人日記)〉가 떠올랐어요. 그는 '사천 년간 사람을 먹은 이력을 가진 가부장'의 모자람과 게으름을 알아차리고는, 이제부터라도 '사람을 먹어 본 적 없는 아이'를 구하고자 마음을 굳게 다지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구해야 할 텐데…" 하는 울림은 여럿의 마음에 씨를 뿌렸습니다. 저는 봉준호 감독이 그 씨앗을 키우는 사람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포스터. Ⓒ 프라임경제

그리고 생각나는 영화들도 있어요. 《기생충》과 마찬가지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들입니다. 하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이고, 또 하나는 켄 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입니다. 이들 두 영화가 생각난 까닭은, 새로운 가족과 자유로운 개인이 살아있는 세상을 봉준호 감독은 어떻게 그려낼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가부장의 죽음과 가부장제를 딛고 일어서는 새로운 가족과 자유로운 개인을, 봉 감독은 어떻게 그려낼지 기다려집니다. 

이렇게 다시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숨어 살게 된 기택은 또 다른 근세가 됐고, 죽다 살아난 기우는 기택이자 근세를 망원경으로 꼼꼼하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저는 다시 태어난 기우가 지하와 반지하와 지상을 앞으로 어떻게 그려낼지 궁금합니다. 기우가 자유로운 개인의 시선으로 새롭게 그려내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지 말이죠.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나는 봉준호 감독의 이 수상소감이 괜한 말이 아니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덧붙임: 이 글은 《휴먼에이드 매거진》에 실린 〈이혁재의 별별 여행기 ⑦〉과 짝이 되는 글입니다.


신천 함소아한의원 대표원장 / MBC 본사 의무실 한방주치의 / EBS 역사드라마 <점프> 한의학 자문 / 연세대 물리학과 졸업 / 경희대 한의학과 석사졸업·박사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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