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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칼럼] 마블, 남의 밭에 뿌린 황금배추 씨앗 '스파이더맨'

 

박정수 청년기자 | pjs960@naver.com | 2020.02.26 13:57:16
[프라임경제] 옛날 옛적에 한 가난한 부부가 있었다. 장사를 통해 집안을 일으키고자 했으나,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딸린 자식만 많아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다. 

가난한 부부가 사는 동네에 그럭저럭 잘 사는 젊은 부부가 한 쌍 있었다. 다만 이들은 아이를 가질수 없어서 입양을 통해서라도 키우길 원했다. 

이런 얘기를 전해들은 가난한 부부는 젊은 부부에게 막 걸음마를 뗀 막내아들을 입양시키기로 결심했다. 당연히 어느 정도 금전을 받고서 말이다.

이후 장사에 성공해 집안이 풍요로워진 가난한 부부는 막내아들을 다시 데려오고자 젊은 부부를 찾아가 요구했다.

"아이를 다시 보내주시오. 돈은 그 때 몇 곱절을 드리겠소."

하지만 젊은 부부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죽어도 안 돼."

가난한 부부(이하 친부모)는 포기를 몰랐다. 마을 최고 어른이자 재판관인 사또에게 찾아가 양육권을 돌려받을 생각이었고, 젊은 부부(이하 양부모) 역시 이에 동의했다.

이렇게 친부모와 양부모, 그리고 아이는 사또 앞에 섰다. 낳아 준 부모와 키워준 부모 둘 가운데 누구에게 권한이 있는지 동시에 물었다.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던 사또는 갑자기 번뜩이는 눈빛으로 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전에 배추씨앗들이 많은 어느 선비가 있었네. 다만 농사지을 밭이 협소해 씨앗을 옆집 밭에 던져버렸지. 이후 옆집 밭에서는 배추가 자라나자 옆집 주인은 정성스럽게 키웠지. 

그런데 단순한 배추가 아닌 무려 임금님께 진상으로 올리는 황금배추였던 거야. 

선비는 옆집 주인에게 찾아가 "배추 종자를 돌려 달라, 싫다면 어음을 걸고 땅이라도 사겠다"라고 말했어. 과연 어땠을까.


친부모는 할 말을 잃었다. 사또는 양부모, 즉 '키워 준 부모' 권리를 인정한 것이다. 

사또가 양부모 권리에 손을 들어주자, 친부모는 양부모에게 1년 중 몇 달간 아이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양부모는 그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결국 막내아들은 1년 중 일정 기간을 친부모 집에서, 나머지 기간은 양부모 집안에서 보내야만 했다. 

미국 코믹스(Comics) 회사 '마블(MARVEL)'도 친부모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캐릭터를 제작해 판매했지만, 좀처럼 살림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더군다나 '실사화' 능력마저 부족해 궁핍한 생활을 이어갔다. 

결국 부도 직전까지 몰린 마블은 캐릭터 '영화화 판권' 대부분을 다른 영화사에 팔았다. 시간이 흐른 1998년, 재정비를 거쳐 '마블 엔터테인먼트(Marvel Entertainment)'로 새로이 태어난 마블 주가는 점점 뛰어올랐다. 

이전 판매한 판권들 대다수를 회수한 마블은 2008년 대형 잭팟 '아이언맨(Iron Man)'을 터뜨렸으며, 코믹스를 실사화시킬 '천군만마' 디즈니(Disney)와도 만났다. 

이처럼 마블은 고공성장을 이어갔지만, 여전히 마음 한 켠에는 허전한 구석이 있었다. 그게 바로 '스파이더맨(Spider-Man)'이다. 

마블은 20세기 후반 여타 캐릭터와 같이 '스파이더맨' 영화화 판권을 타사에 판매했다. 스파이더맨은 여러 회사들 간 복잡한 법적 분쟁을 거친뒤 1999년 소니 픽쳐스(Sony Pictures, 이하 소니)에게 소유권이 있음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이후 소니는 '스파이더맨 실사화 3부작'으로 대성공을 거뒀다. 

물론 마블은 스파이더맨 흥행이 아쉬웠지만, 이를 보류한 채 다른 캐릭터들 실사화를 서둘렀다. 그리고 '어벤져스(Avengers)'를 통해 모든 서사가 완성됐다고 판단한 마블은 소니에게 접근했다. 

"스파이더맨 영화를 제작해 얻는 수익 대부분을 줄 테니 마블 영화 서사(Marvel Cinematic Universe)에 넣을 수 있도록 해 달라."

소니는 해당 제안을 조건부로 받아들였다. 이런 과정을 통해 마블은 캡틴 아메리카 세 번째 영화 '시빌 워(Civil War)'에 '막내' 스파이더맨을 편입시킬 수 있었다. 

아울러 단독 영화 '스파이더맨 홈커밍(Homecoming)'과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Far From Home)'도 흥행에 성공했으며, 어벤져스 시리즈 '인피니티 워(Infinity War)'와 '엔드게임(Endgame)'에도 출연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블과 소니간 동행에 차질이 생기기 시작했다. 2019년 여름, 마블이 스파이더맨 영화 수익 퍼센테이지(Percentage) 인상을 요구했지만, 소니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협상 결렬로 스파이더맨 계약이 일시 파기되자 수많은 팬들은 '더 이상 스파이더맨을 마블에서 볼 수 없다'는 우려를 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마블과 소니 양사간 협상은 좋은 결실을 맺었다. 마블이 수익을 더 가져가고, 소니는 계속 스파이더맨을 빌려주는 식으로 합의한 것이다. 

결국 마블은 '친부모의 최후 제안'처럼 '막내아들' 스파이더맨을 '양부모' 소니와의 계약 연장을 통해 계속 빌려 쓰는 방안이 최선이 됐다. 

수많은 마블 팬들에게는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이는 소니의 '적법한 권리'인 만큼 그저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박정수 청년기자

*해당 칼럼은 사단법인 '청년과미래' 활동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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