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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느린 준법감시위? 노조 문제 대수술 '촉각'

그룹 전반 튼튼한 저력 기반으로 의미있는 문제 정면돌파·집단적 지성 가동 조짐 유의미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20.03.06 09:15:35

[프라임경제] 약 7시간에 걸친 그야말로 '마라톤 회의'였다. 5일 오후 2시에서 9시 즈음까지 이어진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3차 회의는 그 내용에서도 전향적인 걸음을 내디뎠다고 일응 평가할 수 있다. 준법감시위는 삼성그룹이 노조·승계·소통 등에서 근원적 변화를 이룰 수 있도록 제안한다는 점에 뜻을 모았다. 준법감시위는 삼성에 3가지 사안에 대한 권고안을 만들어 전하고 이른 시일 내 공표하기로 했다.

◆오너 일가의 일 동시에 회사들의 역점 상황 "쉽지 않네"

물론 일각에서는 미흡하다는 저평가도 없지 않다. 위원장을 비롯한 위원, 사무국 직원 그리고 삼성 관계사 준법지원인 등 30여 명이 모여 4월 중에 워크샵을 열기로 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슈로 이미 한 번 '밀린' 상황이고 또 이때에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 아니냐는 회의론이 부상하고 있다. 

아울러 준법감시위 관계자에 따르면 당초 일각에서 거론된 삼성 7개 계열사 최고경영자(CEO)와 준법감시위원들의 면담 관련한 사안은 논의되지 않았다.

세간에서 주지하다시피, 노조 문제와 경영권 승계는 관계사들의 내용 즉 회사일이기도 하지만 총수인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 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준법감시위가 입장을 빠르게 정리해 이 부회장과 관계사들에게 다이렉트로 제안하고 실질적 개선 작업 단추를 꿸 단춧구멍의 위치라도 잡지 않으면 결국 백년하청에 가깝지 않겠냐는 우려가 나온다. 오너 일가 문제가 회사들을 좌우하는 격이 되는 주객전도의 상황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외화내빈 우려를 준법감시위도 모르지 않는다. 실제로 언론용 자료를 내고, 특히 이 부회장 국정농단 사건 파기항소심용 활동이라는 의혹 불식에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 자료는 "위원회의 독립적인 활동이 마치 재판결과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비쳐지는 상황에 대해서 우려를 공유했다"면서 "위원회는 총수에 대한 형사재판의 진행 등 주변 상황을 의식하지 않고 위원회 본연의 사명과 임무에 충실할 것"이라고 재확인했다. 시민사회계 일각의 백안시하는 관점이 일반적으로 확산되는 것을 차단할 필요가 높다는 점이 부담이 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렇다고 이번 조치를 마냥 부족하다고 보거나, 실질적 의지가 없다고 평가할 만한 것은 아니라는 총괄적 관점에서의 풀이도 대두된다.

이재용 등 삼성 3세들이 한 데 모였다. ⓒ 연합뉴스

◆SK수펙스 이상의 대응망 슬슬 성장? 

실제로 대법관 출신인 김지형 위원장은 앞서 1월9일 기자간담회에서 "대외 후원금이나 공정거래 분야, 부정청탁 등의 분야에만 그치지 않고 노조 문제와 경영권 승계 문제 등에 있어서 법위반 여부도 준법감시의 예외가 될 수 없다"고 못을 박았었다. 

그렇게 말한 만큼 준법감시위의 중점 과제에도 노동조합과 경영권 승계 관련 내용 등 민감한 일을 담기 위해 노력했고, 실제로 이렇게 전진이 이뤄지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일을 하는 과정에서 위의 민감 사안들을 피해갈 수 없음을 이미 '원청'인 삼성 측에도 전달한 셈이기 때문이다.

하나 더 괄목할 만한 일이 있다. 세간에서는 미담으로 평가되거나 용기있는 과거와의 단절 노력 정도로 회자되고 금방 묻혔지만, 삼성의 코로나19 사회공헌 이슈나 기부금 조회 문제와 사과 등이 갖는 의미다. 준법감시위 입김이 실제로 가동돼 결과를 빚은 예 혹은 집단지성체제가 의미있게 가동되고 신속하고 정확하게 미래지향적 결과물을 도출한 바 있는 것. 이런 점들을 중요하게 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준법감시위는 삼성 직원들이 진보시민사회단체에 기부금을 냈는지 광범위하게 조회한 옛 사건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명하고, 진정성 있는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을 촉구해서 결국 그룹 차원의 사과 발표 등으로 이어졌다. 

이 사건은 준법감시위가 설립되기 전에 일어난 것이지만 미래를 위해 과거의 잘못을 준법감시위가 나서서 끊고자 상황을 무릅쓴 점에서 주목된다.

코로나19 환자 수용 공간 제공 일명 영덕 연수원 건도 삼성경제연구소 사회공헌연구실과 삼성인력개발원, 연수원 소유권자인 삼성전자가 협의하고 답을 내놓는 데 엄청나게 빠르고 기민한 연결망 가동이 이뤄진 것으로 읽힌다. 

이런 문제는 일종의 조언자 그룹 혹은 (경우에 따라서는) 집단지도체제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점에서, 또 그 확실한 실력 발휘 신고식 면에서 다른 재벌을 연상하게 해 흥미롭다.

SK그룹은 2012년부터 수펙스추구협의회의 6개 위원회를 중심으로 계열사별로 따로 독립 경영하는 '따로 또 같이 3.0' 체제를 시도했다. SK그룹은 수펙스추구협의회를 정점으로 한 경영 체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문경영인들이 경영 전면에 서도록 북돋았다. 이렇게 의사결정 라인을 구성한 점은 대단히 그룹 경영에 큰 자산이 돼 주었으니, 바로 최태원 회장이 수감된 상황에서도 그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삼성이 유사한 점에서 SK 측의 이런 시스템을 타산지석할지 또 그 이상의 우수한 결과물을 빚어낼지 주목된다. 경우에 따라선 이재용 재수감 등 위기 시나리오에서도 삼성의 현재 빠르고 능동적인 각종 사회적 유대관계와 미래 이미지 구축 노력이 빛을 발할 수도 있을 전망이다. 

◆승계 그 이상의 중요한 안건, 노조 해법 '혹시나?' 기대감

이에 따라 향후 준법감시위의 다음 작품 초점은 이 부회장 등의 승계 논란에 대한 해법 요청이 아니라, 삼성에서는 언급 자체도 한동안 금기시됐다던 노조 문제가 되지 않겠냐는 새로운 관점도 부각된다.

물론 최근 삼성전자나 삼성디스플레이, 삼성화재 등 삼성의 주요 계열사들에서 양대노총을 상급단체로 둔 노조가 출범한 만큼 준법감시위가 부득이 이제는 해결해야 할 문제를 짚고 넘어가는 의미 이상 없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지나간 떡밥, 이미 터진 일에 대해 적당한 제스처를 보여주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 여러 번 짚은 준법감시위의 느리지만 결기가 분명 느껴지는 상황과 실제 추진 족적, 그리고 삼성에서도 단지 과거 오너 일가가 시키는 대로 1등 상품, 그리고 우수한 대내외적 정책을 만들어낸다는 뜻에서 '관리의 삼성'이라 불린 것과 결이 약간 다른, 내부적으로 의사 처리 과정상 가동되고 있는 집단지성이나 집단지도체제 등의 그림자를 살필 필요가 분명 있다.

그런 점에서 노조가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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