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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공천심사 앞둔 강경숙…'봉천동 타잔'에서 교육분야 산·학·연 3관왕까지

학문 통한 특수교육 공헌…촛불 정국서 문재인 진영 싱크탱크 '현실정치 참여'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20.03.08 22:19:13

[프라임경제] 오디션 프로그램은 언제나 긴장을 불러모은다. 후보가 자신의 매력을 가장 극적인 형식으로 드러내는 자리인 한편, 실수로 문제가 불거지기도 한다. 가려진 문제점과 약점이 표출되는 상황도 불가피하다. 그러나 평소 자랑하지 않았던 부분들이 세상에 비로소 드러나는 상황, 그것을 남들이 발견하고 부각해 주는 것에 가장 시선이 쏠린다. 사람들이 어떤 이를 인정해 주는 과정은 그래서 각본없는 드라마다. 

더불어민주당이 비례대표 명단 확정 과정을 진행 중이다. 여러 정치적 여건과 다른 당들과의 상황이 있기는 하지만, 민주당 비례대표추천관리위원회 국민공천심사단 투표 후보자들이 속속 선정됐다. 후보 40명이 압축 과정을 통해 경선 1차 심사를 통과했다. 이제 그 다음 단계, 10~11일 선거를 통해 20명 선출 과정을 치르게 된다. 강경숙 원광대학교 특수교육과 교수는 이 과정에서도 상당히 돋보이는 인물이다.

국가백년대계를 다룰 교육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데다 일반적인 교수 코스를 훨씬 넘어서는 드라마를 갖춘 '오프로드형' 인재하는 점이 부각돼서다.

◆봉천동 빈민운동 대학생, 훗날 "촛불 교수님"

그가 정치에 발을 들일 때 의아하다는 시각이 많았다. 왜 교수라는 사회적으로 두루 인정받는 자리에서 험난한 정치 현장으로 뛰어들겠다는 것이냐는 핀잔과 걱정이 뒤섞인 반응들이었다. 일부에서는 그가 에너지가 넘치고 긍정적인 성격 덕에 정치에 관련되더라도 잘 견딜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특히나 강 교수의 '소녀 감성'을 아끼고 사랑하는 많은 교육계 동료들과 학교 제자들은 그의 선택에 대단히 걱정을 했다.

더욱이 당시 정국은 바야흐로 '촛불 정국'이었다. 박근혜 정부의 문제점이 차차 드러나는 상황에 지식인으로서 쓴소리를 해야 한다는 참여의식을 갖는 것은 강 교수로서는 당연한 일이었지만, 정권과 정면으로 맞서고 그 '다음'을 준비하는 작업은 절벽에 서서 고되고 답없는 일을 해나가는 상황이었다.

촛불 정국 당시 강 교수는 민주당 싱크탱크 역할을 했다. 국민성장위원회 위원으로 대통령 교육정책 공약을 개발하는 데 앞장선 것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그런 강 교수의 인상적인 역할과 교육계 전문가로서의 태도 때문이었을까? 문재인 정부는 출범 후, 대통령 직속 교육자문기구인 국가교육회의 본회의에 강 교수를 초빙한다. 강 교수는 국가교육회의 1기 위원을 지내며 국가교육 의제를 다루는 기회를 얻었다. 

강경숙 교수는 옥조근정훈장 등을 받은 특수교육 전문가다. ⓒ 강경숙 교수

평소 잘 드러나지 않던 이런 치열하고 적극적인 태도는 대학 시절부터 이미 각인돼 있었던 것. 그는 이화여대 재학 중이던 당시, 봉천동 빈민운동(신림동 인근으로 이후 대부분 재개발) 현장에서 사회참여의식을 길렀다. 높은 언덕에 서울 시내에서도 상대적으로 가난한 이들이 봉천동에 모여살던 시절이다. 상도동 일부나 봉천동에서 철거 등 잡음이 커지면서 갈 곳 없는 빈민들의 주거 문제가 불거졌다. 농활처럼 빈활이 부각되고, 더 적극적인 이들은 빈활만으로는 만족 못해 빈민활동 현장에서 동네 아이들을 돌보거나 주민들을 돕기도 했다.

세이브더칠드런과 은평학교 선생님 거친 현장 실력파

이런 대학 시절을 보내고 나서 그는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에 입사, 해외결연사업을 진행한다. 교육 분야에서 쌓은 지식을 그야말로 직장인이자 사회인으로 풀어내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교육 분야를 산·학·연으로 나눈다면 산(産)에 해당하는 현장에 뛰어든 것이다.

이후 강 교수는 1993년부터 2000년까지 은평학교 등 일선에서 특수교사로 일했다. 그러면서도 학문적 연구를 더 쌓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교육부 국립특수교육원 교육연구사로서 정식 채용 관문을 뚫었고, 나사렛대학교·한신대학교에서 강사로 강단에 서기도 했다. 연(硏)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원광대학교에 특수교육학과가 생길 때 초대 교수로 부임한 것은 이런 적극적인 개척 정신과 실제 성과물 역시 출중했다는 점을 학계나 일선 교육 현장, 정부 등에서 모두 인정했다는 뜻이 된다. 

어느새 '교과서 만드는' 특수교육 전문 교수로

원광대에서 특수교육 관련 기틀을 만들고 세우면서도 그는 논문과 저서를 다수 써냈다.

KB에서 지원한 희망캠프에 멘토장으로 참여한 강경숙 교수. ⓒ 강경숙 교수

원광대학교 학술상을 받았고, 세계적으로도 특수교육 관련 연구 업정 등을 인정받아 세계 3대 인명사전 중 하나인 '마르퀴즈 후즈 후(Marquis Who's Who in the World)'에 이름을 올리는 영광을 차지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영예로웠던 일은 옥조근정훈장과 대한민국 스승상을 받았던 것인데, 이런 배경에는 특수교육용 국정교과서 편찬 등 불편한 아이들도 교육받을 수 있도록 길을 닦은 수많은 노력들 때문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2016년 원광대학교가 교육부로부터 2억여원의 용역비를 지원받아 초등 3~4학년 교과서와 전자도서를 개발할 때 강경숙 교수가 전국의 관련학과의 도움과 네트워크를 얻어내는 데 막후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강 교수는 "'중용'을 인생의 가르침과 미덕으로 삼아 왔다"면서 본격적으로 정치에 나서게 되면 '정자정야('바로잡는 게 정치의 일이다'라는 뜻)'의 정치인이 되겠다"는 뜻을 민주당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경숙 교수의 오디션 본무대가 이제 곧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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