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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오늘] "치욕의 99엔" 日 강제징용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발자취

 

오유진 기자 | ouj@newsprime.co.kr | 2020.03.10 07:47:51
[프라임경제] 10년 전 오늘인 2010년 3월10일. 이날 한 매체는 일제강점기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 중 한 명인 양금덕 할머니와의 인터뷰를 게재했습니다. 양금덕 할머니는 이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한평생 흘린 눈물을 보상받기 위해선 일본 총리를 비롯한 일본 정부가 하루빨리 사죄하길 바랄 뿐"이라며 눈물을 훔쳤습니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 연합뉴스

이번 10년 전 오늘에서는 일제강점기에 조선인 10만여명을 강제 징용해 부를 축적한 대표적 전범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일체의 사죄와 배상을 거부하고 있는 미쓰비시중공업과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양금덕 할머니의 발자취를 좇아봤습니다.

양 할머니를 비롯한 '조선여자근로정신대(이하 정신대)'에 끌려가야 했던 할머니들은 일제강점기 미쓰비시중공업 등에서 강제노역 피해를 겪어야 했습니다.

양 할머니에 따르면, 1944년 5월 시모노세키행 배를 탔고 비행기를 만드는 미쓰비시중공업 공장에서 매를 맞아가며 비행기를 닦아내는 일을 지속했다고 합니다. 

징용 당시 양금덕 할머니의 나이는 13살. 돈도 벌고 학교도 다닐 수 있다는 일본인 교장의 협박 섞인 회유와 거짓말에 속아 일본으로 건너가게 됐습니다. 그러나 여타 다른 강제징용 피해자들과 마찬가지로 배움은커녕 배고픔을 견디며 10시간 이상의 노동력을 착취당했죠.

양금덕 할머니는 일본 패전과 동시에 고국으로 돌아오게 됐는데요. 귀국 직전 미쓰비시 측에 여태껏 일했던 월급을 달라고 했지만, 미쓰비시 측은 "주소가 있으니 집에 가있으면 보내준다"고 약속했습니다. 이를 믿은 채 양 할머니는 그리운 고향의 땅을 다시 밟게 됐죠. 

그러나 미쓰비시 측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면서 보상은커녕 진심 어린 사죄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양금덕 할머니를 비롯한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은 지난 1993년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나고야 지방재판소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는데요.

'가제는 게 편'이라는 속담처럼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은 1심과 항소심에서 연이어 패소했고, 2008년 11월11일 도쿄 최고재판소는 기각 판결을 내리면서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할 처지에 놓이게 됐죠. 

이러한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의 사연이 알려지자 미쓰비시와 일본 정부 측의 보상을 요구하며 함께 싸워줄 시민모임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이하 나고야소송지원회)이 결성됐는데요. 

일본인들로 구성된 이 시민모임은 근로정신대 할머니들과 함께 소송을 비롯해 지난 2007년부터 '금요행동'을 통해 미쓰비시에 사과와 배상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2009년 말 일본 시민들이 참여한 시위가 지속되자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에게 후생연금 탈퇴수당금 명목으로 '99엔'을 지급키로 했습니다. 문제는 99엔이라는 금액인데요. 99엔은 한화로 1160원, 제대로 된 식사 한 끼 할 수 없는 돈이었죠.

이러한 치욕적인 금액에 시민모임은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특히 시민모임 측은 기자회견을 통해 "국익이 최고라며 이건희 삼성 회장을 사면하던 이명박 대통령이 99엔 치욕을 보고도 손을 놓고 있다"며 한국 정부에 적극적 대응을 촉구했죠. 

이러한 노력 때문인지 미쓰비시는 2010년 7월 피해자들과 면담을 진행했죠.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쓰비시는 면담 이후에도 어떠한 사죄와 배상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양금덕 할머니가 미쓰비시중공업에게 대법원 배상판결 이행을 촉구하는 모습. ⓒ 연합뉴스

양 할머니를 비롯한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은 국내에서 소송을 진행했습니다. 이에 광주지방법원은 2013년 미쓰비시중공업에 불법행위에 대해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고, 이후 대법원에서도 2018년 11월29일 최종 승소했습니다. 

하지만 계속된 정당한 노동에 대한 배상과 진심 어린 사죄 요구에도 일본 기업들의 '조롱'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사건은 지난해 10월18일 공개된 유니클로의 새로운 광고죠.

이 광고에서는 90대 할머니가 10대 여성으로부터 "제 나이 때 옷을 어떻게 입었냐"는 질문에 "그렇게 오래전 일은 기억 못 한다"는 내용이었지만, 한국에 송출된 광고는 이 대답을 의역해 "80년도 더 된 일을 기억하냐고?"로 전달됐죠.

'유니클로 후리스 : LOVE & FLEECE' 광고 화면 캡처. ⓒ 유니클로코리아 유튜브

이를 두고 유니클로가 일제 강점기인 80년 전을 언급하며 기억 못 한다고 생각하게끔 실제 대사와 달리 의역한 것은 우리나라의 위안부 관련 문제 제기를 조롱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들끓었습니다.

이에 양금덕 할머니는 이 광고의 패러디 영상을 통해 유니클로와 일본 정부를 비판하고 나섰죠. 유튜브에 업로드된 이 영상은 전남대 사학과 4학년 윤동현 씨가 제작한 20초짜리 영상으로, 주 내용은 "제 나이 때는 얼마나 힘드셨냐"는 질문에 양금덕 할머니는 "그 끔찍한 고통은 영원히 잊을 수 없어"라고 답했는데요.

이어 양 할머니는 "난 상기시켜주는 걸 좋아한다"며 "누구처럼 쉽게 잊지 않는다"고 꼬집었습니다. 즉, 유니클로 광고를 직접 저격한 것이죠.

일본 정부와 전범기업을 향한 양금덕 할머니의 배상과 사죄 촉구 활동은 90이 넘은 나이에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10년이 지난 현재 양금덕 할머니는 올해 1월 도쿄를 찾아 일본 외무성과 미쓰비시중공업 본사 앞 선전활동을 진행한 후 금요행동 500회 기념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이날 양 할머니는 대법원 승소 판결 이후 15개월 만에 미쓰비시중공업 본사 안에서 관계자와 첫 비공개 면담을 진행했는데요. 약 40여분 간 진행된 면담에서 양 할머니는 단순 "판결을 이행하라 그것뿐이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미쓰비시는 여전히 묵묵부답으로 일관 중이죠.

일본은 오는 7월 도쿄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평화의 제전인 올림픽 개최를 목전에 둔 일본이 강제징용과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지 않는다면 '과연 올림픽 정신에 적합한 개최지인가'에 대한 의문 부호는 계속 따라붙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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