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이재용 사과' 요청 나온 날, 옛 삼성생명 본관 기둥에 기대서서

2020-03-11 18:58:54

[프라임경제] 11일 삼성그룹 개혁을 주문하는 준법감시위원회의 결의에 찬 발표가 나왔다. 너무나도 결의에 찬 이 선언에 직원들도 기자들도 잠시 말을 잃은 상황. 간만에 햇살이 다시 돌아온 날, 태평로 모 빌딩에 있는 삼성전자 기자실을 나와서 걷는다. 일전에 7% 정도 급락한 다우지수는 금일 아침(우리 시각)엔 다행히 5% 복구를 했고 우리 각종 금융 지표도 나쁘지 않다. 상황은 어렵지만 우리 펀더멘탈이 굳건한 상황에서 느끼는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다시 삼성의 변화, 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승계 문제와 노동 이슈를 모두 동시에 수술하라고 건드린 준법감시위의 발표 내용을 들여다 본다. 무노조 경영을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는 간곡함과, 그간 삼성에서 일어난 많은 무리수는 대개 승계 문제 때문에 일어났다는 준엄함이 배치돼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직접 이런 여러 문제에 대한 의견을 내고, 재발방지를 해달라는 지적을 준법감시위에서는 내놨다. 시민사회계와의 대화를 요청한 단락도 중요도에서는 밀리지만 해쓱한 얼굴로 주변에 배치돼 있다.

기자실이 있는 모 빌딩을 나와 조금 걸으면 붉은 빛의 옛 삼성생명 본관이다. 그 옆은 대한상공회의소. 그 조금 아래로 내려가면 굴지의 금융기관이자 '금융의 삼성'이라 불리는 신한은행 본점이다.  

구 삼성생명 본관 붉은 몸체에 기대어 본다. 나는 몇 번이고 코로나19로 글로벌 경제가 흔들리고 또 다시 중심을 잡은 와중에서, 우리 경제의 기초만큼은 굳건하다는 점이 확인된 하필 11일 오후에 이런 발언을 내놓은 준법감시위의 결기 동시에 사려깊음에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11일 발언의  아름다운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삼성으로서는 수용하기 쉽지 않은, 해묵은 문제들이 적지 않다. 오너 일가로서도 쓰라린 대목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건희 2대 회장이 장기간 와병 중이고 3세 JY가 국정농단 사태의 피해자 혹은 공범이라는 희한한 지위에 장기간 노출돼 있는 불확실성 이상으로 삼성이 걱정할 문제가 무엇일까? 또 이제 비메모리 영역에서도 이미 다진 메모리 반도체의 세계적 선도기업 위상만큼 성을 쌓겠다는 각오 이상으로 매달려야 할 과제가 무엇일까? 기술력은 이미 오래 전 세계적 위상을 다졌고 이제 조개처럼 예쁘게 접히는 폴더블 스마트폰마저 가졌다는 자랑스러움 외에 또 무슨 자랑이 필요할까? 저런 삼성전자 외에도 수많은 1등 상품들을 가진 수많은 계열사들이 있는 그룹사가 과연 일개 작은 나라의 정치인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아첨할 이유가 있을까?

이러한 삼성이 쌓아온 성채의 그간 석축들을 보노라면, 완벽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제 마지막으로 좀 더 필요한 '순리의 아름다움'만 더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자칫 많은 재벌들이 쌓은 성채는 잔재주에 기울기 쉬웠으나 삼성이 쌓아온 그것은 그런 차원을 넘어서서 희한한 구성을 이루어 왔다. 이제 준법감시위의 요청만 받으면, 화룡점정이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이재용 부회장은 때로 파격을 보여 왔다. 태평로 삼성생명 본관이던 건물을 부영에 판 것 등 과감한 군살 빼기가 그 예다. 바로 그 자리 인근에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해 본다. 구 삼성생명 본관을 과감히 매각하던 용기 정도라면, 과연 저 11일 제안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 결과 태어날 삼성은 더 이상 이씨 일가의 영역이나 한국의 기업군에서 벗어나 정말 세계 무대로 아무 제약없이 날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글의 문장 중 상당 부분은 개성 송도고등보통학교(오늘날의 인천 송도고등학교) 출신으로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고 최순우 선생의 책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중에서 빌려 왔습니다. 동문 대선배의 글을 외람되게 차용했지만, 위대한 그룹의 탄생에 가장 걸맞는 아름다운 글이라 생각되어 사사로운 송구함을 무시하고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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