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컷] 노동착취에도 '삼성 코로나 배려' 베트남, 이재용의 변제법은?

2020-03-13 17:15:01

- 겉으론 환한 미소 베트남 관료들 자존심 안 다치게 불변응만변 속내 조심·배려해야

[프라임경제] 베트남 공산주의의 핵심으로 추앙받은 호치민 주석은 '不變應萬變(불변응만변: 불변은 만변에 응한다)'을 좌우명으로 삼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불변은 만변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만변에 기꺼이 응할 수 있다는 것인데 독립 운동의 아버지이자 골수 공산주의자가 이런 표현을 좋아했다니 일견 믿어지지 않기도 하는데요. 

호치민 시절에 공산월맹은 일본 침략군과 싸우고, 2차 대전 후에는 다시 득세한 프랑스 군대와 혈투를 벌여 결국 내쫓았습니다. 호 주석은 1969년 죽었지만 끝내 월맹은 1973년 미국 군대의 철수를 얻어냈고, 이후 1975년에는 자유월남을 무너뜨리고 적화통일을 완수합니다.

길고 긴 전쟁 와중에도 고집만 피울 게 아니라 변화를 직시하고 받아들이자고 한 것에는 적당히 타협하자는 뜻보다는 '핵심만 갖고 간다면'이라는 전제 하에 그 어떤 변화를 상대로 감수하거나 협상할 수 있다는 '조건문'이 아닐까 풀이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13일, 베트남 당국이 엄격한 코로나19 검역에 예외를 둬 삼성디스플레이 엔지니어들을 검역 예외 특례로 받아들인다고 전격 발표했는데요. 

앞서 베트남은 우리의 코로나19 창궐 상황을 엄중하게 받아들여 한국 경유 베트남 방문자의 방역 조건을 까다롭게 내걸기로 했습니다. 당연히 한국에서 출발(한국 출신)하는 엔지니어들도 14일간 시설격리를 감수해야 한다는 족쇄를 차게 됐고, 이렇게 되면 시급한 기업 활동을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는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국면이 전개된 것이지요.

이 같은 전향적 조치에 삼성디스플레이는 물론, LG디스플레이 등 여러 기업들의 베트남 관련 비즈니스에 숨쉴 구멍이 생겨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됐습니다.

일각에서는 삼성이 그간 베트남에 기여한 게 얼만데 이런 방역 칼날을 들이대냐고 그 자체를 불만스럽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외교적 혹은 경제적을 가능한 한 모두 가동해서 베트남의 조치를 꺾어야 우리 국격이 올라간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도 꽤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2014년 응웬 푸 쫑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가전CE 대단위 투자 결정 후 함께 찍은 사진. 응웬 푸 쫑 서기장은 지금도 당 서기장이며 국가 주석 업무를 정력적으로 맡아 처리하고 있다. ⓒ 삼성전자

삼성은 2014년 베트남 남쪽 사이공에 TV 중심의 소비자가전 단지를 건설하기로 한 바 있는 등 다양한 투자를 해 왔습니다. 2019년 겨울에는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총리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몸소 "반도체 공장을 지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최근엔 우리가 코로나19로 아쉬운 이유가 크지만 Z플립 등 고가 제품 라인을 베트남 스마트폰 생산라인에서 일부 생산케 하기로 결정하는 등 서로 엄청난 유대 관계를 맺어 왔지요. 

글쎄요, 그러므로 문재인 정부와 삼성이 강하게 압박을 넣어서 베트남을 굴복시켰거나 양보를 이끌어 낼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일단 문재인 대통령은 공식 라인에서 삼성-베트남 문제 이외의 것들을 모두 건드리는 방법을 택합니다. 문 대통령은 10일, 한국에 대해 입국제한 조치를 취하는 나라들과 우리 기업인의 예외 입국 허용 방안을 외교채널을 통해 협의하라고 참모들에게 지시했는데요.

해외 공장 신규 가동·증설을 앞둔 주요 기업들이 코로나19로 출입국 제한 조치를 당하면서 직격탄을 맞을 위기에 처한 점을 해소하겠다는 취지로 중국의 삼성전자 시안2공장과 SK하이닉시스템IC 우시 공장 그리고 베트남의 삼성디스플레이 박닝성 공장 등의 문제를 모두 고려해 간접적 신호를 보냈다는 풀이입니다.

삼성 측에서 "이럴 거면 너희 나라에서 투자한 걸 다 빼버리겠다"라는 식으로 무례한 언사를 퍼붓지 않았음도 알려져 있습니다.

결국 그러면서 13일 전격적 혜택 예외를 얻어냈으니 우의를 다치지 않으면서도 소중한 성과를 얻어낸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서 성급하고 거친 불만과 압력을 운운하는 이들을 생각해 봅니다. 위에서 말했듯, 수많은 전쟁을 치러낸 베트남입니다. 그런 처절한 결과를 무릅쓰고 이룩한 공산화를 어느 순간 접고 도이모이 정책의 변신을 택해 세계인들을 놀라게 한 것도 베트남 사람들이지요.

프랑스 외인부대도, 세계 최강의 미국 군대도 쫓아낸-심지어 그 다음엔 중국의 인해전술식 침공도 이겨내며 기록을 추가했죠-그런 사람들을 단순히 돈을 많이 투자했다고 해서 '검역 주권을 굽혀라'는 식으로 겁박할 힘은 삼성에게도 청와대에게도 없다 할 것입니다. 그런 힘이 있어도 안 쓴 것은 삼성과 청와대가 정말 잘 판단한 일이겠지요.

무엇보다 저렇게 한 번 빚을 지면 잊어버리지 않고 되갚고 마는 베트남 사람들에게, 우리는 이미 빚이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삼성그룹의 문제라고 해야겠지만요.

지난 2019년 여름, 프랑스 파리지방법원에서 삼성전자 현지법인이 예심 절차 도마에 오른 바 있습니다. 삼성 측이 대외적으로 홍보한 윤리경영 약속과 달리 한국·중국·베트남 등지의 공장에서 온갖 비윤리적 행태와 노동탄압이 반복됐다는 게 내용의 골자인데요.

이게 왜 피해국인 베트남도 아닌 프랑스 법원의 심판대에 오를 일인가? 글쎄요, 프랑스 법조인들의 판단은 그래서 결과적으로 자국 소비자들을 기만했다는 일각의 주장이 일리가 있으니, 더 자세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죠.

이렇게 예심 개시 운운하며 직접 칼을 뽑았던 프랑스보다, 그럼에도 위에서 언급을 잠시 했듯 그해에도 최고위 지도부에서 '반도체 라인, 그거 우리한테 좀 안 되겠니'라는 식으로 읍소를 할 수 있는 베트남의 절박함이 더 무섭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바보여서 저런 게 분명 아닌데, 베트남의 삼성과 한국에 대한 불변응만변의 폭과 깊이는 어디까지일지 가늠이 안 된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지요.

때마침, 13일 방역 특례라는 정말로 파격적 선물을 베트남이 내준 이 무렵에 삼성은 이제 그룹 내 각종 노동적폐를 해결하고 승계논란의 부산물들도 해결하자는 전향적인 기로에 서 있습니다. 

혹시, 베트남 공산당과 정부가 저런 것까지 모두 고려해 딱 내준 게 아닐까 생각도 해 보지만 그건 너무 섬뜩한 이야기이니 빼기로 하지요. 어쨌든, 이제 삼성 그리고 한국은 베트남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또 이번에 빚진 방역 특례는 또 얼마나 오래 비싸게 갚아야 할까요? 

이재용 부회장이 오래오래 고심하며 소중하게 베트남 현지 직원들을 바라보고, 또 우리 국민들이 베트남이라는 나라와의 우의를 무겁게 생각해 봐야 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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