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린트
  • 메일
  • 스크랩
  • 글자크기
  • 크게
  • 작게

[박정현의 교육 다반사②] 카프카와 카뮈의 소환

 

박정현 한국교육정책연구소 부소장 | press@newsprime.co.kr | 2020.03.13 17:22:30

[프라임경제] 무섭게 퍼지는 코로나19의 상황에서 한가롭게 문학 작품 이야기라니….

불편함과 불쾌함을 동시에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포와 불안이 우리의 삶을 억누르고 있는 상황에서 조금은 더 본질적이고 철학적인 차원에서의 바라봄이 꼭 필요하다. 고전은 단순히 오래되고 고루한 책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 인류가 그동안 겪어온 경험과 처절한 고민의 과정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 바로 고전이다.

3주 전,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될 무렵 뒤늦게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공식 회의에 동석했던 분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보건 당국에 바로 문의를 한 결과 확진 시점이 회의 때와는 차이가 있어 격리대상이나 검진대상은 아니라는 답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몸에 특별한 증상이 없었지만 괜히 열이 나고 목도 아픈 느낌이었다(체온을 쟀더니 지나치게 정상). 다른 것보다 더 큰 걱정은 가족들에게 혹시 감염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었다. 

집에서 자체적인 격리를 선언하고, 일주일 동안 집 안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서재에서 두문불출하였다. 스스로 만든 고립의 상황이었지만 여러 생각과 감정이 복잡하게 얽혔다. 이때 소환된 이가 카프카였다.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는 인간 존재의 불안과 운명 그리고 부조리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작품 중 백미는 '변신'이다. 어느 날, 평범했던 회사원 그레고르는 커다란 갑충으로 변해버린다. 그레고르의 변신에 가족들은 충격을 받는다. 자신의 방에서 나오지 못한 채 격리된 그레고르는 회사, 주변 사람들 그리고 마지막에 가족들에게도 외면 받는다.
 
그의 여동생은 "아버지, 이게 오빠라는 생각을 버리셔야 해요. 우리가 이렇게 오래 그렇게 믿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진짜 불행이에요. 도대체 이게 어떻게 오빠일 수 있지요?"라고 말한다.
 
결국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맞은 자리의 상처가 곪아 그레고르는 죽게 되고, 다음 날 남은 가족들은 교외로 소풍을 떠나며 미래를 계획하며 끝을 맺는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감염된 많은 이들의 1차적인 고통은 병마와 싸워야 하는 물리적 고통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고통은 바로 죄책감과 고립감이 아닐까? 자신으로 인해 가족과 주변인들에게 고통을 주었다는 스스로의 책망과 물리적 격리보다 더 무서운 정신적 격리를 경험하고 있을 것이다.

그레고르의 죽음은 정신의 죽음에 더 가깝다. 코로나19에 대한 백신과 치료제는 곧 나올 것이다(우리 인류가 늘 그래왔듯이). 그 누구도 의도하지 않은 만큼 모두가 피해자인 상황이다. 육체적 고통의 치유와 함께 우리 모두의 심리적·철학적 치유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 다음으로 소환된 알베르트 카뮈(Albert Camus, 1913~1960). 그의 소설 '페스트'는 제목 그대로 인류를 공포로 몰아넣은 질병 '페스트'에 관한 이야기다.
 
어느 날, 오랑시(市)에 퍼지기 시작한 페스트. 의사인 리유가 속한 오랑 의사회에서는 '페스트'이며 페스트가 아니더라도 이에 준하는 준비가 필요하다고 역설하지만 당국은 머뭇거리고 그 사이 사망자가 늘자 페스트를 공식 선언하고 도시를 폐쇄한다.
 
지금 현재의 상황과 소름끼칠 정도로 비슷한 부분이 많은데, 이 작품은 단순히 재난의 확산과 대응 차원으로 읽히지 않는다. 소설 속에는 페스트가 퍼진 상황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제시된다. 

의사의 관점, 도시를 탈출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쓰는 사람, 신의 존재에 대한 회의를 갖는 성직자 등. 페스트가 다가옴에 따라 공포를 느끼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에 맞선다.

카뮈는 이 작품에서 인간이 근원적 공포에 다다르게 되었을 때 드러나는 추악한, 때로는 숭고한 민낯을 보여준다. 확진자의 숫자가 계속 증가하고 있는 상황을 우리는 어느 순간 기계적으로 무디게 바라보고 있지는 않는가?

이 사태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피해가 커질수록 우리 감각의 날은 무뎌지고, 우리의 본질적 가치에 대한 믿음도 희미해질지 모른다.

코로나19로 우리 국민 모두가 고통을 받고 있다. 악몽 같은 시간이 하루 빨리 종식되길 바라며 조금은 근원적인 차원에서 현재의 상황을 바라보고, 훨씬 먼저 이런 고민에 대해 작품으로 이야기한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는 시간을 가져보기 바란다.

박정현 한국교육정책연구소 부소장(만수북중 교사) 


  • 이 기사를 공유해보세요  
  •  
  •  
  •    
맨 위로

ⓒ 프라임경제(http://www.newsprime.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