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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오늘] 다시 등장한 '탁신' 전 총리와 '세 손가락'

2010년 반정부 시위대 '혈액 시위'…2020년, 탁신 넘어 군부정권 반대

추민선 기자 | cms@newsprime.co.kr | 2020.03.16 00:16:52
[프라임경제] 10년 전 오늘 2010년 3월16일. 이날은 부패혐의로 해외도피 중인 탁신 친나왓 전 태국 총리를 지지하는 반정부 시위대가 의회해산과 조기총선을 요구하며 정부청사 주변에 시위대의 피를 뿌리는 '혈액 시위'가 벌어진 날인데요. 탁신 전 총리로 시작된 '혈액 시위'는 현재 젊은 층을 중심으로 '세 손가락 시위'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해외 도피 중인 탁신 전 총리가 2019년 태국 선거에 다시 등장합니다. 일부 총선 출마자들이 탁신 친나왓 전 총리를 따라 이름까지 바꾸는 등 '탁신 마케팅'을 활용한 것인데요. 

탁신 전 총리는 2006년 쿠데타로 실각한 뒤 해외 도피 중이지만 도시 빈민층과 농촌 주민 등 '레드셔츠'에 여전히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죠. 탁신 영향으로 시작된 태국의 반정부 움직임은 지난해 태국 총선 후 더욱 격화되고 있습니다. 

◆태국 제23대 총리 취임…2006년 9월 군부 쿠데타로 실각

탁신 친나왓(Thaksin Shinawatra) 전 태국 총리는 태국의 시나와트라 그룹의 창업자입니다.  컴퓨터·이동전화 시장을 석권했고, 1991년에는 타이 최초로 위성을 쏘아 올려 케이블텔레비전 시장마저 손에 넣음으로써 억만장자에 이름을 올렸는데요.

탁신 친나왓(Thaksin Shinawatra) 전 태국 총리. ⓒ 연합뉴스


1994년 정계에 몸담아 외무장관을 맡았으나 정경유착 문제로 100일 만에 물러난 뒤, 이듬해 6월 청백리로서 방콕시장을 지낸 잠롱(Chamlong Srimuang)의 뒤를 이어 팔랑 다르마당(黨) 당수로 정계에 복귀했죠. 1997년 8월 연립정부에서 부총리를 역임하고, 다음해 7월 태국 락 타이(TRT)를 창당해 사업가로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믿음직한 이미지를 구축했습니다.

그는 2001년 1월6일, 태국 총선에서 태국 락 타이당(黨)이 집권당을 누르고 압승함으로써 같은 해 2월9일, 태국 제23대 총리로 취임했습니다. 그러나 부패와 부정선거 등으로 민심을 잃었으며 결국 2006년 9월에 태국 군부의 쿠데타로 실각했죠.

◆다시 선거에 나타난 '탁신'

태국 정부의 처벌을 피하고자 해외로 도피중인 탁신 전 총리가 2019년 초, 다시 등장합니다. 바로 태국 3·24 총선을 앞두고 후보 등록이 시작되면서 인데요. 태국 정치권에서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탁신 전 총리를 따라 이름까지 바꾸는 후보자가 10여명에 달하기도 했죠. 

탁신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여성 후보자 5명은 탁신 전 총리 여동생인 '잉락' 전 총리의 이름으로 바꾸기도 했죠.

태국에서 '세 손가락' 표시가 재등장했다. 세 손가락 인사는 지난 2014년 태국 군부의 쿠데타 당시 이에 항의하고 반대하는 표시로 사용된다. ⓒ 연합뉴스


이들 남매 총리는 최저임금 인상과 부채 탕감 등의 복지 정책을 펼쳐 특히 저소득층과 농민층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습니다.

특히 탁신 전 총리가 총리로 재임했을 때 사업가로써의 경험을 백분 활용하면서 그 이전까지 무시되었던 농촌지역 문제 해결에 힘을 썼고 IMF 외환위기 극복과 30바트 의료보험 정책, 농어촌 지역 개발 지원, 마약퇴치 작전으로 크나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더 이상 침묵하지 않는다"…'세 손가락 시위' 재등장

지난 2019년, 군부에 맞서는 반군부 정당은 5년 만에 군부 독재의 끝을 볼 수 있다는 기대를 안고 총선에 도전했지만 총리 선출 투표에서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군부가 독재를 이어가고 자 부동층인 상원 의원들을 총리 선출 투표에 참가시켜 손쉽게 정권을 지켜낼 수 있었기 때문이죠. 

그러자 태국에서 '세 손가락' 표시가 재등장했습니다. 세 손가락 인사는 지난 2014년 태국 군부의 쿠데타 당시 이에 항의하고 반대하는 표시로 사용됐는데요. 검지, 중지, 약지를 펼쳐 하늘 위로 향하게 하는 방식의 세 손가락 인사는 영화 '헝거 게임: 판엠의 불꽃'(2012)부터 등장한 제스처입니다.

지난해 12월, 태국 방콕에서는 5년 만에 최대 반정부 집회가 열렸다. ⓒ 연합뉴스


이후 세 손가락 표시는 온라인을 통해 쿠데타 반대 상징으로 급속히 확산했는데요. 독재 체제에 대한 반대뿐만 아니라 대의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고 저항하는 혁명의 상징으로도 해석됩니다. 

쿠데타 후의 군부정권 기간(2014-2019) 내내 반정부 시위 금지 등 결사집회의 자유가 억압되고, 경기 침체와 일자리 부족 등이 지속되면서 쁘라윳 군부정권에 대한 젊은 층의 불만은 쌓여만 갔죠. 

또, 이 기간에 군부독재에 반대하는 수많은 활동가가 선동법이나 태국의 악명 높은 왕실모독죄(Lèse-majesté law)로 체포·기소됐고, 컴퓨터범죄법(Computer Crimes Act)으로 인해 온라인상의 표현의 자유는 심각하게 제약되고 검열과 감시의 횟수도 큰 폭으로 증가했습니다.  

총선을 전후로 친군부 대 반군부·민주주의의 대립구도가 두드러지면서 태국 젊은이들은 본격적으로 '세 손가락'을 펴 보이며 더는 침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데요.

오랜 군부 정권에 의해 자유를 억압받았고, 현재도 군정부의 지배력 아래 놓인 태국 젊은이들이 펴든 '세 손가락'이 태국 정치권에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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