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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칼럼] 특정 종교 반사회적 행동 "반드시 처벌"

 

임동범 청년기자 | a8522929@hanmail.net | 2020.03.17 16:17:42
[프라임경제] "잠시 후 12시가 지나면 여러분은 교회 안에서 우리들이 입고 있던 옷들만 발견할 것." - 1992년 10월28일 기자에게 어느 신도가

지난 1992년 10월28일, 전국 166개 교회에 신도들이 하얀 옷을 차려입고 자정까지 예배드리니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신도들이 하늘로 들려진다는 '다미선교회 휴거사건'이다. 

1966년에 설립된 '장막성전 교주' 유재열(당시 18세)는 "1966년 5월20일로부터 1260일이 지난 1969년 11월1일이 되면 세상은 불바다가 될 것이니 회개하고 구원의 장막에 모이라. 이곳만이 멸망을 피할 수 있는 곳"이라고 시한부 종말론을 펼쳤다.

그렇다면 지금은 달라졌을까? 

사람들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그런 것이 통하겠냐'라고 넘기겠지만, 등하교 길거리 혹은 지하철에서 뒤따라오는 사람들이 있다. 요즘은 카페에 앉아만 있어도 설문조사를 내세워 말을 걸어오곤 한다. 

앞서 코로나19로 전국이 마비되기 전, 31번째 확진자는 지속적으로 본인 동선을 숨기려고 노력했었다. 결국 동선 파악에 실패, 대구 및 경북지역에서 확진자가 대거 발생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리고 31번째 확진자 종교 단체에서 집단 확진이 발발했지만, 이번엔 종교 단체가 동선 공개 거부하기에 급급했다. 

그렇다면 왜 31번째 확진자나 '집단 확진' 종교 단체는 동선 공개를 거부한 것일까. 이는 종교 활동방식에 문제가 있던 것이다. 

이들 종교 단체는 주로 기존 기독교에 잠입, 의심과 분쟁을 키우는 방식으로 신도들을 포섭했다. 청년들이 많은 학원과 모임에 참여해 친분을 쌓는 동시에 그룹원들과의 접촉을 늘려갔다. 

또 고민 상담을 하거나 같은 문화생활을 즐기는 등 만남을 이어가면서 차츰 '자신들의 교주가 구세주'라는 인식을 심는다. 애초 사람들을 이간하고 포섭대상이 가족과 멀어지도록 유도하던 종교 단체였기에 신분은 물론, 동선까지 밝힐 수가 없던 것이다. 

물론 질병관리본부는 해당 종교에게 전국 시설물과 신도들 명단 협조를 요청했다. 하지만 이들은 고의적으로 명단을 누락하고 보여주지 않으면서 국민들 공포심은 더욱 커졌으며, 국가 활동 역시 모두 멈춰버렸다. 

특히 종교집단 집중포섭 대상인 청년들 공포심은 더욱 크다. 종교 신도 가운데 청년 비중이 적지 않았던 만큼 종교 신도 여부와 더불어 '코로나 환자일지도 모른다'라는 불안감이 형성된 것이다. 

이런 비협조적 태토에 일부 지자체는 강제조사를 강행한 반면, 오히려 급속도로 확진자가 늘어난 대구광역시는 종교 시설 폐쇄를 망설였다. 

또 많은 신도가 분포된 광주광역시의 경우 당초 '교인 전수조사' 지침을 '제공 자료만 조사'로 변경하기도 했다. 하지만 제공된 자료 역시 구체적 명단이 아닌, 신도 숫자에 불과해 '지역민 생명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저버리고 말았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와 엮이지 않았다 한들, 해당 종교의 반사회적 행동은 반드시 처벌 돼야만 한다. 실제로 얼마 전에는 해당 종교 관련 고발장이 접수됐다. 포섭대상인 청소년들이 가출하고 있으며, 부모와 거리를 두는 것을 부추겼다는 이유다. 

과연 어느 정상적 종교가 '부모와의 연을 끊으라'고 하고, 사회생활 통제 및 사람들간 분란 조장을 주된 활동으로 삼을까. 

지속적으로 신분을 감추는 이들 행동이 '자유'라는 명목 아래 옹호된다면 국가 기초인 가정은 무너지고, 국민들간 불신은 더욱 커질 것이다. 그리고 결국 공동체는 무너질 게 뻔하다. 

아울러 지자체가 특정종교 신도들 표를 의식해 방치하고 있다면, 신도들로 인해 고통 받는 이들 가족과 친구들, 이웃들의 표는 보이지 않는 것일까. 

'자유'란 이름으로 포장된 탐욕이 진정한 의미의 자유와 생명을 앗아가는 행태를 방치하지 않는, 올바른 국가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은 과연 큰 욕심일까. 

1992년 10월29일, 한 기자는 당시 종말소동을 이렇게 정리했다.

"이번 파문은 우리 사회에서 사이비종교인을 '종교의 자유'라는 이름 아래 이대로 방치해도 좋은가 하는 강한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었습니다. 현행법에는 사이비 교리를 퍼뜨려서 생업을 포기하게 하고, 신자 재산을 모두 거둬들여도 이들을 처벌할 길은 없습니다."

이로부터 무려 30년이 지난 2020년, 우리는 이런 문제를 해결했을까? 

불과 얼마 전만 해도 해당 특정종교 광고가 여러 언론 지면을 차지했다. 이번 사태로 반사회적 특정종교가 위축되긴 하겠지만, 또 다른 형태로 살아남아 사회 독버섯은 되지 않을까 두렵다. 이 특정 종교가 유재열 교주 '장막성전'에서 떨어져 나와 번성한 것처럼…

그리고 30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묵과할 수가 없는 1992년 당시 TV뉴스 멘트가 여전히 생생하다. 

"이런 사람들이 기성교회에 가서 위로를 못 받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교회가 너무 세속화됐고…"

누군가가 '지금 어느 시대인데, 아직도 그러냐'라고 물어본다면, '아직은 20세기'라고 답하고 싶다.



임동범 청년기자

*해당 칼럼은 사단법인 '청년과미래' 활동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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