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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현의 교육 다반사④] 냉정과 열정 사이

 

박정현 한국교육정책연구소 부소장 | press@newsprime.co.kr | 2020.04.05 17:51:54

[프라임경제] 진한 파랑과 오렌지 빛의 표지로 같은 제목을 갖고 있는 두 권의 책, 두 작가가 릴레이 방식으로 쓴 일본 소설. 에쿠니 가오리와 츠지 히토나리가 각각 여자와 남자의 이야기를 맡아 2년 간 번갈아가며 잡지에 연재 했던 것을 묶은 '냉정과 열정 사이'.

사랑과 이별의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한 작품으로 100만 부 이상 판매된 베스트셀러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이 작품에서 제목만 잠시 빌려와보기로 한다.
 
글쓰기의 '냉정과 열정 사이'. 글은 상황에 따라 저마다 다른 온도를 갖는다. 또 다른 베스트셀러 '언어의 온도'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글에도 온도가 있음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글은 '냉정', 감성적인 글은 '열정'으로 어떤 글이든 이 사이를 오고 간다. 제품의 사용설명서나 엄격하게 적용되는 법률 문서, 계약서에 사용되는 문장은 논리적이고 명료해야 한다.

반면 상대의 감정을 움직이고자 하는 예술 작품이나 연서(戀書)는 반대의 선상에 따뜻한 온도로 써야 하는 글이다. 이러한 온도의 차이를 이해하고 글을 쓰는 연습은 대단히 중요하다. 적절한 상황에 따라, 독자를 고려하며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능력이 된다. 그런데 때로는 이러한 온도를 달리하는 것이 큰 효과를 가져 올 수도 있다.
 
가장 엄격한 논리성을 갖춰야 하는 글 중 하나는 바로 논문이다. 정확한 수치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이공계열의 논문은 말할 것도 없고 인문학 영역에서도 논문은 철저한 논리성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공식과 상관없이 종횡무진 지적 여정을 논문으로 정리한 글이 있다.

프랑스의 고등사범학교 재학하며 당시에는 허용되지 않던 동성애를 주장하기도 하고, 학교 안에서 자살을 기도하기 했던 미셸 푸코. 그는 정신병원에 가게 되지만, 그곳에서 치료를 받기보다 거꾸로 정신과 의사들의 심리를 역으로 연구한다.

인간의 광기에 대한 역사적 철학적 연구를 정리한 '광기의 역사'를 스웨덴의 웁살라 국립대학에 박사 논문으로 제출하지만 연구 형식을 맞추지 않았기 때문에 거절당한다. 푸코는 프랑스의 소르본 대학에 다시 제출해 격론 끝에 학위를 받는다. 지금은 명저로 인정받지만 그 당시 보편적 가치관을 깨뜨린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었다. 보편적으로 갖고 있던 온도와는 다른 온도로 다가올 때 낯섦과 함께 신선한 충격을 주는 것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문학이라는 양식에 과학적 언어를 가져온 것이나, 최재천 교수가 과학적 개념을 산문 형태로 쉽게 풀어나간 방식은 서로 반대 방향의 출발점을 갖지만 결국 하나로 만난다.
 
칼럼은 어떤 온도를 가져야 할까? 팩트를 전달하는 기사의 차가운 언어에 평을 더하는 감정의 온도가 조금 더해지는 정도일 것이다. 그래도 기본은 객관성과 논리적 분석 능력이 전제돼야 한다고 본다.

그러한 생각으로 '열정'보다는 '냉정'에 무게를 두고 글을 써왔다. (적어도 칼럼에는) 얼마 전, 서울시 교육감의 '일 하지 않고 돈 받는 그룹'이라는 SNS 상의 발언으로 큰 논란이 생겼었다.

당일 다른 언론을 통해 굉장히 감정적인 칼럼을 게재한 바 있다. 휴업이 장기화됨에 따라 학교 현장에서 겪는 고통이 큰 상황인데 이런 발언은 많은 교사들의 힘을 빠지게 했다. 물론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자유고 충분한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세계에 대한 피상적 비난일 수도 있고, 실제로 위기의 상황에서 태만한 이들이 있을 수 있기에 타당한 비난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적어도 교육계 수장으로서 교사들을 염두에 둔 발언을 한 것에 대해서는 이성적 차원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 글을 쓴 것이었다. 평소와 달리 퇴고의 과정도 거치지 않고 데스크를 통해 바로 올렸고 굉장히 뜨거운 반응을 받았다.

물론 글을 쓴 입장에서 다시 복기를 하며 너무 감정적이지 않았나라는 반성도 했지만, 많은 분들의 '시원했다', '고맙다'라는 평을 들으며 때로는 이런 글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글에는 분명한 온도가 있다. 냉정과 열정 사이를 잘 조율하는 법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고치기를 이어가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여러분도 글과 말의 온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 

박정현 한국교육정책연구소 부소장(만수북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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